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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 Jul 01. 2019

다른 사람에게 상처준 적 있나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

회사 면접 질문 중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전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 후배로부터 상처 받은 적이 있나요?


상처? 상처라... 누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 때문에 상처 받는다지만 아무래도 늘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관계를 쌓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홍보 일의 특성상 상처 받을 일도 더욱 많았다. 게다가 기자를 만났을 때도 을이고,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도 을인 홍보대행사의 신입사원은 회사 안에선 선배들에게 치이고, 밖에선 기자와 클라이언트한테 치이고 정말 3콤보 동네 북이 따로 없는 신세다.


상처 받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 중 무엇을 얘기하는 것이 이 면접에서 내가 돋보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신나게 이야기를 꺼냈다. 상사가 깐깐하고 기분이 롤러코스터라 생겼던 일들, 참았더니 참나무가 되어 버린 일 등 생각나는 일화들을 이야기했고, 5년 동안 쌓은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보다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막힘 없는 답변을 이어 나갔다.


조용히 나의 답변을 듣던 면접관이 입을 열었다.



본인은 직장 동료에게 어떤 상처를 줬나요?



내가.... 남에게 상처를...?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도 빨리 답변을 해야 하는데... 면접 답변은 두괄식이 좋으니, 일단 상처준 적 있다/없다 중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 마땅히 떠오르는 부분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며 답변을 마무리했다.

 

면접관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업무와 관련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면접은 무난하게 끝이 났다.



나는 다른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줬을까?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면접관의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멍때리기 대회라도 나간 듯이 띵&멍해졌다.


다른사람에게 상처 받은 것은 아주 잘 기억하는데, 반대로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준 건 기억 나질 않는다. 아니, 사실 이건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해 내려고 노력해봤자 기억날리가 없다. 기억이 안 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아예 모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그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는 날카롭고,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그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했건만, 내가 제일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 면접을 통해 깨달았다.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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