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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Jan 04. 2022

잘 지내요, 젼.

젼에게 전화가 왔다. 

마트에 들러 연말을 보낼 먹거리들을 사고,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 양손에 들고 막 현관을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해서 양손에 들었던 짐들을 나도 모르게 집 앞에 널브러뜨리고 끊어질까 바로 받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젼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장난꾸러기 젼, 맞다. 


"젼! 정말 반가워요. 잘 지냈어요?"

"네, 선생님. 지금 미니가 자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미니가 자고 있구나. 젼이랑 미니 모두 보고 싶어요."


젼이 애지중지 돌보고 있는 고양이 미니는 우리가 수업할 때 하루도 빠짐없이 대화에 등장했던 젼의 가족이다. 젼은 동물을 아주 좋아했는데, 특히 물고기와 새, 고양이를 너무 예뻐했다. 형제가 없어서 동물들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매일매일 미니의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서 수업할 때마다 보여주고, 수업이 좀 지루해질 때쯤엔 

"아, 선생님, 미니 보고 싶어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니 수업을 마친 지 두 달 후 처음 한 통화에서 미니의 안부를 먼저 알려주는 것도 젼 다웠다.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가, 통화를 마무리할 요량으로 나는, 

"젼,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건넸는데 

"아, 선생님. 나는 이슬람이에요. 그런 말 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아차. 젼의 가족은 방글라데시인. 이슬람을 믿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종종 실수를 하곤 했다. 아이들 고향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이제 이 경험도 나에게 각인되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젼과의 통화로 짧게 만났던 ㅅ학교 아이들이 다시 마음속에 들어왔다.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가장 힘들었지만 또 가장 기억나는 나딘, 한국어로 소통이 잘 안 되어 힘들어했지만 태권도를 좋아하고 표정이 풍부했던 정원, 색칠하는걸 좋아했던 유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하며 잘 해냈을 땐 병아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좋아했던 수수, 그리고 몽골로 돌아간 역사를 좋아했던 듬직한 겔, 말을 거의 하지 않아 글로 소통했던 눈웃음이 예쁜 리아까지. 다들 보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또 열심히 한걸음. 선생님이 응원할게,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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