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눈이 많이 내렸다. 올해는 가을이 무척 길다 싶더니 덕분에 늦게 온 겨울이 그 존재감을 뽐내듯 최고 기온이 영하권에 머무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날씨에 아이들과 같이 읽기 좋은 그림책이라면,
[눈 내리는 하굣길].
초등 한국어교실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가끔 책을 읽어주고 활동도 하는데, 여름엔 '수박 수영장', 겨울엔 '눈 내리는 하굣길'이 아이들 호응이 좋았다. 그림만 봐도 이야깃거리가 가득이다.
대부분의 초등학교들이 늦어도 이번주에는 겨울 방학을 시작한다. 오전에 맡고 있던 수업은 이미 모두 마무리되었고, ㅅ초등학교의 방과 후 한국어 수업만 그 마지막 시간이 남았다.
그래, 오늘은 책 읽고 수다 떠는 시간이다!
"'겨울'하면 무슨 말이 생각나요?"
"눈사람이요!"
"눈싸움!"
"선생님,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눈싸움했어요!"
아이들은 '눈'이라는 말만 들어도 초흥분 상태가 되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눈사람, 눈싸움, 눈썰매 등 아이들이 이야기 한 낱말들과 장갑, 목도리, 귀마개 등의 낱말도 알려주었다. 마침 목도리와 귀마개를 하고 왔던 나딘과 정원은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튀어 오르더니 가방에서 털이 보들보들한 목도리와 귀마개를 꺼내왔다. [눈 내리는 하굣길]에도 이 단어들이 나오기에 같이 연결해서 공부하기에는 딱 좋았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정원이 귀마개를 가리킨다.
"귀, 마, 개."
추워서 매일 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이름은 몰랐던 모양이다.
"아~! 선생님, 이 귀요?"
정원이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귀'와 '귀마개'의 관련성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귀마개를 다시 발음해보는 정원의 머리 위에 노란 전구가 반짝 켜지는 것이 보였다.
"얘들아, 장갑을 어떻게 해요~?" (장갑을 끼는 시늉)
"장갑을 입어요!"
"삑-! 아니에요. 장갑을 입어요, 아니에요."
"어? 장갑을...... 신어요?!"
나딘이 급한 마음에 손을 번쩍 들고는 장갑을 신는다고 하는 바람에 모두 웃었다.
"아니에요. 장갑은 '껴요'라고 말해요. '장갑을 껴요'."
한참 왁자지껄 단어카드로 퀴즈도 풀고 빙고게임도 했다. 그림책에서 목도리와 귀마개를 한 친구, 눈싸움을 하는 친구도 찾아보고 같이 이야기도 했다. 막심, 정원, 나딘 세 명의 목소리가 큰 교실에 가득 찼다. 빙고게임은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한번 더'를 요청하는 바람에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막심이, 한 번은 정원과 나딘이 함께 먼저 빙고를 외쳤다. 끝으로 계획했던 그림책을 읽고 책 내용으로 한바탕 더 수다를 떨고,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정말 헤어짐의 순간이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서는 아이들을 보니, 작년 마지막 수업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는 아이들이 조금 감성적이었는지 마지막 시간이 울음바다였다. 오늘은 아무도 울지 않는다.
단지 1학년인 막심이,
"선생님, 저 2학년 되면 선생님 또 와요?"라고 물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아쉬움 없이 돌아서는 게 왠지 조금 섭섭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아이들이 더 성숙해진 게 맞겠다.
나딘은 한국어가 아주 많이 늘었고 2학년에서 수행해야 하는 수학과 국어 학습도 꽤 잘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정원은 속상할 때 책상 밑에 들어가 손가락을 빨고 있던 아기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수업시간 집중도가 많이 높아졌다. 막심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발표력이 확실히 늘었다. 모두 한층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섰다.
나도 이제 방학이다. 1년이 또 이렇게 끝났다. 아쉬운 마무리, 약 두 달간의 겨울방학, 3월이 오기 전 교육청 채용 공고 탐색, 지원과 면접, 합격과 불합격. 이렇게 시작하고 또 마감한다.
한국어 강사 3년 차. 1년을 마무리할 때는 항상 앞으로 올 한 해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조금 힘이 빠진 느낌이다. 아이들처럼 더 단단해진 모습이었으면 하는데, 아마도 그냥 적응이 된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