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뢰렉신 Dec 27. 2017

하이드 공원 북쪽 작은 벤치에서

1999. 11. 13 런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당신과 인연을 맺어도 되겠습니까?



순결하고 고귀한 당신

이 세상에 있다는 존재감 만으로도,

저의 어두웠던 시야를 밝게 해주었고,

딱딱히 굳어버린 진흙 같은 나의 감성을

부드럽게 녹여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과분한 축복이지만,

나의 어리석은 욕심은 주체할 수 없는

존재의 이기심으로 꿈틀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당신의 허락도 없이 이런 생각을 해버린 것,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어둠 한가운데 서있습니다.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주변 사물의 분간조 힘든

깊은 어둠의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희미한 빛줄기가 잠시 보였습니다.

긴 터널의 끝.

그곳에서 흘러나온 미미한 빛줄기.

그 빛을 따라가면,

긴 터널의 끝에 펼쳐진 당신의

세계와 조우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한 발자국도

그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것은,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어두운 공간 속에 서있는 나의 존재가

당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당신이 잘 보이는데,

나는 이렇게 당신을 향해 가고 싶어 하는데,

하지만, 조심스레 기다리겠습니다.

깊은 어둠의 고통을 참아내며 기다리겠습니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어둠 속에 서있는 저를 발견했을 때,


작은 손짓, 작은 눈짓이라도

제게 보내주신다면


그것이 설령

저만의 오해였다 할지라도 용기를 내어

그쪽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이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지나가,

아침을 만나고 싶습니다.


 

1999. 11. 13

하이드 공원 북쪽 작은 벤치에서.







20여년 전 일기만 봐도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었는지 알겠어. 너는 고귀했고 나는 노틀담의 곱추 같았지. 신분이 완전 다르다고 생각했어. 그 땐 왜 그랬는지. 다같은 사람인데 말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와 이해가 필요하겠어? 그냥 생각나고 또 생각나니까 좋아진거지. 함께했던 대화가 너무 즐거우니까 같이 있고 싶었던 거지.


좋아하게 해줘서 고마워 항상  :)




 





 


매거진의 이전글 무거워진 삶에 대한 애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