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럴싸한 이유를 토대로 살아간다.
뭔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을 통한 영감이
제일 좋다. 그러나 내 몸이 10개가 아닌 이상 많은 경험을 동시에 할 수는 없고 오지랖 좁고, 주변의 대인 관계가 넓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한 간접 경험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는걸 좋아하는데,
그 이야기들 가운데 내게 글 쓰는 영감을 주는 포인트를 곧잘 발견해 낸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줄줄이 이야기를 뽑아낼 줄 아는 재주를 가진 나는, 어느 우연한 날, 노라 존스의 노래를 끊임없이 틀어주는 어느 어둡고, 작은 바에서 A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A는 나와 닮은 점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지만,
분명 나와 다른 점이 더 도드라지게 드러나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는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그의 감춰진 면모를
나의 감성적 성향에 등식으로 대입하여 맞춰봤을 때 확실히 나와의 동질감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과 행동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무슨 의도며, 무슨 의미인지 유추 해내는 게 재미있었고 이를 통해 그의 마음을 80~90% 읽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말투 하나, 손짓 하나 모두, 나는 그를 통찰하고 있었고 간파당하고 있음을 숨기려는 그의 말과 제스처 하나하나에 나는 입 꼬리가 삐죽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졌다.
흔들리는 몽땅 촛불 하나가 분위기를 내고 있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던 우리는 잠깐 어색함을 주고받았지만, 슬라이스 된 레몬을 구겨 병 속으로 넣어버린 코로나 한 모금을 마시며 A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사실, 사람들이 보는 저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대뜸, 그는 주변에서 평가하는 자신에 이미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부정하였다.
흠... 의외의 시작이었다.
왜 A는 이런 말부터 꺼내는 것일까?
내가 아는 A는.. 객관적으로 멋진 사람이다.
매력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의 장점을 무척 잘 알고 그것을 잘 이용하고 있으며,
성격은 적극적이며 친절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할 줄 알고,
골치 아픈 문제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려는 따스한 말투와 화법으로 호감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소위 말하는, 바람둥이??
혹은 이성을 밝히는 사람??
그런 부류의 이미지가 많이 각인된 사람이다.
음.. 그런 부류라고 생각이 드는 건,
이성을 동시에 많이 만나기도 하고,
또한 자주 이성친구가 바뀌는 듯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득하게 물어봤다.
"왜, 그렇게 집중을 하지 못하나요??"
그러자,
A가 꽤 진지해진 얼굴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저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진심으로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 주게 돼요..
그러나 곧..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것 처럼 그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게 빠지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를 써요..
일부러 먼저 연락도 하지 않고,
일부러 이벤트가 일어나야 할 때도 무관심한 척 지나가기도 하죠.
게다가 일부러 다른 이성으로부터 대시받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해주곤 하죠.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대에게 빠지고 있어요..
그럼, 저는 상대가 나에게 보여준 것이 만족스럽지 상태인데, 내가 이렇게 상대에게 빠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무서워요.
나는 이렇게 밤새도록 그 사람을 생각하는데,
나는 이렇게 매일같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면,
그 상실감은 너무나 크죠.
그래서,
제가 터득한..
가장 빠르고 쉽게 상대에게 빠지는 것을
멈추거나 더디게 하는 방법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동시에 여러 이성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되어버리기도 하고,
쉽게 자주 이성친구가 바뀌는 것 같아요... "
나는 A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합리화를 너무 심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에게 빠지는 것이 두렵나요?
서로에 대한 감정의 질량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저울로 잴 수 없는 감정의 질량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오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저울로 재려 하지 말고 부피감을 비교해 보려 하지 말고,
스스로 누군가에게 빠지게 되는 그 시공간의 초월 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당신의 삶이 또 한 번의 성숙해지는 계단 하나를 올라간 것이라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상대방이 당신에게 주는 관념적 사랑이라는 질량과 부피감에 대한 강박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을 비교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건 사랑의 진행이 아니라 감정의 속박에
스스로를 옮아 매어 아무것도 주고받을 수 없게 만드는 관계로 밖에 갈 수 없는 것 이예요."
이런 말을 A에게 해주는 나 자신에,
스스로 전능한 통찰 감과 성숙한 인간임을 분출해 낸 것 같아 잠시 으쓱함을 느꼈지만,
연애를 한번밖에 못한 얼간이가
지금 연애 100단인 A에게 되지도 않는 교과서적
연애 담론을 펼쳐놓은 게 아닌가 하는 머쓱함도 들었다.
어쨌든 A는 나의 진지한 이야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 진심으로 와 닿아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흠...;;;)
역시.. 들어주는 것에서 끝을 냈어야 했는데,
주제넘게 설교를 한 것 같아. 마음 한편의
쪽의 팔림이 크게 울리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집에 오늘 길,
곰곰이 생각해보니..
혹시, A는 심각한 애정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못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애정의 결핍 상태로 있어서
그와 같은 행동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주목받고 사랑받는
그토록 매력적인 사람이 애정결핍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A를 통하여,
실재 바람둥이 같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호기심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많은 이성을 만나는 사람도 많지만,
A와 같이 상대에게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성을 만나고, 또 그 이성에게 빠지는 게 두려워 또 다른 이성을 만나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심리란 참... 재밌다.
모든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객관적으로는 한 가지처럼 보이지만,
주관적으로는 모두 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재미있다.
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