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까지 나왔던 건담 변신로봇이 빨간 양말 속에 담기어져 있을 거라 믿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난 초등학교 2학년 시절 크리스마스 아침, 머리맡에는 건담 변신로봇은 커녕 책 두 권과 젤리가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나 좋아할 만한 딱딱하고 설탕 덩어리였던 그 젤리와 책 두 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게 어찌나 큰 충격이었던지,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책 제목은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오성과 한음, 한석봉. 5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가레트 쿠키 이후로 두 번째 충격이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건 몰라도,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이구나.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반면에 인생에 찾아오는 수많은 불행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다행으로 누나와 나를 키워내셨던 부모님은 내가 변신로봇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지만, 당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셨으리라 믿는다. 당연히 그건 책이었을 것이다. 어른의 기준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선물 중에 책보다 좋은 선물은 없으니까.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결국 하늘이 정해둔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유독 책을 좋아하고 독서하는 데 많은 시간을 기울였던 어린 시절도 문득 생각난다.
글쓰기와 독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저마다의 맛을 가지고 있는 분야다. 서로 닮은 구석이 많으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글쓰기가 초연함을 필요로 한다면, 독서는 단순함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반드시 쓰는 행위를 요구하지만, 독서는 오직 경청만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경청하는 습관을 갖지 않고 쓰기만 하는 사람의 원고는 거칠기 짝이 없다. 오만하고 자기기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답습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의 글은 깊고 그윽한 풍미를 품기기까지 한다. 누구든지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고, 누구든지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둘은 대단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 일들이다.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다. 소심하고 눈물 많은 꼬마였던 나는 축구와 야구보다 책을 좋아했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고, 책을 읽고, 소설 속 주인공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나를 시큰둥하게 바라보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작은 기여를 한 것도 어린 시절의 습관들이었다고 믿는다.
성인이 된 나는 지금도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신문을 정독하고, 원고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오롯이 대할 수 있는 시간은 나를 그만큼 성장하게 하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대단히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도, 대단히 두꺼운 책을 접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 꼭 맞는 좋은 책이라면 만화책이든 무슨 상관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