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Jan 07. 2018

탈(脫) 노예의 정의

아티스트가 되자

현대판 노예란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 채 자발적으로 시스템에 복종한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탈(脫) 노예란 무엇인가? 탈(脫) 노예란 쇠사슬을 끊어낸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는데, 자유롭다는 것은 “나”라는 정체성을 오롯이 지키며 나답게 사는 것이다. 자유인은 억지로 가면을 쓰지 않고, 타인과의 비교를 거부하며, 시스템에 길들여지는 것에 반대한다. 자유인은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자유인은 각각의 존재가 곧 하나의 우주이며, 이들은 영원한 현재를 살며 충만한 삶을 산다. 


노예가 공장에서 찍어낸 바코드가 찍힌 공산품이라면, 자유인은 사람이 만든 수제품이다. 노예의 정체성은 시스템이 부여한 사회적 지위이지만, 자유인은 스스로 정체성을 만든다. 노예가 맹목적으로 노트 필기를 할 때, 자유인은 위대한 질문을 한다. 노예가 명품을 살 때, 자유인은 경험을 산다. 노예는 주중 아침마다 일어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자유인은 벅찬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노예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거울을 볼 때, 자유인은 거울 속 자신과 마주하고 대화한다. 노예는 타인의 목소리에, 자유인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노예의 삶은 2차원 선의 개념으로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지만, 자유인의 삶은 입체적인 3차원으로 무한한 변형과 확장이 가능하다.


현대판 노예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 및 자유를 포기한 채 쳇바퀴 같은 삶을 산다. 이들은 자신이 인생을 항해하는 선장으로서 스스로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근사한 사실을 잊은 채, 시스템에 복종하며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아진다. 이들은 때때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할 때, 금세 온갖 핑계를 대며 도전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낸다. 그리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했던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 같은 시도였는지 충실히 설명한다. 자신의 비겁한 선택을 정당화하고 타인에게 못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이처럼 자신마저 속이는 합리화가 몇 번 반복되면, 종국에 현대판 노예는 시스템에 더욱 길들여지고 쳇바퀴 같은 삶을 영영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간혹,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사람이 용감히 자유를 향해 다른 길을 갈 때, 부러움과 조소 섞인 눈길로 이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판 노예는 그만큼 자유를 갈망하지도 않고 이를 실행에 옮길 담대함도 없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불평할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일종의 정신병자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대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병이다.
-아인슈타인-  

탈 (脫) 노예를 위한 제언

나를 포함해 자유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갈망하는 나머지 소수를 위해, 우리가 탈(脫) 노예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개인이 모여 구성하는 사회니 국가니 하는 것들은 모두 시스템의 하위 집단으로서 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의 안정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본인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스템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나는 이런 발전은 몇 세대를 거쳐 아주 서서히 진행되는, 단기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한국과 같이 폐쇄적이고 유연하지 않은 특질을 지닌 문화권은, 변화의 속도가 무척이나 더딜 것이기 때문에 결국엔 각자도생해야 한다. 추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해 서술할 테니, 일단은 개인의 관점에서 우리가 탈 (脫) 노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나는 우리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아티스트가 될 때,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탈 (脫) 노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보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인을 더 잘 설명해주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는데, 어쨌든 아티스트는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창조는 시스템이 그려놓은 무채색의 수묵화에 다채로운 색채의 물감을 덧대는 것이다. 창조는 정교한 시스템도 예측하지 못한, 일종의 우연에서 발생한 길들여지지 않은 “날 것”이다. 

아티스트가 되자

인간은 무언가를 창조할 때 조물주가 되고 존엄한 개별성을 가지며, 시스템의 길들임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아티스트의 세계는 설계되지 않은 매트릭스 밖 “시스템 저 너머”의 세계며, 이곳은 신들이 사는 올림푸스다. 아티스트는 창조를 할 때, 강력한 몰입을 경험하며 시스템 저 너머의 세계로 들어서는 황홀함을 맛본다. 위대한 아티스트는 시스템에 균열을 만들고 종국에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부디 오해하지 말자. 여기서 아티스트란 음악이나 미술, 체육 등 예체능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힙합 오디션에 나가 상을 타고, 그림을 그려 자신의 작품이 고가의 경매에 팔리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꿈을 가질 필욘 없다. 내가 정의하는 아티스트는 크든 작든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으로, 이들은 특정 수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창조한다. 


이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은 글쓰기, 사진, 코딩, 음악, 미술, 공예, 만화 등 아티스트마다 상이하다. 아티스트의 범주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체능 스타뿐만 아니라, 창업가, 요리 레시피를 블로그에 올리는 주부, 주말마다 공연하는 직장인 밴드, SNS를 활용해 꾸준히 남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올리는 페이지 운영자, 학교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학생 등 실로 다양하고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티스트들의 특징은 각자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우주를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갈증이 있으며, 이를 철저히 주체적으로 실행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남들과의 비교를 거부하고 뚜렷한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이 무언가를 창조해서, 위대한 변화를 만들어 냈을 때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 또한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데 거부감이 없으며,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일을 즐긴다. 


다른 저서들에도 이미 이런 유형의 사람을 묘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세스 고딘은 <린치핀>에서 아티스트를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칭했고, 로버트 켈리는 <골드칼라 노동자>에서 블루 칼라, 화이트 칼라 대신 골드칼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어쨌든 모두가 이런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 묘사하는 바는 대동소이하며, 이들은 one of them 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only one이다. 이들은 시스템이 부여한 사회적 지위가 없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낸다. 마이클 잭슨의 소속사가 어디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가 작고한 후, 100년, 200년이 지나 그의 소속사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마이클 잭슨은 영원히 훌륭한 아티스트로 남아 본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이다.  


한편, 예전에 나는 홍콩에서 열린 네트워킹 이벤트에 참석했는데 주제는 “뱅킹 이후 나의 삶”이었고, 패널들은 홍콩 금융권에서 뱅커로 일하다가 퇴직한 창업가들이었다. 평소에 낯선 이들과 대규모로 피상적인 모임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류의 이벤트는 지양하는 편인데 주제가 흥미로워 참석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패널들이 각자 나와서 자기가 왜 뱅커의 삶을 포기했는지, 첫 1-2년 수입이 끊겼을 때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웠는지,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열정을 가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소 식상하고 뻔한 이야기들이었지만, 패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한 다음의 이야기는 꽤 진실성 있었고 내게 울림을 주었다. 


저는 말레이시아 사람입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 후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뱅킹으로 커리어를 선택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헤드헌터가 있다면 저를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뱅킹에서 일하면서 아마 저보다 이직을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돈을 좇아 연봉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분주히 이직했는데,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나중에는 안 일해본 은행이 없었습니다. 문득 나이를 먹고 보니 제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 짬을 내서 해볼까 했는데, 절대 안 되더군요. 뭔가를 하려면 풀타임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제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고 제가 당시 저축해둔 돈이 많았던 건 아니었어요. 사업 계획을 세우고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반년 만에 통장에 잔고가 없어졌습니다. 은행에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거의 파산에 이를뻔한 적도 두 번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호전돼서 그냥 먹고살 만한 수준은 됩니다. 물론 돈은 뱅커였을 때보다는 훨씬 못 벌지만 저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회사를 나온 이 후 저는 잠을 4-5시간밖에 자지 않아요. 그런데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 하루가 너무 기대가 됩니다. 제 안에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어서 실행해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요. 이 기쁨은 제가 뱅커였을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기쁨입니다


아침에서 일어나자마자 하루가 너무 기대돼서 견딜 수가 없다니! 흥분된 목소리와 총명하게 빛나는 그의 눈을 봤을 때,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분처럼 하루가 너무 기대되어 벅찬 마음을 가지고 잠에서 깨는 사람은 불행히도 거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람은 아침의 고요를 찢는 불청객이다. 기계적으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서며 학교 및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겁다. 나도 이런 생활에서 예외가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글쓰기라는 수단을 찾은 이후론 온전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기에, 지금은 그의 말이 십 분 이해가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는 것 외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인데, 음악, 영화, 여행, 맛집, 사진 등 각자 나름의 취미가 있다. 탈(脫) 노예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이용자에서 창조하는 아티스트로 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장 학교나 회사를 때려치우고 창업을 한다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업으로 삼으라는 비현실적인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뚜렷한 소득 없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방향을 잘 잡았다면 속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느리더라도 서서히 변화한다면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으며 충분히 탈(脫) 노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창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은 모두 창조이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작은 창조를 하는 것부터 시도해보라고 권한다. 예를 들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본인이 곡을 짓거나 녹음할 역량이 안 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만약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여행하며 찍은 사진 및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정리한 책을 낼 계획을 세워 볼 수 있다. 혹은 화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화장 잘하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올리거나 여러 화장품의 효능에 대해서 후기를 올리는 SNS를 운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정보 및 경험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용자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창조할 때, 우리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성공적으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프레임 밖에서 사고하는 창의력과 이를 담대하게 실행할 꾸준함이 필요하다. 다음 파트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도록 하자. 강조하건대, 부디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 듯 정답을 얻기를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다음 파트에 서술할 내용이나 서점에 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인생을 바꾸고 성공하는 법 따위의 것들은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티스트가 아닌 대량 생산된 공산품의 성격을 가짐을 의미한다. 어떤 수단을 가지고 아티스트가 될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이는 부디 스스로 고심해야 하는 문제다. 타인을 모방하며 남의 인생을 살지 말자.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 정답은 내 안에 있다. 


==========================================

덧붙여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곧 홍콩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당분간 창작활동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바쁘게 시간을 쪼개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던 중,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저는 배고픈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분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쓰며 부가적으로 동영상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다양한 사회, 교양, 경제, 철학, 기술, 독서 등의 주제에 대해 잡담을 나누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으니 많이 구독해주셔요 :) 


Youtube "21세기 살롱" 주소

https://www.youtube.com/channel/UCogSaXkbOySSqvgfPZPfzbQ?view_as=subscriber

샘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c8vbxn_zw&t=1s


이전 09화 죽여주는 수명 연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