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결핍의 시대, 인문학의 역할

프롤로그


타히티섬 원주민들의 모습을 그린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볼 때면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긴다. 개인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과연 우리의 삶이 저 원주민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인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진보를 거듭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쩌면 스스로가 만든 문명의 창살 안에 갇혀 사육당하는 원숭이 신세가 아닐지.

현대 사회는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이다. 문명은 전례 없는 수준의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인간성의 결핍과 존재의 상실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분주히 살아간다. 빼곡히 들어선 고층빌딩, 암시적인 기호로 뒤덮인 광고판, 수시로 울리는 핸드폰 알람, 경적을 울리며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인공적인 사물에 둘러싸인 우리는 때때로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막연한 불안과 지독한 외로움이 일상을 지배하고 공허의 무게는 날로 가중된다.


나는 인문학이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침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인문학을 통해 우리가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란, 본래적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학습자로 하여금 지적인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를 유발하고, '왜'라는 근원적 물음의 답을 스스로 찾도록 만드는 것. 그리하여 배움이라는 끌로 자신을 갈고닦아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 되도록 갈고닦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할이다.


인문학 대중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인문학은 중세 이후 대중에게 제한적으로 전파됐다. 이는 특기할 만한 변화인데 왜냐하면 인문학을 배울 권리는 오랫동안 소수 엘리트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피지배 계급이 고된 생산활동에 전념할 때 지배 계급이 공부한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을 갈고 물을 기르는 동안, 소수의 지배 계급은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등을 배우며 인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인문학을 접할 문턱이 낮아진 계기는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 덕분이다. 선현들의 지혜가 적힌 책이 인쇄기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계몽되기 시작했다. 맹목적으로 신을 추종하며 온갖 부조리에 침묵하던 중세 사람들은 현세와 인간이 직면한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후 인류의 삶을 바꾼 굵직한 개혁 – 시민혁명, 종교 개혁, 공산당 선언 등 - 은 모두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에서 비롯된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책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대중화는 요원한 듯하다. 근대 산업화 이후, 인문학의 지위는 급격히 추락했다. 경제적 성과만을 추구하도록 사회가 구조적으로 설계됐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실용적인 학문만을 중시하며 인문학을 경시하게 되었다. 교육기관은 인격도야보다는 경제 시스템에 이바지하는 충실한 병졸들을 길러내는 훈련소로 전락해 버렸다.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생각할 기회를 스마트폰에 위임한 채, 정보의 바다를 무기력한 상태로 부유하게 되었다.


한 때 인문학과 대중 사이 교량 역할을 해준 책마저 점차 인기를 잃고 있다. 매년 줄어드는 출판 시장에서 근근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책은, 소위 대중에게 팔릴만한 상품성 있는 것 뿐이다. 문제의 본질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채 허망한 위로를 건네는 책, 일시적인 유행만을 좇는 책, '왜'라는 근본적 고찰이 결여된 채 '어떻게'라는 요령만을 다루는 책이 주류인 것이 현실이다. 인문학의 껍데기를 쓴 책들조차 대부분의 경우 알맹이가 되어야 할 '인간'은 없고, 팔리기 위한 얕은 수준의 유행성 정보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마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처럼 점차 그 생명력을 잃고 있다.


종합해보자면,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줘야 할 인문학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푹 빠진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대개 느리고 깊은 사유를 유발하는 인문서가 아닌 휘발적이고 지엽적인 정보를 모은 실용서이다. 작금의 사태는 우리가 역사적 표준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인문학은 다시금 소수만 향유하는 ‘그들만의 분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에 심각성을 느끼고 미력하나마 인문학의 대중화에 일조하고자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거듭 강조하건대, 인문학의 본질은 인간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사람의 생을 직접 체득해보는 것이지만,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짧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설은 훌륭한 대안이 된다. 소설은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 -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 (種) 일 수도 있다- 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책을 펴고 기계적인 일상과 절연되는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낯설고 신비로운 소설 속 세계로 입장한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해 더욱 폭넓게 탐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게 될 내용은 다양한 인간상과 소설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면면을 다루고 각 주제와 연관 있는 소설을 소개할 것이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상당한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이다. 책의 수명과 위대성은 통상적으로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는데, 매일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들에 밀려 퇴적되지 않고 고고하게 생존한 고전이야말로 시간을 내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독자들은 책에 언급된 각각의 인간상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해보고, 소설 속 주인공들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읽고,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본인의 내면에 잠재된 다양한 인간상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배부른 원숭이가 아닌,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독자들은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기호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다. 만약 특별히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면 반드시 해당 소설을 정독해볼 것을 권한다.


참고 도서

1. 자유로운 인간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2. 순수한 인간 -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3. 사랑하는 인간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4. 소외된 인간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저

5. 성장하는 인간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

6 두려워하는 인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저

7. 반항하는 인간 -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

8. 욕망하는 인간 -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

9. 창조하는 인간 - <달과 6펜스>, 윌리엄 서머셋 몸 저

10. 도전하는 인간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11. 길들여진 인간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저

12. 가식적인 인간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저

13. 야망 있는 인간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 제럴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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