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인간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하는 인간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 사랑만큼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온전히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 동물, 공간, 물건, 냄새, 음악 등 실로 다양하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의 정수 (精髓)는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빠진 남녀 (혹은 동성)가 서로에게 느끼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분명 신기한 구석이 있다. 지구 상 수많은 아담과 하와는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사랑할 것이다.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 사회에 등장하는 영원한 화두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에 관한 답은 대단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랑에서 파생된 수많은 상반된 감정들 – 열정, 질투, 환희, 절망, 유대감, 증오 등 – 이 사랑의 정의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결코 행복, 안정 따위의 긍정성만을 체험하지 않는다. 사랑은 반드시 불행, 증오 등과 같은 부정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이 원수로 둔갑하는 상황이 흔한 점을 고려하면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연인 간의 사랑은 그만큼 건강하게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랑만큼 들뜬 기대로 시작했다가 빈번히 절망으로 끝나는 프로젝트를 찾기란 어렵다.
왜 사랑이 온갖 부차적인 감정을 낳는 것인 지에 대해서는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에 따르면 사랑은 욕정 -> 끌림 -> 애착이라는 세 단계를 거치며 다양한 호르몬이 기능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정열적으로 빠진 사람의 뇌에서는 쾌락을 관장하는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는 코카인을 복용했을 때의 효과와 같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든지 하는 신체적 변화를 겪는데, 이는 약물에 중독된 사람뿐 아니라 사랑의 열병에 빠진 사람이 겪는 증상이다. 즉, 약물 중독자들이 쉽사리 약물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 역시 그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랑에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범하는 우는 달콤한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상냥하고 배려심 있으며 ‘나랑 잘 맞는’ 사람인지 – 이 모든 장점은 ‘좋음’이나 ‘착함’과 같은 긍정적이고도 모호한 특성으로 치환된다 – 감격한다. ‘운명적 만남’이라는 행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흔히 말하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완벽해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도파민뿐 아니라 세로토닌 역시 사랑을 설명하는 주요 호르몬 중 하나이다. 세로토닌은 뇌의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돕는데 낮은 세로토닌 수치는 우울증, 불안감 등을 낳는다. 흥미로운 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수치와 과도한 강박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의 그것이 유사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질투를 느끼고, 의심하며 불안을 느끼는 현상은 세로토닌과 관련 있다. 감정에 충실한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랑이라는 핑계로 연인을 구속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에 우리는 사랑할 때 실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특히나 부정성을 띄는 감정들로 인해 사랑은 본래적 목적에서 벗어나 때때로 불쾌한 경험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질투는 사랑과 연관된 부정적인 감정들 중에서도 가장 파괴력을 지닌 독이다. 아무리 성숙한 사람이더라도 한 번 질투의 독이 마음에 퍼지면 그는 이성을 잃기 쉽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와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오셀로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으며 어쩌면 당신일 수도 있다.
질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 보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연인들 사이 '넌 내 거야'라는 흔한 애정표현은, 사랑의 대상을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 대하는 인식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를 보여준다. 다소 유아적인 사랑관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질투가 곧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상대방이 질투하지 않는 것을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본인이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인형으로 격하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질투는 결코 사랑이 아니며 오히려 박멸해야 할 해충이다. 질투는 사랑의 그림자 뒤에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 덩치를 키우고 종국에는 사랑을 갉아먹는다.
바람직한 사랑에 관해,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랑은 서로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사랑의 부정성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을수록 우리는 현실과 마주하고 더욱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에 빠진 청년의 이야기다. 사려 깊은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베르테르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지 ‘사랑을 했다’는 점이 아님을 강조한다. 약혼남이 있는 로테를 바라보면 베르테르는 지독한 비애에 시달린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를 응용해보자면, 베르테르는 과도하게 분비된 도파민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랑의 열병에 시달렸고 급기야 세로토닌 수치가 저하되어 극심한 우울을 겪는다. 짝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손쉽게 베르테르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 베르테르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난다. 그는 관습이나 격식과는 거리가 멀고 감수성이 무척 풍부한 사람이다. 친구 빌헬름에게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전하던 베르테르의 편지에 묘한 기운이 서린다. 바로 베르테르가 처음으로 편지에 로테라는 이름의 여성을 언급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구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어떤 이가 특정 인물에 대해 말하며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얻거나 공감을 요구한다면 그는 사랑에 빠졌을 확률이 크다. 베르테르는 빌헬름에게 그녀가 얼마나 매력 있는 여성인지와 더불어 자신이 느끼는 시시콜콜한 감정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베르테르가 묘사한 로테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너무도 반한 나머지 그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도 없는 상태이다. 콩깍지가 제대로 쓰인 것이다. 사랑의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분별력을 상실한 베르테르의 머릿속에는 온통 로테 생각뿐이다.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로테와 춤을 추며 호흡을 맞춘다. 로테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기회를 얻은 베르테르는 설렘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임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녀에게 이 사실을 직접 들으니 베르테르는 우울한 기분이다.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식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로테에게 다가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은총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다. 로테와 사랑에 빠진 초창기, 기쁨에 휩싸인 베르트르는 앞으로 슬픔이 어떻게 자신을 파괴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헤어질 때, 그날 중으로 다시 만나 달라고 간청했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를 가릴 수 없었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일편단심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사랑이 일방향이라는 것이다. 애인이 있는 로테는 베르테르의 구애를 애써 외면한다. 베르테르는 낙담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순진한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끊임없이 구애함으로써 언젠가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희망한다. 심지어 자기 합리화를 통해 로테 역시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며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에 빠진다. 이제 로테는 베르테르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한편, 어느 날 베르테르는 로테의 애인 알베르트와 말다툼을 벌인다. 베르테르는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니라며 자살자를 옹호한다. 사실 베르테르의 입장에서는 얄밉게도, 알베르트는 별다른 단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괜찮은 사람이다. 알베르트는 이성적인 사람으로 그는 사려 깊은 태도로 베르테르를 정중하게 대한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알베르트가 로테의 남자라는 현실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다.
짝사랑에 지친 베르테르는 결국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로테가 없는 다른 지방에서 관리 생활을 할 계획이다. 이런 베르테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 만남에서도 끝까지 로테는 베르테르를 친구로서 대한다. 베르테르는 로테와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사랑과 우정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는 차라리 로테와 다음 생애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고 베르테르는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쏟아낸다.
“나는 기꺼이 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한 작별이라면 나는 참을 수 없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로테 씨! 잘 있어요, 알베르트! 우리 다시 만납시다” “내일 말이지요! 하고 그녀는 농담처럼 대꾸했다. 그 내일이 과연 무엇인지, 나는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아, 그녀가 내 손에서 자기 손을 뺐을 때, 그녀는 전혀 눈치를 못 채었다. 두 사람은 가로수길을 지나 걸어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달빛 속에 멀리 사라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땅 위에 엎드려 맘껏 울었다. 그다음 벌떡 일어나 테라스 위로 달려갔다. 아직 저 아래, 높이 솟은 보리수 그늘에 로테의 흰 옷이 출입문 쪽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나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지만 어느새 그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다른 지방으로 이사 간 베르테르. 그러나 새로운 직장생활은 만족스럽지 않고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로테의 부재가 베르테르는 참을 수 없다. 과거에는 우정이라는 핑계로 로테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로테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깊어지고 결국 베르테르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사표를 낸다.
지방 생활을 정리한 후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난다. 퇴사 후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현재나 과거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훌쩍 비워내려고 떠난 여행이지만 여전히 베르테르의 머릿속엔 온통 로테 생각뿐이다. 로테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심해지고 베르테르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슬픔에는 5단계가 있는데 바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다. 이 당시 베르테르는 분노 단계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뤄지지 않은 사랑으로 인한 슬픔은 분노로 바뀌어 버린다. 예를 들어, 베르테르는 알베르트가 로테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훨씬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베르테르는 자신의 열렬한 구애를 몰라주는 로테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병적인 집착으로 변질된 듯하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로테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베르테르. 그는 로테와 재회하고 예전처럼 어울리며 지낸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확대해석이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반응 하나에 전전긍긍해 본적이 아마 누구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내게 호의를 보여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가 번지거나, 그 반대의 경우, 불치병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비통함에 잠기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의 열병에 걸린 베르테르는 로테의 작은 몸짓, 시선,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어제 내가 떠나려고 나왔을 때,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그녀가 나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붙여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말이 나의 골수에 사무쳤다. 나는 혼자서 그 말을 백 번도 더 되풀이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며 횡설수설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라는 말이 잠결에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러고는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녀도 베르테르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약혼한 신분이기 때문에 베르테르의 구애에 부담을 느낀다. 결국 로테는 베르테르와의 관계에 선을 긋는다. 그녀는 베르테르에게 부디 다른 여자를 만나서 좋은 친구로 남자고 한다. 짝사랑을 해보고 거절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좋은 친구로 남자는 말이 거절당한 사람에게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로테의 단호한 태도에 베르테르는 절망한다.
로체를 향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한 베르테르는 결국 선을 넘는다. 그는 로테의 입술을 탐하고 그녀는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당황한다. 정숙한 로테는 약혼남이 아닌 다른 남자와 스킨십을 했다는 것이 필경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황급히 베르테르를 밀쳐낸 로테는 정색하고 그에게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며 엄포를 놓는다. 로테에게 첫눈에 반한 이후, 베르테르의 삶의 이유는 오로지 로테와의 사랑뿐이었다. 로테가 영원한 이별을 고한 것은 베르테르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로테에게 완전히 거절당한 베르테르는 상심에 빠진다. 살아갈 이유를 잃은 베르테르는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한다. 그는 유서를 통해 로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를 증명하려 했던 베르테르.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소름 끼칠 것이고 어떤 이는 애처로움을 느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처지에 따라, 베르테르의 자살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일 수도, 혹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폭력일 수도 있다. 베르테르가 보여준 사랑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베르테르는 진정한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아름다운 결말은 아니었을 지라도 베르테르가 보여준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하는 기적이다.
로테! 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치는 행복을 누려봤으면 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을 다시 찾게 해 드릴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기꺼이 용감하게 죽으려고 했습니다. (중략) 첫 순간부터 나는 당신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리본은 나와 함께 묻어주십시오. 당신은 내 생일날에 그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 것들을, 나는 얼마나 갈망하며 모아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아, 이 길이 나를 이리로 이끌어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진정해 주십시오! 탄환은 재어놓았습니다. 지금 열두 시를 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됐습니다. 로테! 로테! 안녕, 안녕!
맺음말
괴테는 20대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어린 나이에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베르테르의 권총 자살을 모방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현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베르테르 증후군’이라고 불린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을 정도이다. 실연의 후유증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마냥 슬퍼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잊히고 풋풋한 추억으로 미화된다. 다들 그렇게 잘 살아간다. 그리운 것이 그대인지 그때인지 헷갈려하면서 말이다.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h5goVYVi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