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인간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로운 인간
“인간은 태어날 때는 자유로웠는데, 어디서나 노예가 되어 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기실 그들보다 훨씬 더 노예가 되어 있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에 불을 지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오는 도발적인 첫머리이다. 루소가 남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사상은 혁명의 불씨가 되었고, 민중들은 부패한 권력자를 왕좌에서 끌어내렸다.
인류는 투쟁을 거듭해 실로 많은 영역에서 자유를 쟁취해왔다. 이를테면 신분제 및 노예제 폐지와 페미니즘, 오늘날 대다수 문명화된 국가의 시민들이 누리는 권리 - 사유재산, 선거, 언론, 연대, 사회 복지 등 – 는 불과 수 백 년 사이에 마련된 자유의 선물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이 권리들이 선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의 깃발 아래에는 수많은 주검들이 묻혀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부조리에 맞서 싸운 혁명가들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자유가 대체 뭐길래, 인간은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고 때로는 목숨도 바치는가?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논한 자유의 정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간은 그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자유론>은 자유를 내면적 의식의 자유 및 기호 추구의 자유 그리고 단결하는 자유로 구분했는데, 이때 자유의 핵심은 개성이다. 저마다 상이한 기질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특질을 온전히 보존하고 계발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자유다.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인간이 될 자격과 마땅한 권리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자유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성이다.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유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자유가 없는 인간은 가축과 다를 바 없다. 가령, 아무리 사나운 맹수여도 몇 달을 우리에 가둔 채 길들이면, 온순한 애완동물이 된다. 새장에 갇힌 독수리는 먹이를 주는 조련사 앞에서, 언제든 발톱을 감추고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앵무새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달라야 한다. 안락한 구속보다는 위험한 자유를 택하는 것이 인간의 책무이다.
한편, 근대 산업혁명은 자유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산업화 시대의 학교, 공장, 군대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탈취했다. 학교는 규율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쳤고 공장은 노동의 자율성을 제거했으며 군대는 개성을 말살한 대신 집단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기계 문명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따분하고 반복적인 일과에 만족하고 순종하는 인간, 그리고 이를 감시할 인간만 필요할 뿐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생산성 향상에 방해만 될 뿐이다. 대량 생산 산업화 시대에 개성은 죄악이다. 표준화된 규범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인간은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기계 문명은 개인의 자유를 빼앗은 대가로 물질을 주었지만, 이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속박을 낳았다. 근현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확산 이후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은 경악할 정도로 영리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과거에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 이를테면 국가, 종교, 무력이 수반된 착취 등이 강제성을 지녔다면, 현대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돈은 얼핏 강제성이 없어 보인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채찍질을 하며 돈을 벌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가지기 위해 노력할지 말 지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미디어가 주입한 환상 속, 현대인은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향해 달리며 자유를 팽개친다. 소유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은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돈을 숭배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의 경우, 자신이 자유롭게 인생의 오솔길을 거닌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경제라는 톱니바퀴에 예속된 노예일 뿐이다. 가장 비참한 노예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노예라는 괴테의 말에 비추어보면, 전례 없는 수준의 물질적 번영을 누리며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현대판 노예야말로 역사상 그 어떤 노예보다 가장 비참한 노예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는 예술품이었지만 조건반사적인 훈육을 거친 뒤 공산품이 된다. 사회화라는 끈으로 자신을 포박하고 소유를 위해 자유를 포기한다. 기성세대가 되면 적극적인 자유의 실천보다는 톱니바퀴의 부품이 된 대가로 안락한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에 관한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자유의 의미에 대해 깨닫고, 독자 스스로 자유로운 인간인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그리스인 조르바> 소개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는 젊은 지식인이다. 그는 머리를 식힐 겸, 크레타 섬 탄광에서 노동자들과 어울려 생활해보기로 결심한다.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노인 조르바를 만나고 동행하기로 한다. 조르바에 대한 화자의 첫인상은 “모태의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이다. 조르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자유'다. 그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이다.
조르바는 남다른 시간관을 가지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대기에서, 그의 초점은 오직 ‘지금 여기, 현재’에 맞춰있다.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인생을 사는 조르바는 온전히 현재의 행복을 만끽한다. 이는 일반적인 현대인이 갖고 있는 시간관과 무척 대조적이다. 조르바와는 달리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미래 지향적으로 살며 현재의 행복을 놓치기 일쑤이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잘 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개인적으로 꼽는 책의 최고 명장면은 다음의 대목이다. 조르바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화자를 힐난한다. 이 말을 듣고 화자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는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조르바에게 명치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 순종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사람. 자유롭지 않게 매여 있는 것을 알고도 줄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사람. 이것은 바로 나와 당신,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던가.
조르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지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맺음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니체의 초인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인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를 만나 큰 감명을 받고 자유에 관한 책을 집필한다. 책에 등장하는 지식인 화자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그는 살아생전 자유를 동경했지만, 각가지 의무에 구속되어 완전한 자유를 실천하지 못했다. 그러나 죽음은 그에게 자유를 선물해주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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