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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26. 2020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프롤로그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 알베르 카뮈 -


인간은 어리석은 동물이다. 이를 증명하는 역사적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염병과 관련된 다음의 사례를 공유하고 싶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덮쳤을 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세 시대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엘리트는 종교인들이었다. 당시 종교인들은 흑사병의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것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오늘날 과학과 세속 정신으로 무장한 현대인들이 보기에 이것은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다 같이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고 신에게 죄를 비는 것만이 흑사병을 해결할 최선의 대책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것이 바이러스 확산을 부추기는 최악의 대책임을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어리석은 짓을 자행하는 것은 대체로 후대의 사후적인 해석에 의해 밝혀진다. 어떠한 시대에 대해 가장 무지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리석음의 역사는 반복된다. 최근에 발생한 다음의 사례를 보자. 2019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잠재력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바이러스를 대면한 소수의 의료진만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뿐이다. 우한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던 리원량은 용기 있게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 공안에 호출되어 훈계를 들었고, 앞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썼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원량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숨을 거두었고 바이러스는 우한을 넘어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WHO (세계 보건기구)는 왕관 모양의 돌기로 뒤덮인 이 바이러스를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로 명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초기 대처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광산의 카나리아 역할을 용기 있게 자처했던 리원량의 목소리는 무지몽매한 권력 앞에 철저히 묻혀버렸고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씨름하고 있을 때, 세계는 이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진자가 발생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국만 발 빠르게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2020년 초, 다른 국가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일본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무리하게 도쿄 올림픽을 강행하려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과 중남미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시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관망하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중동은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을 부추길 수 있는 대규모 종교행사를 지속했다. 심지어 아시아 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동양인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현상을 조롱하며 동양인을 잠재적 바이러스 유포자로 취급하고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도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몇 달간의 행보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2020년 3월 WHO는 팬데믹을 선언했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0년 6월)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9백만을, 사상자 수는 47만 명을 넘겼다. 마스크는 이제 동서양 할 것 없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위해 각 국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했고, 그 결과 경제 시계가 멈추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정부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고 실업자 수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지도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연대하기보다는 반목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할 이때, 각 국의 정치인들은 본인의 실리를 챙기며 증오의 장벽을 쌓고 국수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는 역사적 진리가 다시 한번 증명된 순간이다.


한편, 주지하고 싶은 것은 경제나 정치 분야 이외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감시의 전방위적 확산이다. 예를 들어, 감시 국가로 악명이 높은 중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가히 충격적이다. 중국 정부는 공공장소에 안면인식 장치를 설치하고 시민들을 감시하며 마스크 착용 여부 및 발열 증상 등을 체크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은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며 마스크를 미착용했을 경우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는 위협적인 경고를 한다. 시민이 이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드론은 추적 비행을 실시하고 당국에 이 사실을 통보한다. 또한, 중국 경찰은 발열 탐지 및 신원 조회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 헬멧’을 쓰고 거리를 순찰한다. 근거리에 고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날 경우 헬맷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경찰은 즉시 그 사람에게 접근해 엄포를 놓는다.


비단 중국만 상황이 이런 것은 아니다. 각 국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고도화된 감시 기술을 총동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는 확진자 위치 추적을 위해 시민들의 금융 거래, 통신 기록 등 다양한 개인 정보와 CCTV를 열람했고 확진자의 동선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개인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코로나 확산 가능성이 큰 시설 – 노래방, 클럽, 헌팅 포차 등- 에 QR 코드 기반의 전자출입 명부 시스템을 도입했고 시민들로 하여금 위치 추적에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와 같은 감시 적용 대상은 고 위험 시설로 분류되는 곳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 정부도 중국처럼 감시 범위를 공공장소로 확산시키려 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콩과 바레인은 확진자에게 전자 팔찌를 채워 동선을 감시하는 제도를 통과시켰다. 대만은 ‘전자 울타리’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자가 격리자를 감시하고 통제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공무원이나 경찰이 집에 출동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정보기관이 영장 없이 코로나 확진자의 스마트폰에 접근해 위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프라이버시 보호에 민감한 서구권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감시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던 미국과 유럽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자 전방위적인 감시의 허용을 전향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양상이다. 가령, 영국, 독일, 이탈리아 정부는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실시간 스마트폰 데이터를 수집하기로 했다. 구글과 애플은 확진자와 접촉한 내역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출시했고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유럽 국가들은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급진적인 변화는 불과 지난 몇 달간 일어난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는 보통 수개월, 수년에 걸쳐 검토되어야 할 중대한 사안이 불과 수 일, 심지어 수 시간 만에 결정된다, 그리고 해당 사안은 일단 한 번 시행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감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긴급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활용된 첨단 기술과 감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된 정책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새로운 감시의 패러다임을 헝성하고 있고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어리석음의 역사는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미래 사회에도 프라이버시와 인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어쩌면 우리의 후손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탓할지도 모른다. "왜 그때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나요? 당신들이 허용한 전방위적인 감시의 확산이 야기할 디스토피아를 예상하지 못했나요? '초 감시사회'가 출현해 모든 개인적인 것들이 감시당하고, 절대 권력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전체주의가 부활하고, 자유가 침해되고, 그나마 부스러기처럼 남아있던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진정 몰랐던 건가요? 대체 그 당시 똑똑한 사람들은 무엇을 한 거죠?"이와 같은 후손들의 원망에 우리는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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