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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ug 10. 2020

닷컴 버블이 남긴 위대한 유산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2


우리는 인터넷을 매일 사용한다. 그런데 인터넷이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터넷의 모태는 1969년 미국 국방부에서 제작한 군사용 네트워크 아르파넷이다. 미국 국방부는 소련과의 전쟁에 통신 수단이 끊길 것을 대비해 아르파넷을 고안해냈다. 인터넷을 낳은 것은 정부였지만 키운 것은 민간이었다. 1970년대 인터넷 산업은 실로 자유로운 실험의 장이었다. 호기심 많은 컴퓨터 엔지니어들과 재능 있는 학자들은 인터넷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골몰했다. 이들은 그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전히 인터넷이 재밌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네트워크 건설에 참여했다.


그 당시 인터넷 산업의 참여자들은 주로 무정부주의 성향을 지닌 반 권위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유토피아가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리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실제로 1996년 존페리 발로가 인터넷에 올린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 선언문’을 보면 중앙집권적 권력에 대한 적개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산업 사회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넌덜머리 나는 괴물아. 나는 새로운 마음의 고향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두고 떠나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너에게는 없다”


주지하는 것은, 초창기 인터넷 산업의 발전이 철저히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미국이 아찔한 속도로 인터넷 산업의 패권을 장악해 나가는 동안 나머지 국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대치중이던 소련 역시 마찬가지다. 1962년 소련의 천재 과학자 빅토르 글루시코프가 ‘오가스’라는 분산형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개발 지원을 요청했지만 소련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당시 소련 지도층은 군비를 늘리고 우주에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최선의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관심 많은 괴짜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까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 시기는 199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이메일, 월드 와이드 웹, 웹 브라우저, PC 보급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해 인터넷의 대중화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비대면으로 소통하고 우체국에 가지 않고도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터넷의 영향력은 단순히 여기까지였다. 그 당시 인터넷으로 인해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에 견줄만한 정보혁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점을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인터넷 산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때부터이다. 1995년, 인터넷 브라우저 넷스케이프가 나스닥에 상장했고 주가가 폭등하며 닷컴 버블의 시작을 알렸다. 넷스케이프를 창업한 20대 청년 마크 앤드리슨뿐 아니라 인터넷과 넷스케이프의 잠재력에 투자한 주주들 역시 순식간에 떼돈을 벌었다. 인터넷의 상업성이 증명되자 엄청난 규모의 자본과 인재가 인터넷 산업에 몰려들었다. 넷스케이프뿐 아니라 야후, 이베이, 아마존 등 쟁쟁한 인터넷 기업들이 연달아 나스닥에 상장했고 인터넷 기업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인터넷 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별다른 수익 모델이 없어도 사업 정관에 ‘인터넷’을 넣기만 하면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해당 기업의 주식이 증권 거래소에 상장하면 주가가 폭등했다. 그러자 온갖 협잡꾼들이 돈 냄새를 맡고 인터넷 산업에 몰려들었고 쉽게 돈을 번 젊은 부자들은 연일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비이성적 과열’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익을 내지 못한 인터넷 기업들이 줄도산했고 인터넷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닷컴 버블 때 파티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제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며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2000년 들어 나스닥에 상장된 인터넷 기업들의 주식이 폭락하면서 마침내 닷컴 버블이 터졌다. 비관론자들은 닷컴 버블을 인간의 탐욕이 낳은 해프닝으로 취급하며 인터넷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예를 들어, 노벨상 경제학자 폴 크루구먼은 “2005이 되면 인터넷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팩스 기기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잘못된 억측이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닷컴 버블이 터졌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인터넷을 단순한 튤립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투기에도 순기능이 존재하는 법이다. 닷컴 버블 덕분에 인터넷 인프라가 순식간에 설치됐고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물밀듯이 몰려들어 인터넷 산업의 발전을 촉진했다.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사이, 영민한 기업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이용해 훌륭한 기업들을 일구어냈다. 혁신적인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덕분에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을 단순히 이메일을 주고받는 용도 이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궁금한 주제를 검색하고, 물건을 사고, 가상의 공간에 아바타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등의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닷컴 버블은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실로 쟁쟁한 인터넷 기업들이 닷컴 버블의 파고를 넘으며 위세를 키워나갔다. 이 기업들은 각자의 주특기 - 구글, 바이두: 검색 엔진, 아마존,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페이스북: SNS, 마이크로소프트: PC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 브라우저, 애플: PC 및 스마트폰, 텐센트: 게임 및 메신저 - 를 살린 거함을 앞세워 정보의 바다를 완벽히 장악했고 오늘날 우리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성공한 인터넷 기업들의 비결은 감시이다. 은밀한 사용자 감시와 교묘한 데이터 수집이 없었다면 인터넷 기업들은 이렇게 빨리 세를 불리지 못했을 것이다. 감시에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고안해 사용자들로부터 가급적 많은 데이터를 뽑아내고, 고객의 데이터를 광고주에게 팔거나 자사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서비스 향상에 활용하는 것이 이들이 영위하는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인터넷 기업들이 전방위적인 감시를 행하는 이유는 경영자가 대단한 도덕점 결함이 있거나 악의를 가져서가 아니라 (참고로 구글의 사명은 "악마가 되지 말자"이다) 단지 감시에 따른 데이터 수집이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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