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Aug 09. 2020

감시의 역사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1

다가올 초 감시 사회와 디지털 빅 브라더를 본격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감시의 역사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감시의 한자어는 볼 감  (監)과 볼 시 (視) 구성되어 있다. 감시의 정의는 ‘보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대상을 보는 것을 감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감시는 권력과 한 쌍이다. 감시는 권력을 지닌 강자가 약자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 배치하고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의 눈길을 인식하고 권력이 풍기는 무언의 압력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검열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감시의 본질이다. 


최초의 감시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감시가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임을 고려하면, 감시가 계급사회의 출현과 궤를 함께했을 것이라는 점은 합리적인 추측이다. 비교적 평등한 소규모 공동체에서 구성원들과 자원을 공유하며 살았던 수렵 채집 사회에 감시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야생 동물로부터의 위협, 외부 부족의 습격, 천재지변, 병균, 사냥, 식량 확보 등에 주의를 기울이며 시선을 내부 공동체가 아닌 주로 바깥쪽으로 돌렸다. 당시의 보는 행위는 통제를 위한 감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주시 (注視)에 가까웠다. 감시와 주시의 차이는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이 보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이다.


그런데 약 1만 2천여 년 전, 한 줌의 곡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이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정처 없이 떠돌던 유목민들은 비옥한 토양에 정착해 농경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사유재산, 계급 사회, 국가가 출현했고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노예로 부리며 착취했다. 지배 계급은 본인들이 누리는 특권과 재산을 잃지 않을까 전정 긍긍하기 시작했다. 지배 계급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단속하며 구성원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감시의 기원이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한 호모 사피엔스의 (보다 정확히는 지배 계급) 시선이 비로소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감시 대상은 가축과 노예, 그리고 여성이었다. 농경 생활을 하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밖에서 떠돌던 동물들을 실내로 유인해 가축으로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한때 사냥감이었던 동물들은 이제 호모 사피엔스의 친구이자 먹거리가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양, 염소, 돼지, 말, 소 등을 포획하여 즉시 죽이는 대신 우리에 가두고 감시하며 번식을 장려했다. 가축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감시 하에 먹이와 온기 어린 장소를 제공받았지만 그 대가로 동물 고유의 야생성을 잃게 되었다.  


노예 역시 감시의 주된 대상이었다. 고대 국가 경제는 전적으로 노예 노동력에 기반한 것이었기 때문에 노예들에 대한 착취 없이는 국가가 운영되지 않았다. ‘의무’라는 명목으로 고된 노동이 노예에게 부과되었고 순종적인 노예들은 평생을 주인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다. 그런데 노예들이 불평등한 지배 체제에 불만을 품고 혁명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지배 계급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불공평한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 법, 규율 등 갖가지 방법들을 고안해냈고 노예들을 수시로 감시하며 그들이 정보를 얻고 똑똑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여성이 감시의 대상이 된 계기는 농업혁명으로 인한 가부장적 일부일처제의 태동과 연관이 깊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가족 체계는 원래 섹스와 자원을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군혼제였다. 그러나 농엽 혁명으로 인해 계급사회가 형성되자 지배 계급 남성은 재산 상속을 위해 부성 확실성을 (아이의 아버지가 본인인 지 확인하려는 욕구) 높이고자 했다. 그 결과, 일부일처제라는 전례 없는 방식의 가족 체계가 대중화되었고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하며 여성의 성을 폭력적으로 억압해도 마땅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다. 또한, 농경을 할 때 있어서 물리적 힘이 요구되는 쟁기의 사용이 빈번하게 요구되자 여성의 경제적 기여도가 축소되었다. 여성은 가정 안팎에서 감시당하며 가장인 남성을 돕는 조신한 보조자이자 아이를 낳는 출산 기계로 전락했다. 프리드리히 앵겔스는 이러한 과정을 가리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표현한다.


기원전 3000년 ~ 4000년 사이 국가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면서 감시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기를 맞는다. 법, 사회, 행정, 군대, 조세 등 복잡한 체계를 갖춘 국가의 지배 계층은 보다 효율적인 감시 체계가 필요했고 감시의 목적 역시 단순한 내부 통제뿐 아니라 외세 침입 경계로 확장되었다. 야만인의 습격, 전쟁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국가가 쇠퇴하는 것을 지켜본 지배 계급이 감시의 시선을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고대 국가는 시민 안전과 국가 안보라는 명분 하에 감시를 위한 망루와 성벽을 세웠다. 감시의 대상은 이제 가축, 노예, 여성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비롯해 외부 세력까지도 확장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시민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감시 도구가 실상은 내부 지배 계급의 특권 유지 및 체제 안정을 위해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제임스 C. 스콧 은 <농경의 배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농경인이 자신의 작물을 인간 포식자와 인간이 아닌 포식자 모두로부터 보호해야 하듯, 국가의 지배층은 권력의 힘줄을 안전하게 지키는데 압도적일 만큼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경작민과 그들의 곡식 창고, 그들의 특권과 재산, 그들의 청지적 권력과 의례적 권력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중략) 도시 성벽은 국가 유지에 핵심적 요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잡아두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쌓은 이른바 항 아모리인 성벽 역시 아모리인이 국가 ‘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보다는 경작민들이 그 구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획되었을 것이다.”


한편, 중세에 접어들어 감시의 패러다임은 다시 한번 변한다. 감시의 주체자는 성벽 위 경비병에서 신으로, 감시의 대상은 일개 지역 사회 혹은 국가에서 전 지구로 확대된 것이다. 종교 세력은 저기 하늘 어딘가에서 신이 인간 사회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선전을 했다. 물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듯이, 지구를 감시하는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허구이다. 그러나 종교적 교리가 견고했던 중세에 신의 감시는 실로 강력한 규율 체계였다. 사람들은 사후의 삶이 현재보다 낫기를 기대하며 감시에 순응하고 권력자들에게 복종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간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사는 생활양식이 – 감시자가 항상 지켜보고 있는 - 수도원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편, 근대에 들어 감옥이나 군대에서나 사용될 법한 감시 체계가 학교, 공장, 병원 등으로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감시자의 지시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려 깊은 지식인들은 인간이 기계화되는 현상을 일찍이 간파하고 인간성의 상실 및 감시 사회가 도래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셸 푸코는 그의 기념비적인 역작 <감시와 처벌>에서 일망 감시체제인 판옵티콘의 개념을 제시하며 감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근대에 감시의 패러다임이 또 한 번 진화했음을 밝혔다. 참고로 판옵티콘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알라딘 http://reurl.kr/213111BA0QS

인터파크도서 http://reurl.kr/213111BA4SP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r2sitPZfmw4&t=6s


이전 01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