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Aug 16. 2020

중국의 만리방화벽과 디지털 민족주의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3

20세기 말 미국이 닷컴 버블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중국 인터넷 산업에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일이 발생했다. 1998년 중국 민주당은 인터넷을 이용해 공산당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체제 전복을 꾀했다. 중앙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민주당의 선전은 제대로 먹혀들었고 공산당 독재 체제에 반감을 가진 시민들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참고로 오늘날에는 정치인들이 SNS 유세를 하거나 정치 논객들이 온라인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인터넷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 공산당은 특단의 결심을 했다. 바로 정부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철저히 검열하겠다는 것이다.‘황금 방패’로 일컬어지는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터넷 사용자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황금 방패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거대한 만리 방화벽 (만리장성과 방화벽의 합성어)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중국 인터넷에 ‘천안문’, ‘티베트 인권’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거나 관련 정보가 게시되는 것이 일체 불허되었다. 또한, 사이버 경찰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정보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만리방화벽이 구축되면서 중국의 인터넷은 인트라넷으로 바뀌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했듯이, 중국 정부는 시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고 중국의 인터넷은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물론 중국 내에서도 계급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정보의 수준이 상이했다. 영어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엘리트 계급은 VPN (가상 사설 네트워크)을 몰래 설치해 사이버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했고 중국 정부는 이를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이것은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의 방에 조그마한 창문을 내어주고 이따금씩 밖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 것과 같다. 


한편, 만리방화벽이 구축되자 당시 인터넷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야후, 구글, 이베이 같은 미국 기업들은 쫓기듯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해야 했다.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인터넷을 감시와 통제에 활용하는 것에 우호적으로 협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국 내 사업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만리방화벽에 맞춰 감시 시스템을 재편하고 중국 정부에 협력하지 않는 인터넷 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중국 현지 기업들은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외국 기업들이 떠난 자리를 꿰찼다.  


초창기 중국 인터넷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의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정부의 비호 하에 급속하게 세를 불려 나갔다. 특히 중국 인터넷 기업들은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능수능란하게 애국심 마케팅을 행했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미국 자본가들을 위한 기업인 이베이와는 달리 알리바바는 중국 서민들을 위한 기업이라고 선전했다. 중국 정부와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마윈은 자신감에 차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는데 실제로 오늘날 알리바바는 이베이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이베이는 바다의 상어다. 그러나 알리바바는 양쯔강의 악어다. 알리바바가 바다에서 이베이와 싸운다면 지겠지만 강에서는 이긴다”


오늘날 글로벌 인터넷 업계에서 중국의 입지는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화웨이, 틱톡 등과 같은 중국 인터넷 기업들은 글로벌 인터넷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디지털 빅브라더로 성장했다. 2018년 에릿 슈밋 구글 전 회장은 인터넷 세계가 미국과 중국 주도로 양분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실로 그렇다.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바다의 패권을 장악했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은 정보의 바다를 완벽하게 제패했고 각 국의 대표 인터넷 기업들을 내세워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과격하게 표현해보자면,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은 사실상 미중 인터넷 기업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디지털 식민지인 셈이다.


미중 인터넷 산업 발전사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우선, 중국 인터넷 산업에는 정치적 동기가 상업적 동기보다 더욱 빨리 개입했다는 점이다. 체제 전복에 위협을 느낀 중국 정부는 전면에 나서서 인터넷 산업을 통제하고 만리방화벽을 구축했다. 이는 자유 시장 경제에 기반해 철저히 민간 기업 주도로 인터넷 산업이 발전한 미국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또한, 중국 정부가 사이버 경찰을 배치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검열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식 인터넷과는 대조되는 특성이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알라딘 http://reurl.kr/213111BA0QS

인터파크도서 http://reurl.kr/213111BA4SP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IbaEPgbTTbk&t=1s     

이전 03화 닷컴 버블이 남긴 위대한 유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