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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07. 2020

디지털 냉전의 서막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5

20세기는 첩보전이 꽃피운 시기였다. 첩보가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유용한 수단임이 증명되자, 각 국은 첩보를 관장하는 정보기관을 만들고 엘리트 요원을 양성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진영 간 첩보전은 전방위적인 감시의 일상화를 낳았다. 냉전시대 때, 미국과 소련은 표면적으로 무력 충돌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지속했다. 일반인들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기상천외한 방식과 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말이다. (스파이, 도청, 암호 해독은 기본이고 비둘기에 초소형 카메라를 달아 목표물의 사진을 수집하는 방식까지도 첩보에 동원될 정도였다)  


냉전시대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은 첩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긴밀하게 협력한 사이였던 미국과 영국은 전쟁이 끝난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해 1947년 UKUSA라는 비밀 정보 공유 협정을 맺는다. 여기에 다른 영미권 국가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2차로 참여하면서 ‘파이브 아이즈 (Five Eyes)’라 불리는 글로벌 첩보 연합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훗날 한국, 일본, 프랑스가 파이브 아이즈 연합에 뒤늦게 참여하지만, 초기에 참여한 영미권 국가들 대비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브 아이즈는 소련의 군사 활동을 감시하고 공산주의 진영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이 보유한 정보를 공유하고 초국가적 감시에 협력한다. 1960년대 파이브 아이즈는 ‘에셜론 (ECHELON)’이라는 통신 시스템 감청망을 개발해 소련 진영의 군사 외교 분야를 감청하기 시작했다. 에셜론은 고주파 통신, 위성, 해저케이블, 인터넷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목표물을 감청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개인 전화, 팩스, 이메일뿐 아니라 항공기, 함정 등 지구 상 존재하는 거의 모든 통신 시스템이 에셜론의 감시 대상이다. 에셜론은 냉전이 끝난 뒤 감시의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했고 여기에는 인터넷이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미국 NSA (국가안보국)는 파이브 아이즈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2년 창설된 NSA는 미국 국가 안보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비밀리에 수행하는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사실상 그림자 세력으로 불린다. 오죽하면 ‘그런데 없습니다 (No Such Agency)’,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Never Say Anything)’ 가 NSA의 별명일 정도이다. NSA는 에셜론을 활용해 소련 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에 잠재적으로 해가 될 만한 모든 개인, 단체, 기업, 국가를 감시해왔다. 


한편, 911 사태 이후 테러는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의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NSA는 첩보의 최우선 목표를 테러리스트 사전 적발에 두었다. 911 사태로 명성에 금이 간 미국과 NSA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감시를 실시하는데 여기에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었다. 또한, 미국의 애국법은 NSA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법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우리는 스파이 영화나 근거 없이 떠도는 음모론을 통해 정보기관 요원이 우리의 일상을 감시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추측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문제는 보안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비밀리에 활동하는 NSA 같은 정보기관의 꼬리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따라서 911 사태 이후 NSA가 일반 시민들을 감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별로 놀랍지 않다.


NSA의 추악한 면이 밝혀진 것은 2013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 세계를 감시해왔다고 폭로했다. NSA가 감시한 대상은 테러리스트나 적국의 주요 인사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포함되었다. 냉전 시대에 소련의 기밀 정보를 캐내기 위해 만들어진 NSA가 이제는 감시의 대상을 테러리스트에서 일반 시민들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에 따르면, NSA는 디지털 감시를 효과적으로 실시했다. 에셜론의 온라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NSA의 디지털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 (PRISM)’ 은 인터넷 기업의 서버에 접근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종의 백도어 프로그램이다. NSA는 프리즘을 활용해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야후, 스카이프 등 미국 인터넷 기업들의 서버에 접속해 사용자들의 검색 내역, SNS 포스팅, 채팅 내용, 이메일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척하던 미국 실리콘 밸리는 결국 권력 앞에 굴복하고 NSA의 감시에 협조한 것으로 탄로 났다. 마치 정부의 독재와 감시에 협력하는 중국 인터넷 기업들처럼 말이다.


NSA는 프리즘뿐 아니라 ‘엑스키스코어 (Xkeyscore)’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디지털 감시 체계를 고도화했다. ‘NSA의 구글’로 불리는 엑스키스코어는 전 세계 시민들을 감시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NSA 요원이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등 몇 가지 개인정보와 특정한 키워드를 엑스키스코어에 넣고 검색을 하면, 그는 상대방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열람할 수 있다. 그의 기본 신상 정보뿐 아니라 동선, 관심사, 자주 연락하는 사람, 온라인 친구 목록 등이 제삼자에 의해 낱낱이 파악되는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세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알고 보니 정보기관의 감시 장치였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이에 반감을 가진 것도 잠시. 사람들은 금세 편리한 스마트폰에 다시금 길들여졌고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제삼자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터넷 기업들은 단 일분이라도 더 사용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갖가지 중독적인 장치를 고안해냈고 - 빨간색 알림, 추천 콘텐츠, 팝업 정보 등등 - 우리는 스마트폰에 점점 종속되었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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