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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ug 22. 2020

911 테러 이후의 감시 사회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4

2001년 9월 11일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미국 상공을 날던 민간 비행기들이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납치된 비행기들은 뉴욕으로 향했고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나란히 박혔다. 쌍둥이 빌딩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붕괴했고 수 천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침울에 빠졌고 금융 시장이 마비됨에 따라 천문학적인 수준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세계 경찰 노릇을 하던 미국의 명성에 커다란 금이 갔다. 


미디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911 테러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붕괴하는 쌍둥이 빌딩,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린 사람,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부상자, 오열하는 유족들의 모습 등등. 911에 대한 각종 합성 이미지가 재생산되었고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할 때”라고 적었는데, 실로 그랬다. 911 테러의 참혹한 잔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테러에 대한 공포는 나날이 커졌다.


국가라는 괴물은 공포를 먹이로 삼아 덩치를 키운다. 국가 안보에 위협을 느낀 미국 정부는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911 테러 주동자로 지목한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 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할 것을 천명했다. 미국 정부는  ‘애국법’을 제정했고 미국 정보기관에 전례 없는 수준의 감시 권한을 부여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곧 ‘프라이버시와의 전쟁’을 의미했다. 국가는 안보를 빌미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적대시하며 이를 침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프라이버시는 이제 ‘마땅히 누려야 할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테러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의 수상한 꿍꿍이’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911테러 이후 감시를 정당화하는 법안과 첨단 기술의 발전이 맞물려 감시의 강도를 극대화했고 시민들의 일상은 촘촘한 감시의 그물망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최대 관심사는 테러리스트를 ‘미리’ 체포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프로파일링을 통해 특정 인물이 잠재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될 소지가 있는지 판단하고 감시의 강도를 결정한다. 고위험 군으로 분류되는 인물에게는 강도 높은 감시가 행해지고, 구체적 증거 없이 정황상 근거 만으로도 그는 기소되거나 심지어 징역형을 살 수도 있다. 문제는 프로파일링의 근거가 피부색이나 종교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 죄가 없는 중동 남자의 경우, 프로파일링에 의해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하며 각종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사실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은 단순히 테러집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민자, 유색 인종 (특히 중동 계열), 반 체제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 심지어 평범한 시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 프로파일링 하며 전 지구적 감시를 행했다.


911 테러는 의심의 문화를 낳았다. 테러범이 도처에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자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을 신고할 것을 장려하자 시민들은 이제 잠재적 용의자이자 밀고자가 되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경찰과 정보기관의 눈과 귀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1984>에서 묘사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놀라운 점은, 중국과 달리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911 테러 이후 이런 관행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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