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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12. 2020

필터 버블, 맞춤형 서비스의 함정

디지털 빅브라더의 횡포 #1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각종 인터넷 서비스들이 정확히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인터넷 세계의 규칙은 일반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컴퓨터 코드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업들이 어떻게 우리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상업화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거의 없다.

 

인터넷 서비스는 검색, SNS, 쇼핑, 커뮤니케이션, 콘텐츠, 금융 등 실로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세력을 키운 기업은 인터넷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디지털 빅브러더로 거듭난다. 디지털 빅브라더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은밀한 감시 도구, 신경을 분산하는 보조 장치, 정교한 알고리즘 등을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용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 더 나아가 데이터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된다. 


내가 보기에, 이와 같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그저 디지털 빅브라더가 제공하는 간편하고 저렴한 서비스에 길들여져 수시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인터넷에 접속할 뿐이다.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자유롭지 않으면서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인간만큼 절망적인 노예는 없다” 는 괴테의 말에 비추어보면, 매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본인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조종당하면서도 이 사실을 모른 채) 사람은 사실상 비참한 노예의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명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장에서는 디지털 빅브라더의 횡포를 밝히고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내용을 다룰 것이다. 먼저, 필터 버블에 대해 알아보자. 필터 버블은 <생각 조종자>의 저자 엘리 프레이저가 제시한 개념으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터넷 사용자들이 특정한 필터로 걸러진 정보만을 편식하며 버블에 갇혀 있는 현상을 지칭한다. 그는 한 때 열린 사고와 다양한 정보로 민주주의에 기여했던 인터넷이 필터 버블을 야기하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필터 버블의 문제는 필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정확히 어떤 근거로 우리에게 특정한 정보를 필터링 해 제공하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필터 버블에 떠 밀리듯이 들어간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볼 때는 적어도 어떤 성향의 미디어를 선택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습득할 때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필터 버블에 갇힌 채 일방적으로 (어떤 근거로 필터링됐는지 알기 어려운) 정보를 습득할 뿐이다. 


필터 버블의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타인의 세계를 체험하거나 이에 공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한국에 사는 20-30대 미혼 남성이라면, 당신이 작은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멕시코에 사는 40대 기혼 여성과 전혀 다를 것이다. 이 둘의 출신, 국적, 직업, 생활환경, 관심사 등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화 알고리즘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가 표상하는 세계 그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남긴 다음의 말은 필터 버블이 어떻게 거대한 단일 세계를 분해하고, 조각난 부스러기만을 선별적으로 표상하는지 잘 나타낸다.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여러분 앞마당에서 죽어가는 다람쥐가 지금 당장은 더 관심이 갈지도 모릅니다"


필터 버블에 갇힌 것은 정보의 바다에 위치한 작은 무인도에 고립된 것과 같다. 망원경이 없는 채로 말이다.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은 이 곳이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지도에 ‘아직 모름’으로 표시되는 것과, 지도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필터 버블은 사용자가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미지의 영역을 지도에서 깔끔하게 제거해 버린다. 맞춤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은 ‘필터 버블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탐험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상상의 거세는 곧 창의성 저하로 이어지고 전체주의적인 획일화를 낳는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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