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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25. 2020

인스타그래머블한 모두의 트루먼쇼

디지털 빅브라더의 횡포 #3

 

영화 <트루먼 쇼>는 평범한 남성 트루먼의 삶을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다룬다. 5천대의 카메라가 트루먼의 일상을 24시간 감시하고 17억 명의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삶을 시청한다. 트루먼 쇼와 여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차이점이 있다면, 주인공 트루먼이 자신의 삶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친구, 회사 동료, 길거리의 행인들, 그리고 심지어 아내까지. 트루먼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트루먼 쇼를 위해 고용된 연기자들이다. 트루먼의 일상은 기업들이 후원하는 암시적인 광고로 가득 차 있다. 우연한 계기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깨달은 트루먼. 충격에 빠진 그는 자유를 찾아 거대한 세트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일찍이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삶이 트루먼 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뜻대로 하세요> 에는 다음의 대사가 나온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요,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단지 배우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퇴장하지요.” 우리는 삶이라는 각본을 연기하는 배우이자 타인의 연기를 지켜보는 관객이다. 때로는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역할을 연기하기도 한다. 문명사회는 무대이다. 사회화는 무대 위 배우가 숙지해야 할 규칙이다. 사회화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배우가 관객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21세기 들어 생긴 주목할 만한 변화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SNS가 대중화되면서 쇼의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쇼의 연출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우리는 SNS에 온라인 자아를 생성하고 이것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매끄러운 보정 필터가 적용된 셀카, 애완동물 사진, 영화 취향, 그 날의 동선, 연애 여부 등이 SNS에 낱낱이 기록되고 공개된다. 스스로 기획하고 생산한 콘텐츠를 SNS에 업로드하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쓴다는 점을 보면, SNS쇼에서 우리의 처지는 배우보다는 감독에 가까운 듯하다.


이때, SNS 쇼는 반드시 희극이어야 한다. ‘좋아요’ 규칙이 지배하는 SNS 무대에는 슬픔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험 합격, 취업, 낭만적인 데이트, 결혼, 출산 등과 관련된 기쁜 콘텐츠를 SNS에 올리는 사람들은 많다. 반면에 시험 탈락, 해고, 연인의 외도, 이혼, 유산 등과 같은 내용의 슬픈 콘텐츠를 SNS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실제 삶은 (대부분의 경우) 적당한 기쁨과 슬픔으로 알맞게 버무려져 있다. 그러나 긍정의 필터가 탑재된 SNS는 삶의 기쁨만을 편향적으로 노출시키고 현실을 왜곡한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 SNS쇼에 질려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오프라인 일상에서 벌어진 일을 온라인 자아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오히려 우리는 온라인 자아를 위해 오프라인 삶을 기획하고 조작한다. 현실과 가상의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회를 가는 어떤 이에게는 작품 관람보다 인증샷을 찍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가 전시회에 간 주요한 동기가 인스타그램에 고상한 취미를 드러냄으로써 온라인 자아에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이때, 그는 인스타그램에 존재하는 온라인 자아를 위해 실재의 삶을 ‘인스타그래머블 (Instagramable)’ 하게 연출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사각의 매트릭스에서 전시되는 모두의 트루먼쇼. 오늘날 이 쇼는 점점 인스타그래머블한 방식으로 획일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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