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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26. 2020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훼손하는가

디지털 빅브라더의 횡포 #4

인터넷은 민주주의에 약 인가, 독 인가. 이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쟁적이다. 수십 년 전, 인터넷 발전 초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관주의자들이었다. 만리방화벽을 설치해 인터넷을 인트라넷으로 개조한 중국과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소수 세력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한때는 정부나 기업에 결탁한 소수의 언론사가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때가 있었는데 인터넷 발전으로 인해 이러한 언론 독재는 불가능 해졌다.


반면, 오늘날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나도 역시 인터넷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변질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역기능이 순기능을 능가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될 뿐이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우선 아랍의 봄 사태를 보자.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발생한 아랍의 봄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해 아랍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화 혁명을 뜻한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아랍의 봄의 출발점이 되었다. 인상적인 점은, 혁명의 불씨가 퍼져 나가는 데 있어서 SNS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분신자살, 집회, 정부의 무력 탄압 등 반 정부 시위대가 만든 콘텐츠가 들불처럼 SNS에 번져나갔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승리했다. SNS가 아랍의 봄과 민주화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페이스북-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은 아랍의 봄과는 전개 양상이 전혀 다르다. 데이터 컨설팅 기업 캠브리지 애널리티카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캠프에 의해 고용되었다. 캠브리지 애널리티카는 사전에 빼돌린 5,000만 명의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참고해 정교한 타겟팅 광고를 수행했다. 데이터를 통해 파악한 중도 정치 성향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트럼프 당선에 유리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것이다. 게다가 캠브리지 애널리티카는 트럼프의 정적 힐러리를 근거 없이 비방하는 내용의 네거티브 콘텐츠도 전략적으로 노출시켰다. 결과는 데이터의 승리였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힐러리를 선거에서 이긴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캠프리지 애널리티카 임원들은 자신들이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캠브리지 애널리티카는 2016년 브렉시트 여론전에도 관여해 브렉시트 찬성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기여했다. 일개 기업이 SNS를 활용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한 국가, 더 나아가 세계의 명운을 바꾼 것이다.


한편, 미얀마에서 야만적인 인종 청소가 발생한 것은 2017년이었다. 불교를 믿는 미얀마 정부와 군대는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 족을 대량 학살했다. 참고로 미얀마 시민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가장 대중적인 매개체는 페이스북이다. 따라서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 족 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증오와 선동의 매개체로 활용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로힝야 족을 악마로 묘사하는 가짜 뉴스와 혐오 콘텐츠가 미얀마 페이스북을 뒤덮었다. 유엔 진상조사단은 페이스북이 혐오를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추후 페이스북은 미얀마 로힝야 족 사태의 문제를 인정하고 미얀마 군부 계정을 삭제했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었다. 이때는 이미 수 천명의 로힝야 족이 학살당하고, 수 십만 명이 고된 피난길에 오른 후였다.


아랍의 봄 (2010~2012), 페이스북-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 (2016), 그리고 미얀마-로힝야 족 사태 (2017)까지. 사건이 발생한 시기와 사건 별 양상을 주목해 보자. 10년 전 아랍의 봄이 일어났을 때 인터넷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주체는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인터넷을 투쟁의 도구로 이용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정보가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수년 전 발생한 사건들은 상황이 다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히려 인터넷을 교묘히 활용해 시민들을 조종하고 부조리한 만행을 저질렀다.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사태를 방관했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인터넷은 ‘괴벨스의 입’으로 불리던 라디오처럼 선전 수단으로 변질되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인터넷이 정치 분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정치인이 SNS로 유세 활동을 하고, 정부 기관이나 정치 단체가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게 된 것은 불과 수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정치에 영향을 미친 역사가 짧은 만큼 우리에게는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그동안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신속하게 형성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인터넷은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남용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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