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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Sep 13. 2020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합법적인 마약이다

디지털 빅브라더의 횡포 #2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디스토피아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책이 있다.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멋진 신세계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태어난, 서기 1863년을 인류의 새 기원으로 삼은 미래 세계이다. 포드 기원 632년 (서기 2496년) 이 시대적 배경인 멋진 신세계는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그린다. 멋진 신세계 속 최고 권력자 총통은 사회 안정을 위해 시민들의 개별성과 감정을 제거한다. 빅브라더의 통제 방식이 공포인 반면, 총통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은 쾌락이다. 정부는 ‘소마’라는 마약을 주기적으로 배급함으로써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운다. 시민들은 울적한 기분을 느낄 때마다 소마를 섭취하고 그들의 뇌는 마취된다. 시민들은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않으며 착취당한다.


내 생각에, 오늘날 세계는 <1984>와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 사회와 점점 닮아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는 전자에 가까운 반면,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디스토피아의 중심에는 ‘우아한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친절한 디지털 빅브라더가 있다. 특히 디지털 빅브라더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하는 갖가지 흥미로운 서비스들은 시민들의 뇌를 마취시키는 소마와 비슷하다. 누구나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쉽게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소마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합법적인 마약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작가 니콜라스 카의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나의 뇌를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조차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하고 싶어 했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는 내게 살과 피와 같은 워드프로세서가 되었고 인터넷은 나를 초고속 데이터 처리 기기 같은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할 (HAL,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슈퍼 컴퓨터)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


당신은 아마 니콜라스 카의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별다른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심지어 걷거나 운전을 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무언가를 검색하고 싶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고, 뉴스를 찾아보고 싶고, 내 피드에 ‘좋아요’가 몇 개나 달렸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한다. 실제로 해외 리서치 기관 디스카우트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 평균 2,617번 스마트폰을 만진다. 문제는 이러한 중독 증세가 연령대가 어릴수록 더욱 심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과기부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3명 중 1명은 스마트폰 중독이다. 스마트폰 중독 증세는 어린 연령대를 중심으로 매년 심화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한 우리의 편집증적인 집착이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다. 이것은 디지털 빅브라더에 의해 의도된 중독이다. 그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중독시키기 위해 가차 없는 경쟁을 벌인다.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지껄인다. “날씨를 확인해보는 거 어때?”, “뉴스 알람 설정이 필요하지 않니?”, “방금 네 친구가 너를 이 그룹에 초대했어. 확인해 봐” 등등.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다. 바로 관심 끌기, 신규 사용자 유입, 친구 초대, 서비스 사용 시간 늘리기 등을 통해 네트워크 크기를 키우고 황금알을 낳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에 도파민 분비를 자극해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중독시킨 대가로 말이다. 마치 담배 회사나 마약 중개인처럼 말이다.


디지털 빅브라더는 암시적인 장치를 통해 우리의 뇌에 특정한 습관을 심는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빨간 알람에 반응하거나, 스크롤을 내리거나, 다음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클릭하고 검색해보는 행위는 모두 디지털 빅브라더에 의해 의도된 결과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디지털 빅브라더에 고용된 수 천, 수 만 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우리를 대상으로 작은 실험을 진행한다. 특정한 콘텐츠에 무슨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광고를 클릭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알림을 보내야 더 오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지 등을 연구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실험실의 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중독성에 대해 넷플리스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기업은 지구 상에 그리 많지 않다. 넷플릭스는 '빈지 와칭 (폭식을 뜻하는 Binge와 시청을 뜻하는 Watch의 합성어로 드라마, 영화 등을 몰아서 보는 것을 뜻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고객을 중독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기업이다. 넷플릭스는 무수한 맞춤형 콘텐츠로 관심을 유도해 우리가 TV 방송 케이블을 끊고 넷플릭스를 구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수 십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넷플릭스 드라마 시즌 1편을 '정주행'하면, 또 다른 재밌는 드라마가 추천되거나 시즌 2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우리가 빈지 와칭을 하는 동안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분석하고 우리가 넷플릭스를 끊지 못하도록 더욱 재밌고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제시한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말한다. "넷플릭스의 경쟁자는 인간의 수면 시간입니다" 이 말이 오싹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넷플릭스에 중독된 것이다.


한 개인이 인터넷,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을 인지해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디지털 빅브라더의 유혹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애초에 불공정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조상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몸과 뇌는 그다지 진화하지 않았다. 반면에, 컴퓨터는 무어의 법칙에 기반해 매년 2배 이상 연산 능력이 개선되고 있다. 또한, AI 알고리즘은 빅 데이터를 빨아들이며 기하급수적으로 자가발전하고 있다. 한 인간의 뇌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야지!) 그와 다른 목적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사용자의 관심을 끌고 나를 고용한 회사의 서비스에 중독시켜 돈을 벌어야지!) 경쟁해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나는 무척 회의적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점은,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한 내부고발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부사장을 맡은 차마트 팔리하티야는 페이스북을 “도파민에 의해 작동하는 단기 피드백 순환고리”라고 정의하며, SNS가 마약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또한, 구글의 제품 매니저였던 트리스탄 해리스 역시 구글이 인간의 시선을 탈취하고 자신들의 서비스에 묶어두기 위해 더욱 중독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인터넷 기업들이 비록 디지털 빅브라더로 거듭나긴 했으나,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위 간부들 개개인이 엄청난 악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대체로 선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훌륭한 위인들이다. 그러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들의 문제는 단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기술의 긍정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기술의 부정성이 미칠 악영향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통제하기 어려운 인조인간을 창조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알라딘 http://reurl.kr/213111BA0QS

인터파크도서 http://reurl.kr/213111BA4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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