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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Oct 10. 2020

죽거나 혹은 감시당하거나

진화하는 디지털 빅브라더 #2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누구나 죽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이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희귀한 종이다. 비록 많은 현대인들이 이 단순한 사실을 망각한 채 사는 것 같기는 하지만.


로마의 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남겼다. 실로 그렇다. 왕과 거지, 문명인과 야만인, 종교인과 비종교인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절대 권력을 누렸던 진시황조차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불멸에 대한 그의 염원은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소모해가며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부자가 유일하게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그러나 21세기 부자들은 죽음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책 <200세 시대가 온다>의 저자 토마스 슐츠는 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들과 기업들이 불멸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의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음을 밝힌다. 특유의 기술 낙관주의로 무장한 그들은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3D 프린터 등 갖가지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대 수명을 늘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죽음마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글의 기술고문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하급수적인 기술 발달 덕분에 2045년쯤 되면 인간이 불멸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스마트 헬스케어, 디지털 헬스케어, 바이오 테크놀로지, 바이오 엔지니어링 등등. 무병장수와 불멸을 가능케 할 최첨단 기술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한데, 통일성을 위해 이 책에서는 스마트 헬스케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마트 헬스케어의 원천이 되는 기술을 제공하고 의료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체가 디지털 빅브라더라는 점이다. 실제로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 유수의 인터넷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단순히 사용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예방’해 수명을 연장하고 불멸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빅브라더가 수행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의 양태는 상이하지만, 감시와 데이터 수집이라는 감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메커니즘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스마트 워치, 스마트 밴드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디지털 빅브라더의 스마트 헬스케어 데이터 수집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애플 워치를 넥스트 아이폰으로 만들어 헬스케어 버전의 앱스토어를 구축하려 하고 있고, 삼성 역시 갤럭시 워치를 출시하며 애플의 뒤를 쫓고 있는 양상이다. 또한, 구글은 약 2.5조라는  거금을 주고 최근 스마트 워치 회사 핏빗을 인수했으며 아마존은 스마트 밴드 할로를 출시했다.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은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을 앞세워 보급형 웨어러블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디지털 빅브라더는 왜 웨어러블 사업에 공을 들일까? 웨어러블 기기는 24시간 사용자의 행동을 추적하고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맞춤형 진료를 제공한다. 사용자는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함으로써 수면의 질, 심장 박동, 걸음 수, 칼로리 소모량, 호흡 등을 체크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웨어러블 기기를 스마트폰에 연동하면 비대면 원격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 의약품을 집으로 배송받는 것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불법이지만 해외에서는 가능한 시나리오다) 여기서 웨어러블 기기의 핵심 기능은, 사용자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사용자에게 경고를 하고 진료를 받게끔 유도함으로써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즉, 웨어러블 기기는 사용자 본인보다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 더 잘 아는 주치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래에 나노 로봇, 유전자 편집, 디지털 신약 기술 등을 활용해 지금보다 훨씬 수준 높은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단순한 심박 측정 데이터뿐 아니라 유전자와 같은 민감한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보다 개선된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기대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마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스마트 헬스케어의 미래를 낙관하는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기술 낙관주의자들이 전망하는 장밋빛 미래가 정말로 실현될 수 있는지 여부를 논하는 것은 이 책의 주요 논지가 아니다. 주지하고 싶은 것은,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이라는 미명 하에 디지털 빅브라더가 사용자를 24시간 감시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점차 정당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메일, 검색 엔진, 메신저, 쇼핑, SNS 등 갖가지 편리한 온라인 서비스를 (도저히 사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제공한 대가로, 그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데이터를 추출해내는 것이 정당화된 것처럼 말이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알라딘 http://reurl.kr/213111BA0QS

인터파크도서 http://reurl.kr/213111BA4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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