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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Oct 16. 2020

스피커가 당신의 일상을 감시한다

진화하는 디지털 빅브라더 #3

조지 오웰의 <1984>에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 기기가 등장한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당은 사회 통제를 위해 텔레스크린을 곳곳에 설치하고 시민들을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은 시민들의 음성과 행동을 감시하며 이상 징후가 감지될 경우 즉시 당에게 보고하고 조치를 취한다. 시민들은 텔레스크린의 전원을 끌 수 없고 심지어 집에서도 텔레스크린으로부터 감시당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이 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일기를 몰래 쓰거나 연인 줄리아와 비밀스럽게 사랑을 나눌 때에도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텔레스크린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는 예언가였다. 그의 불길한 예언은 오늘날 불행히도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 텔레스크린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CCTV, 센서가 부착된 자동차, 아침마다 날씨를 알려주는 스마트 스피커까지. 갖가지 최첨단 제품들이 형태만 달리할 뿐 감시라는 텔레스크린의 본질적인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다만, <1984> 속 텔레스크린과 현대판 텔레스크린의 차이점은, 후자의 감시가 세련되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AI 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의 감시는 인상적이다. 스마트 스피커는 단순히 음악을 재생하고 날씨를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사용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고, 일정을 관리해주며, 사용자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묻는 수준으로 거듭나고 있다. 엉뚱한 질문에도 재치 있게 답변을 곧잘 해내는 것을 보면 마치 스마트 스피커가 유머 감각이 있는 개인 비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흥미로운 점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 스피커를 접하고 교감하며 자란 아이들의 경우, 스마트 스피커를 아예 친구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볼 때, 앞으로 스마트 스피커는 우리 삶에서 TV 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문제는 스마트 스피커를 제공하는 디지털 빅브라더들이 알고리즘 개선이라는 미명 하에 사용자의 일상을 은밀하게 엿듣는다는 점이다.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현재 스마트 스피커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디지털 빅브라더들은 모두 예외 없이 사용자의 일상을 염탐했다는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휩싸인 바 있다. 갖가지 내부고발과 외부 연구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은 사용자의 민감한 음성 정보 – 이를테면 회사 기밀을 논하는 회의, 마약 판매 현장, 성관계 – 를 수집하고 알고리즘 개선을 위해 해당 데이터를 자사의 데이터 센터로 전송했음이 탄로 났다. 물론, 그들은 사용자의 음성 데이터를 암호화해서 저장하기 때문에 이것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는 식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수사 기관이 요청하거나 정부가 압력을 넣었을 때에도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해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 스피커는 디지털 빅브라더의 감시를 질적으로 개선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기존에 디지털 빅브라더의 데이터 수집 경로는 인터넷뿐이었고 감시 범위는 사용자의 다양한 온라인 활동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 빅브라더는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음성 데이터를 상시 추출해내고 사용자의 오프라인 일상을 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마치 <1984> 속 텔레스크린처럼 말이다. 스마트 스피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당신이 집에서 쉬거나 소파에서 TV를 보거나 심지어 침실에서 자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스마트 스피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사물인터넷 (IoT, Internet of Things)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화하면 텔레스크린은 더욱 원자화된 형태로 우리의 주변에 존재할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은 사물 인터넷이 야기할 초 감시 사회의 양상을 가장 빨리 파악하고 사업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아마존 에코를 출시해 스마트 스피커 시장을 개척했다. 아마존의 목표는 단순히 스마트 스피커 시장을 장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스피커뿐 아니라 모든 가전제품, 자동차 등에 알렉사를 탑재시키는 것이 제프 베조스의 비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물인터넷이 아마존 플랫폼을 거치고 기기끼리 알렉사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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