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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Oct 23. 2020

안면 인식 기술,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현실이 되다

진화하는 디지털 빅브라더 #4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가능한 미래 사회를 다룬다. 영화 속 경찰은 범죄를 저지를 만한 사람을 미리 체포함으로써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는다. SF 영화답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갖가지 미래지향적 기술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안면 인식 기술이 주목할 만하다. 영화에서는 얼굴이 곧 신분증이다. 시민들은 얼굴을 통해 신원 인증을 하고 경찰은 안면 인식 기술을 통해 범죄자를 색출한다. 또한, 시민들이 거리를 지나갈 때 전광판은 시민들의 신원을 파악하고는 그에 맞는 맞춤형 광고를 내보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안면인식 기술은 오늘날 더 이상 픽션이 아니다. 특히 중국을 필두로 안면 인식 기술은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중국의 ‘톈왕(天網·하늘의 그물이라는 뜻)’ 프로젝트는 안면 인식 기술 활용의 대표적인 예이다. 2015년 시작된 톈왕 프로젝트는 국민의 안전과 범죄좌 추적이라는 명분으로 6억대 이상의 CCTV를 중국 각지에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톈왕 프로젝트로 인해 중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 당 CCTV가 가장 많은 감시 국가가 되었다. AI에 기반한 안면 인식 기술이 탑재된 중국의 CCTV는 단순히 영상을 녹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상자의 얼굴 표정, 움직임, 걸음걸이 등의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 센스타임, 이투, 메그비, 하이크 비전 등과 같은 차세대 디지털 빅브라더들이 중국 정부의 톈왕 프로젝트에 협조하고 있다.


톈왕은 중국 경찰의 범죄 수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경찰은 5만 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해 있는 대형 콘서트 장에서 수배 중이던 범죄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전적으로 안면인식 기술이 탑재된 CCTV 덕분이었다. 또한, 안면 인식 기술 덕분에 미제 사건으로 남은 살인 용의자를 사건 발생 16년 만에 체포하는 일이 있었던 적도 있다. 당시 살인 사건의 용의자는 절로 도주해 스님 행세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안면 인식 시스템을 조회해 보던 중, 미제 살인 사건의 용의자와 스님의 얼굴이 일치하다는 사실을 발견해냈고 뒤늦게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중국의 안면 인식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 지를 증명한다. 오늘날 중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 인식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범죄율이 낮아진다는 명분으로 (이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정부가 감시를 정당화 한 논리와 동일하다) 안면 인식 기기의 대중화를 장려하고 시민들의 얼굴 데이터를 강제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부로 중국 시민들은 휴대폰을 개통할 때 얼굴을 의무적으로 스캔해야 한다. 과거에는 휴대폰 개통 시 신분증만 제출하면 됐지만 이제는 얼굴 데이터를 당국에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14억 중국 인구 중, 99% 가 넘는 비율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봤을 때, 휴대폰 개통 시 얼굴 데이터를 등록하라는 조치는 사실상 주민등록증 발급과 유사한 강제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시민들로부터 수집한 얼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면 인식 알고리즘을 고도화한다. 또한, CCTV 뿐 아니라 여타 안면 인식 기기를 아파트, 학교, 공중 화장실, 쇼핑몰, 호텔, 대중교통 출입구, 은행, 관공서 등에 설치해 시민들을 감시한다. 마치 <1984> 속 텔레스크린처럼 말이다. 안면 인식 기기는 단순히 대상자의 신원을 조회하는 것뿐 아니라 그의 행동을 통제하는데 활용된다. 예를 들어, 안면 인식 기기가 설치된 중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중국 공중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안면 인식 기기에 얼굴을 인증해야 한다. 한 번에 일정량의 휴지만 공급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휴지를 추가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수 분을 기다리고 다시 안면인식 기기에 얼굴을 인증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안면 인식 기기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를 낯설게 여기지 않고 본인이 실시간으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중국의 안면 인식 시스템은 신원 인증 및 범죄자 감시뿐 아니라 결제 수단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디지털 빅브라더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모바일 페이는 안면 인식 기능을 지원한다. 중국 시민들은 핸드폰을 꺼낼 필요 없이 안면 인식 기기에 얼굴을 인증하면 바로 결제를 할 수 있다. 얼굴이 곧 신분증이자 신용카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안면 인식 시스템이 너무나 편리하고 강제성을 띄기 때문에, 중국 시민들은 좋든 싫든 얼굴 데이터를 제공하고 이 시스템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안면 인식 굴기가 무서운 것은, 이 기술이 초 감시사회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안면 인식 기술을 시민의 편의성 증진 및 범죄자 색출의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얼굴 데이터 등록이 의무화됨에 따라, 중국 정부는 체제에 불만을 품은 세력, 소수 민족,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손쉬워졌다. 또한, 안면 인식 알고리즘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미묘한 얼굴 표정 변화 만으로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미래에는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예컨대, 권위적인 정부가 사람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감시 카메라로 개개인의 표정을 파악한 뒤, 지도자의 연설에 진심으로 환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식별하고 처벌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얼굴 범죄 (Facecrime)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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