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적인, 너무나 세상적인...

by 정민유


이혼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2년 내 생애 가장 세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도 주일에 교회는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주중의 삶은 20대에 하지 못했던 여한을 푸는 시간이었다.


엄한 아빠 때문에 서클활동조차 못했던 난 소모임에 가입해서 중년의 서클활동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연합서클활동이라고 해도 좋겠지.

처음 가입한 모임은 여행과 공연 관람을 하는 곳이었다. 가입하고 첫 번개모임이 있었다.

난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 용감하게 참석했다.


이미 10명 이상 모여 있는 장소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거기선 1살만 많아도 언니, 오빠라고 불렀고 1살만 어려도 말을 놓았다.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멤버인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심리상담사라는 가면을 벗고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서 너무 자유로웠다.

어느 누구도 나를 속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통 모임에선 술을 마시는데 난 술을 잘 못 마시니 한 친구가 소주에 콜라를 섞어서 마셔보라고 헜다.

상담사로서 술 마시는 심리가 평소에 궁금하기도 했고.. 그렇게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좀 업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상담하며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는 듯했다.


게다가 2차로 가는 노래방에선 평소에 좋아하던 록발라드를 불렀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마치 가수가 된 착각을 일으킬정도로... 춤추는 걸 좋아하는 여동생과 춤추러도 다녔다. 20대에 그렇게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아빠 때문에 추지 못한 한을 풀었다.


멤버들과 대학로에 연극도 보러 가고, 미술 전시회도 보러 가고, 뮤지컬도 싼 가격에 보러 다녔다. 그리고 강원도 여행도 다녀왔다. 사람들을 만나면 천진난만하게 '깔깔깔' 박장대소하며 웃을 수 있었다. 이혼 후의 외로움을 그렇게 잊고 지냈다.


항상 상담사로서 차분하고 지적이고 우아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게 싫증이 날 때여서 이런 일탈이 즐거웠다. 더 오버해서 밝고 강하고 센 여자처럼 행동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상담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에 아주 딱이었다. 써니는 톡톡 튀고 천진난만하고 인기 만점인 회원이 되었다.


거기서 난 끈끈한 인간애를 경험했다. 서로 힘든 일이 있을 땐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들..


교회에 나를 따라 예배를 드리러 온 멤버도 있었다.

나보다 3살 많은 오빠였는데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 남자친구 아니고 그냥 모임 오빠예요."


1년 이상 그렇게 놀았더니 슬슬 모임에 나가는 게 시들해졌다. 사람들은 서운해했지만 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재미가 없어져서 소모임을 떠났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세상적인 즐거움이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난 거기서 평생 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통한 치유를 경험했다. 50대에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실컷 놀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준 소모임.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적인, 지극히 세상적인 모임이었지만 나에겐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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