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생일날 밥 사주려다가 거절당한 엄마.

엄마의 이혼과 재혼의 휴유증

by 정민유


"카톡"

한밤 중에 울린 카톡.

눈을 떠서 확인해 보니 큰딸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4일 전에 딸들에게 카톡을 했다.

세 딸 중에 첫째와 셋째 딸 생일이 5월이어서 엄마가 맛난 거 사주겠다고..

보내면서도 아이들이 만나자고 할 거란 기대는 별로 없었다.

만나자고 시도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3일이 지나도록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역시나..'

대답 없음이 만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대답이라 여기고 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답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느낌.

그런데 드디어 어젯밤 답이 온 것이다.




사실 읽어보기가 겁이 났다.

무슨 얘기라도 아플 것 같았다.

그 대답을 고민 고민하며 썼을 큰애의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엄마가 되도록이면 상처를 덜 받게 쓰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지...

뭐라고 답을 써야 할지 생각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긴 카톡의 요점은 '아직은 만나기 싫다'였다.

그렇지만 아주아주 완곡한 표현으로.


"괜히 엄마가 내 생각만 하고 너희 만나자고 해서 마음 불편하게 했네..

큰언니가 어제 카톡 보내서 너희 마음과 입장에 대해 얘기해줬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돼.


엄마 만나 편하게 밥 먹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도 않았을 텐데...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어서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잘 지내고...

사랑해♡"

이렇게 답을 보냈다.




딸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지 벌써 2년이 되어온다.

암수술을 하고 나서 만나고 그 해 10월에 난 재혼을 했고 그 이후 엄마의 재혼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아이들은 최소한의 연락만 하며 지냈다.


큰딸은 결혼도 하고 자기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으니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엄마의 힘든 결혼생활을 그래도 제일 많이 아니까.

하지만 둘째, 셋째 딸은 아직은 머리로는 이해할지라도 마음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늦둥이인 막내딸은 가장 어렸기에 엄마를 빼앗긴 느낌이 제일 강했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가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을 했는지 잘 모르니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갔다고 느끼는 마음 때문에 엄마가 더 미웠으리라.




난 새로운 사랑을 늦게나마 만나 행복하지만 딸들을 생각하면 가슴속에 묵직한 돌덩어리가 짓누르는 느낌이다.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많았던 사람인데..

엄마 행복을 위해 자식을 고통 속에 빠지게 한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버렸다.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 알기에..

내가 한 선택에 대한 대가라는 것도 알기에...


그래도 이제는 좀 마음 문을 열고 만나주지 않을까? 실오라기 만한 희망을 가지고 연락했던 건데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하루 종일 우울하고 가슴 한구석이 시렸지만 그 또한 내가 겪어야 할 몫이니 담담히 감내하고 있다.




아무리 황혼이혼을 했다고 해도,

아무리 성인자녀가 있다고 해도

가정이 깨어진다는 건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이다.

그 충격으로 인한 휴유증은 모든 가족의 마음 속에 생채기를 남긴다.


그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건 개개인의 속도가 다 다르다.

그리고 치유되더라도 흉터는 남겠지.

잘못 선택한 결혼의 대가가 이토록 큰 것이라는 걸 알기에 결혼을 하려는 커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돕고 싶다.

모든 예비신혼부부들이 혼수를 준비하듯 결혼준비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실컷 슬퍼하고 내일부터는 슬픔과 우울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비록 딸들에게 밥 사주기를 거절당한 엄마지만

딸들에 대한 마음은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건 내 자유니까.

사랑해... 울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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