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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Apr 04. 2022

잘 느끼는 그녀 _ # 1-3

# 1-3 공감 능력자 (3)

윤회는 주말인 토요일에 시간을 내어 대형 고속버스 터미널 옆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이전에 중훈이 충고한 대로 시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윤회의 연락에 시훈은 일부러 토요일 마지막 외래진료 타임에 오라고 했다. 간단하게 진료 보고 처방을 해 준 뒤 식사라도 한 끼 하자는 말도 덧붙이면서.


“구윤회 책임님 오랜만이야, 그동안 별고 없었고? 그동안 연락 없어서 생사를 걱정했잖나 큭큭...”


이시훈 선생의 능글맞은 인사에 무뚝뚝하게 한 일(一) 자를 그리고 있던 구윤회의 입가가 살짝 말랑하게 풀렸다.


“저번에 만났을 때 이시훈 선생이 가르쳐준 한국 속담이 있잖아.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이야 몇 달 만에 한국사람 다 됐네! ”

“미국에도 있는 속담이지. No news is good news.”


몇 달 만에 성사된 동갑내기 두 남자의 만남은 화기애애하게 시작됐다. 그것도 잠시, 만나기로 했던 원래 목적을 잊지 않은 시훈이 입을 열었다.


“형이 그러던데, 잠을 잘 못 잔다며. 구체적으로 뭐 어떻게 잠을 잘 못 자.”

“원래도 그렇게 잘 자던 편은 아니었어.”

“그래도 한국 와서 달라진 게 있을 거 아냐.”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이라는 듯 가볍게 말하는 윤회에게 취조 톤의 시훈의 추궁이 시작됐다. 그러자 윤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증상을 털어놓기로 했다.


“원래도 숙면은 잘 못 해. 침대에 누워서 뒤척이는 시간이 숙면하는 시간보다 더 길어.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고. 근데 뭐 평생 그래 와서 특별히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한국 와서 달라진 점은 없어? 숙면시간이 더 늘거나 줄거나, 혹은 잠을 제대로 잔다고 생각이 들지 않거나.”

“…….”


시훈의 계속되는 추궁 아닌 추궁에 윤회는 입을 벙긋하며 말을 하려다가 갑작스레 입을 꾹 닫았다. 시훈은 윤회와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늘 ‘괜찮아’를 달고 산다는 것과 말이 많지 않은 그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말하려다 만 거 얼른 얘기해. 나도 정성스레 캐묻기 귀찮아... 곧 있으면 퇴근이라고...”

“뭐 그게 큰 문제는 아니어서 얘기를 안 해도 되겠다 싶어서 그런 거...”

“됐고! 입을 벙긋거렸다는 자체가 구윤회 책임님한테도 맘에 걸리는 게 있다는 거니까 얼른 말씀하시지요?”


이미 시훈에게 간파당한 후라 윤회는 더 이상 얼버무리질 못하고 자신의 증상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숙면시간이 미국에 있을 때 보다 줄었어.”

“얼마나?”

“절반, 응... 절반 정도.”

“좀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얼마인가, 그중에 숙면은 몇 시간인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여섯 시간 정도, 잠이 푹 들었다는 건 모니터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한 시간? 한 시간 반 정도인 것 같아.”


그게 뭐 그리 큰일이냐는 듯, 덤덤하게 얘기를 꺼내는 윤회의 모습에 시훈은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면증 환자가 불면을 너무 당연히 얘기하는 것이... 그래 전형적인 불면증 환자다 싶었다.


“야, 이게 지금 그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일이냐? 너 불면증 환자 맞아. 근데 왜 그렇게 멀쩡한 거 같이 얘기하는데.”

“...?...”

“술 취한 사람이 ‘나 술 취했소’ 하지 않는 것처럼, 불면증 환자가 ‘난 정상인데? 불면증 아닌데?’ 할 수도 있는데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환자는 네가 처음이다.”


칭찬인지 욕인지 할 수 없는 시훈의 반응에 윤회는 어리둥절했다. OECD 가입국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이고, 그래서 자신은 누워있는 시간 모두를 포함하면 그보다 조금 적게 잘 뿐이지 수면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지 수면장애라니?


“아니 여섯 시간은 누워서 자긴 잔다니까. 내가 왜 불면증 환자야.”

“전체 토털 수면시간도 부족하고, 숙면 시간도 평균보다 적을 거야. 수면다원 검사까지 갈 필요도 없이 확신이 든다.”

“이시훈 선생님 지금 뭐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원래 잠은 자다가 깨는 거고 그거 당연한 거 아냐?”

“네가 제대로 수면에 든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는 소리겠지. 진짜 수면검사 한 번 할래? 병원에서 하룻밤 자야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시훈의 ‘병원에서의 하룻밤’이란 소리에 윤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평소엔 감정 동요나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것 치고는 큰 표정 변화였다. 시훈은 윤회 눈치를 살피며 말을 추슬렀다.


“아니 꼭 하자는 게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일단 약 처방해 줄 테니까 먹어보고 그래도 좀 그렇다 그러면 수면검사도 해보자는 거야. 야!!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데...! 푹 자야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바뀌고, 면역력도 높아지고 하는 거라고...! 숙면 잘 못하는 사람들이 치매도 더 잘 걸린다?”


시훈의 주절거림에 살짝 날 서 있던 윤회의 표정도 살짝 풀렸다. 사적인 관계를 떠나, 시훈은 전문의였다. 곧 있으면 교수로 임명될 유망한 펠로우. 윤회 자신보다 이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라는 건 부인할 생각도 없었고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일단 수면유도제랑, 안정제랑 몇 가지 해서 아주 약하게 처방해 줄 테니 적어도 3주에 한 번은 만나서 약 먹고 잠들었을 때 어땠는지 알려줘야 해. 2주든 3주든 시간 될 때 와서 얘기하고 약 조절해 보자고.”


시훈의 제안에 윤회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의 긍정, 무언의 동의였다. 시훈은 진료실에 설치되어 있는 PC로 처방전을 써서 전산으로 보냈다.


“원무과 가서 수납하고 처방전 받아서 병원 앞 외래 약국에서 약 사고 있어. 나도 퇴근 준비해서 나갈 테니 저녁이나 같이 하자.”


거의 반 강제로 시훈의 의견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의 진료실을 나오는 윤회의 입가에는 아주 옅은 미소가 걸렸다. 어쨌든 저를 챙겨주는 시훈의 오지랖은 그의 형 중훈의 그것과 비슷했고, 표현 자체는 의사의 그것보다 친구의 그것이었기에 더 기꺼웠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한국 생활에, 중훈만큼은 아니지만 시훈도 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다.






시훈의 병원 앞 정육식당. 한국인들은 다들 기름진 고기를 못 먹어 안달인가 싶을 정도로 돼지고기를 먹어대는 게 의아한 윤회였다. 시훈이 ‘남의 살’을 먹어야 한답시고 병원 앞 맛집이라며 끌고 간 곳이 고깃집이어서 ‘또 돼지고긴가’ 싶었지만, 한국에서 몇 달 지내보니 회사에서도 그렇고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만만한 메뉴가 치맥이나 삼겹살 같은 것인가 싶어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이모! 여기 삼겹살 삼인분이랑 소주 하나요!”


라고 외치는 시훈에게 자신은 덜 기름진 고기 먹고 싶다는 말을 못 해 말을 삼켜 먹는 윤회, 이미 그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챘지만 시훈은 고기와 함께 서빙된 소주를 재빠르게 낚아 채 윤회 앞의 잔도 함께 채웠다.


“나... 차 가져왔는데...”

“하... 하고 싶은 말은 안 하면서 진짜 이런 건 또 빡빡하게 굴어요. 이따 내가 대리비 내줄게 한잔 해. 삼겹살 먹을 땐 소주 먹어야지.”


시훈의 기세에 또다시 윤회는 입을 꾹 다물고 마지못해 술잔을 받아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둘이 잔을 부딪힌 후, 시훈은 소주잔 가득 담겨있던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었고, 윤회는 아주 소량만 홀짝이고 잔을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았다. 시훈은 서빙된 고기를 불판 위에 숙련된 솜씨로 치익- 치익- 올려놓고 윤회에게 말을 걸었다.


“야 구윤회, 그래도 우리 친구 먹기로 했는데 너 왜 나 불편하게 대하냐? 그래도 형이랑 해서 몇 번 봤는데 처음 만났을 때랑 크게 변화가 없어. 우리 친구 하기로 한 거 잊은 건 아니지?”

“그럼. 친구 하기로 했지.”

“근데 나는 왜 네가 나를 친구처럼 편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냐. 너 아까도 주문할 때 뭔가 하고 싶은 말 있었는데 너 안에서 주워 삼켰잖아.”


자신을 꿰뚫어 본 듯한 시훈의 말에, 윤회는 뜨끔했다. 하지만 윤회의 성격이 그랬다.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 좋게 말해 남들을 잘 배려하고 남이 하잔대로 잘 따르는 사람. 조용조용한 사람. 윤회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그를 파악하고 있었다.


“네가 삼겹살 맛집이라며. 그래서 삼겹살 먹으면 되겠다 싶었어. 그래서 얘기 안 한 거지.”


시훈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윤회는 대답했다.


“우리 부서 회식 때 보니까 3인분으론 끝이 안 나던데 뭐. 그다음 주문 때 내가 먹고 싶은 고기로 시키면 되잖아.”

“그야 그렇지만 친구한테 그런 말도 못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사람들은 네 성격이 원래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기겠지만 내가 봤을 땐 너 그러다 나중에 병 나.”


시훈의 직구에 윤회는 그저 빙긋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다른 게 먹고 싶으면 다른 게 먹고 싶다 말을 해야지. 한국 속담에 그런 말이 있어요.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 말을 해야 알아. 너는 아니지만 말을 하지도 않으면서 내 속을 지레짐작해서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고. 아니지, 너는 아닌 것처럼 굴지만 네 무의식에서는 너의 기분이나 의견을 사람들이 캐치해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아냐 그런 거. 진짜 나는 괜찮아서 그랬어.”


그의 심리를 캐는 말에도 윤회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아 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윤회 스스로는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누구에게나 맞출 수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했고, 단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으면 분란이, 시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단지 시끄러운 게 싫었다. 분란이 생기더라도 자신은 그 분란의 중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삼겹살이니 목살이니 뭐가 그리 큰 문제인가. 시훈이 아니었대도 그냥 잘 모르는 3자와 동행이었대도 그는 타인을 배려했을 것이었다.


“요즘은 뭐 어떻게 지내냐? 여전히 회사-집-회사-집이야?”


시훈은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어서 우물거리며 화제를 바꿨다. 형인 중훈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윤회의 성격에서 지레짐작도 가능한 내용이었지만 확인을 하고 싶었다. 형이 그렇게 칭찬하고 한 인격체, 인간으로서 그렇게 훌륭한 친구라며 소개해줬는데 한국에 와서 너무 혼자 있는 것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친구였기에 어떻게든 밖으로 끌어내 주고 싶었다. 이민 후 20년 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던 그에게 한국에서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뭐 딱히 할 것들이 없으니까.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만나는 여잔 없고?”  

“...컥...” 


기습적으로 훅 들어온 시훈의 질문에 윤회는 홀짝이던 소주에 사레가 들어 쿨럭거렸다. 쿨럭거리는 기침이 계속되며 빨갛게 눈이 충혈되며 눈물이 고이자 시훈은 물 잔에 물을 가득 따라 주며 윤회에게 건넸다. 


“내가 뭐 못 물어볼 거 물어봤냐. 구윤회 너 정도면 만나겠단 여자 줄 설 거 같은데. 사내에서 너 좋단 여직원도 없어?” 

“쿨럭...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사래로 시작된 기침이 한동안 계속되자 둘의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윤회가 연신 맹물 몇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사래의 여파가 잦아들었다. 


“아니 왜? 너 정도의 스펙에 외모에, 못해도 둘 이상은 사내에서 너 좋아하고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사람 없다니까... 미국 있을 때도 그런 적 없어.”

“왜 구윤회 네가 어때서?! 오버하는 거 아니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인 것 같이 아랫입술을 말아 다물어버리는 윤회의 모습에서 시훈은 그가 오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윤회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캐닝을 했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어깨도 넓고, 풍기는 이미지엔 샤프함과 스마트함이 있었다. 여자든 남자든 봤을 때 ‘엄청난 미남’ 정도는 아니어도, 여성들 사이에서는 꽤 수요가 있을 스타일이었다. 관심 보이는 여자가 전혀 없다는 것은 시훈이 생각할 때 뻥이거나, 그런 쪽으로 발달이 덜 된 둔탱이인 윤회 자신만 모르는 사실이라 판단했다.


“쯧쯧... 정말로 없는 거냐 눈치가 없는 거냐...?”


시훈은 혼잣말처럼 질문을 던지고 윤회의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 듯 소주잔을 내밀고 다시 한번 잔을 맞부딪히고는 잔에 가득 들어있던 소주를 원샷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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