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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May 05. 2020

체육 선생님들은 왜 항상 내게 화를 냈을까

재능과 흥미와 격려에 관하여

학창 시절 내내, 나는 미술 시간이 싫었다. 어떤 내용으로 수업을 한다 해도 일단 미술이라면 미간부터 찌푸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려워서 쩔쩔매던 수학 시간보다 미술 시간을 더 싫어했다. 게다가 미술은 꼭 두 시간 연달아 붙어 있었다. 수요일 3, 4교시가 미술 시간이라면, 나는 화요일 저녁 무렵부터 한숨을 쉬었다. 수요일 1교시가 되면 전교생들이 가진 크고 작은 불행이 모두 내 작은 어깨 위로 몰려와 착지하는 것처럼 느꼈다. 3, 4교시만이라도 옆 반 친구와 반을 바꿔 수업을 듣고 싶었다.

'미술 선생님들은 왜 항상 내게 화를 냈을까' 중에서 |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박연준 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싫어했다는 박연준 시인 글의 일부다. 재능이 없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과제를 박하게 평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고. 그랬던 그가 동료 시인들의 권유로 드로잉 클래스에 참여해 그림 그리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는 일화다. 더 나아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라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에세이까지 냈다.

박연준 시인의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표지

박 시인이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며 느낀 점을 에세이로 엮은 일과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붙인 일 간의 선후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사려 깊은 가르침과 흥미를 독려할 수 있는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개인적으로 공감됐던 게 나도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수업이 체육 시간이었다. 자신감 없고 운동 신경도 없던 나는 체육 시간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체조나, 신체를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흘려보내야 하는 구기 운동 같은 것들에 나는 젬병이었다.


수업에 참여는 했지만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여러 사람 앞에서 진행되는 수행평가 시간에는 급기야 몸이 굳어서 진땀만 빼다가 성적은 최하점으로 받는 일이 잦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 중 하나는 중학생 때 한 체육 선생이 너처럼 운동을 못하는 애는 살면서 처음 본다고 말했던 것. 상처였지만 한편으로는 '아 내가 운동을 못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구나' 하고 순응했던 것 같다.(내가 생각해도 당시 내 수준이 심각하긴 했다.)


아무튼 그랬던 맹추가 지금은 날마다 복싱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흥미는 쉽게 바뀔 수 있고 본인의 성격만큼이나 바깥 환경도 중요하다는 걸 염두에 둘 따름이다.


물론, 흥미와 재능은 엄연히 다르고 지금도 내 운동신경은 바닥을 친다. 요즘도 내가 운동을 잘하는 인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매일같이 아쉬워한다. 다만, 내가 재미있으면 된 거라는 생각과 즐기는 마음만은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건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매일매일 연습을 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걸, 이야기뿐만 아니라 운동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는 걸, 몸을 경유하는 기쁨은 그 힘이 굉장히 세다는 걸, 우리 몸과 그 움직임에 시적인 게 담겨 있다는 걸 그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깨우칠 수 있는 운동은 없다는 것도. 모두가 많으나 적으나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배운다. 인생의 고비마다 그걸 알게 해 준 사람들이 모두 고맙다.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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