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쉬워 보여?
부모님은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이전보다 더 많은 희생과 포기하는 순간들을 겪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텍스트로만 이해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과 희생, 그리고 포기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포기는 몸소 잘 알고 있다.
희생과 포기는 선택이다. 내가 죽어도 포기 못하겠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그만이고 희생을 하기 싫으면 끝까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관을 두고 있는 것이 '가족'이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평소에 엄마와 아빠가 없는 삶을 생각하면서 사는 일이 많았다.
삶이 정석대로 흘러갔다면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쓸데없는 생각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도 그렇고 지금의 나에게도 이 고민은 굉장히 중요하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가 중학교 3학년 때였기 때문에 일반고 진학을 선택하기보다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상업고등학교를 급하게 선택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찍이 취업을 선택해서 돈을 벌고 싶었지만, 공부에도 때가 있는 거라는 가족들의 만류로 대학 진학반에 들어갔다. 이렇게 고등학교 진학과 진로 선택은 당사자인 나의 의지를 적극 반영하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겨울 방학 때부터 학기 중에도 전산회계, 워드 등의 컴퓨터 과목을 익히기 위해 학원을 다녔고 자격시험을 응시했다. 그리고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으러 들어가야 하면 주말에는 언니와 번갈아가며 무균실에서 간병인 생활을 해야 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신경은 엄마의 건강에 집중하고 있었고, 아빠는 본인 질병 치료와 더불어 엄마의 행정처리 및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가족은 크고 작은 희생과 포기를 감내하며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었다.
설령 이것이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다 할지라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넘쳐나면 점차 온전하지 못한 감정의 씨앗이 생겨버린다. 특히나 결정적으로 엄마의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많은 신경을 쏟게 됐고 그것이 나중에 어떠한 보상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난 이렇게 엄마도 잃고 건강이 온전하지 못한 아빠도 있으니까, 오직 나만을 위한 희생과 포기가 아닌 가족을 위한 삶으로 헌신했으니까 그만큼의 시간을 보상받길 원했다.
누가 그 보상을 해주는지도 모르고, 누가 해준다고 한적도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피해의식 속에 사로잡혀서 나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 놨지만 공개적으로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아서 늘 씩씩한 모습으로 감추며 살았다. 하지만 나도 안다. 감춰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예민했고, 감정적이었으며, 나름의 상처를 받고 있는 사춘기 청소년이었다.
가끔 이러한 의지마저 포기해버리면 삶이 쉬워질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포기는 당시의 상황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또다시 닥쳐올 위기를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닥뜨리도록 만들어 버린다. 결국 다음번에 찾아오는 위기에도 쉽게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포기가 또 다른 포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내가 본모습을 감추고, 원하는 것을 포기를 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 안 하고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 본모습을 감추고 있을 것을 강요한다.
은근슬쩍 포기하게끔 만드는 삶이 난 항상 불만이었지만 표현하지 않고 살았다. 단적인 예로 브랜드 메이커를 포기하면 더 많은 선택권이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메이커 옷도 입어보고 싶고 예쁜 메이커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항상 언니가 우선이라면서 늘 한철만 입고 신기 좋은 저렴한 옷들만 옷장에 가득했다. 이러한 옷들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대충 보면 특별한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곳곳에 박음질이 잘못돼서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거나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항상 그 문제점을 감추고 사느라 촉각을 곤두 세워야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 언니, 나 이렇게 셋이서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옷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옷장 문을 열고 적절한 여름옷을 찾는데 입을게 하나도 없었다.
화가 났다.
한창 유행에 민감한 나이여서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처럼 엄마랑 같이 쇼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슬픈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입다 벗었다를 반복해봤지만 한참 키가 크는 시기에 작년에 입었던 옷이 잘 맞을 리가 없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의 동태를 살폈지만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당황한 나머지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기껏 생각해서 튀어나온 말은 정말 가관이었다.
"지들은 각자 돈 있다고 원하는 옷 사서 입는데, 나는 그럴 기회가 어딨어? 돈 달라고 해서 쇼핑하러 갈 시간이 있어, 아니면 내가 언니랑 옷을 같이 입을 수가 있어? 가뜩이나 작년에 입었던 거는 맞지도 않아서 입고 나가기 창피하고, 제대로 된 옷 하나 없는 내 상황을 알기나 하냐고!"
내가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말하자 엄마도 아차 싶었던지 우선 알겠다고 하고선 나는 다음에 따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일단락 지었다.
침대 이불속에 박혀서 감정을 추스르려 했지만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동안 시장에서 아무 옷을 사줘도 잘 어울린다는 칭찬으로 나를 어르고 달래 왔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이 너무 싫고 질려버렸다. 너무 찢어지게 가난해서 옷을 살 돈이 없는 상황도 아닌데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며 포기하고 희생하게 만들었다.
난 그때만 생각하면 슬프다.
지금도 어쩌다 한번 초,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초등학교 때 비닐 소재의 추리닝만 입고 다닌 걸로 기억한다. 그 옷도 아빠가 잠깐 들어간 유통회사에서 남은 재고를 쓸어온 옷이었는데, 언니는 죽어도 입을 거 같지 않으니 나에게만 억지로 입혔다. 성인 남성에게 넉넉하게 맞을법한 사이즈를 접고 쑤셔 넣고 해서 겨우 입을 수 있는 것을 말이다.
패션을 포기한다고 해서 다른 큰 보상을 오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저렴한 옷에 눈독 들이면서 사는 나의 모습이, 그리고 나의 생각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생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보다 너이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포기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는 희생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그래도 만에 하나 어쩔 수 없이 포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겉으로만 포기하고 항상 기본적인 바람에 대한 의지를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누구도 그 시간 그대로의 삶을 보상해주지는 않는다. 슬픈 말이지만 포기하고 말고는 본인 당사자의 몫이다.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거라면 더욱 눈치 보지 말아야 하고, 괜한 자존심 세울 거 없이 자신의 삶의 의지에 빛을 더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고집부리는 거 같아 보여도 자기가 맞다고 해서 밀고 나간 일에는 공허함이 덜 하고 미련이 덜 남는다. 충분히 슬퍼해도 되고, 싫다는 표현을 했어도 됐다. 그때의 '나'였어야만 했던 것들을 닥친 상황에 의해 감추며 살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