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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Sep 08. 2016

아빠라는 남자를 통해 만난
여자 셋

우리는 어쩌면 이리도 독특한 관계를 갖게 되었는가


 오늘 아침 새엄마에게서 화상 전화가 걸려왔다. 메시지는 종종 주고받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통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새엄마는 내 안색이 정말 좋아 보인다며, 네 마음의 평안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서 굳이 안부 묻지 않아도 되겠다며 이왕이면 이 섬나라에서 돌아오지 말고 쭉 재미나게 지내라고 했다.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전부 읽는다는 그녀는 내 글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무척이나 사려 깊은 조언을 주고, 혼란스럽고 애타는 내 이십 대의 인생을 응원한다. 항상.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수평적이고 인격적이다.



 뛰어나지 않은 애매한 재능이 고민이라 했더니 그래서 오히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고, 버티는 동안 단련이 되어 결국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며 결코 펜을 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해 주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나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나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나 대신 안부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통화를 했는데 엄마의 지인들이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했다며, 주책스럽게 자랑을 했단다. 대체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못 쓰는 엄마가 내 글은 어떻게 읽었고, 대체 어떤 지인들이 그런 말을 해주었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저 두 여자들은 어찌 그토록 쿨한지, 내 아빠라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만나게 된 이 여자 셋은 어쩜 이토록 독특한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당사자인 나조차도 아직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아 갸우뚱하기만 하다. 어떤 날은 하도 이상해 각각의 엄마에게 물었다. 새엄마는 네 엄마가 좋은 사람이라 그렇다며 답했고, 엄마는 내가 자존심이 없나 보지 뭐 하며 자존감이 높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표정으로 별스럽지 않게 답했다. 한 남자의 전처와 현처가 이렇게 호의적이고 가까운 관계가 되기까지 나는 가늠해볼 수조차 없는 어떤 사연과 과정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젖먹이 아기였거나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었을 테니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굳이 어떤 난잡한 감정싸움들이 있었는지 묻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다만 아빠는 세상 제일 못된 놈이 되어 여기저기서 잘근잘근 씹혀 가루가 되었을 것이고, 이쪽과 저쪽에서 피해자가 난무했을 것이고, 당사자들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들의 연애사는 과장되고 부풀려져 소문이 무성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물론 나 역시 유년기에 상처도 많이 받으며 자랐고,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으며, 그 트라우마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가족들에게 일정 거리를 두고 남처럼 대하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그 생존 방식은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내 부모와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나 역시 나의 두 엄마와 아빠처럼 이런저런 연애사와 세상사를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고, 나는 두 명의 엄마와 한 명의 아빠 그 누구에게도 존대하지 않은 채 나를 시건방지게 포지셔닝하며 안하무인으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남보다 차가운 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늦은 고백. 



 통화의 말미는 그랬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어려서부터 내 살길 알아서 잘 찾아서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그러니 걱정 말라고. 어쩌면 책망처럼 들릴 수 있는 그 말에도 살짝 웃으며 그래 너는 그럴 거야 라고 답해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히려 새엄마와 연락 더 자주 하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가진 딱한 내 엄마에게도, 어쩌면 과분할 수도 있을 만큼 멋진 여자들에 둘러싸여 사는 항상 그리운 내 아빠에게도, 나와 피를 반절씩 나눠 가진 내 동생들에게도. 나는 그대들이 이제껏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생계와 투쟁을 벌이며 살아왔는지 모든 걸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이해하는 중이라고. 나 역시 28년 남짓을 살아보니 세상살이가 결코 쉬운 게 아니더라고. 이미 어렵고 아픈 일들을 다 겪고도 또 새로운 것을 겪어야할 그대들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사랑한다는 말은 어쩐지 아직은 조금 닭살스러우니까. 그저 우리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생활 속에서, 각자의 외로움은 알아서 해결하며, 때때로 행복하자고. 나 또한 이제 영속적인 행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쯤은 깨닫게 된 나이는 되었으니, 살아가다 문득 문득 행복을 마주할 때면 당신들을 떠올리겠다고. 당신들이 나를 생물적으로, 정서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감사히 인정하며 씩씩하게 살아내겠다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그 모습이 훌륭하든 망나니 같든, 

 나는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마저 아름답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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