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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Apr 28. 2019

좋아한다는 말 , 편지 고백

너를 많이 좋아해


그가 좋아한다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와 화장을 수정하려던 참이었다.

카페 의자에 두고 간 가방을 열어 팩트와 립스틱을 꺼냈다.

그런데 가방 한쪽에 처음 보는 쪽지가 보였다.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가 화장실에 가면서 넣어뒀음을.


못 본 척하고 있는 게 좋을지, 아니면 읽고 있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그는 분명 화장실에 갔고 금방 올 터였다.

편지 안의 내용이 어느 정도인지 겉으로 봐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편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하면 아무리 짧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내 성격상 한 번은 더 읽어볼 것이다.

본래 나는 중요한 글일수록 여러 번 읽는다.


처음 읽을 때는 객관적인 정보를 파악하려 하며,

두 번째는 첫 번째에 놓친 '숨은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또 세 번째는 숨은 의미를 살려 다시 읽어본다.

이 과정을 거치면 사람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놓쳐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우선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인가?

자신이 내게 보여준 진심을 몰래 던져주고 갔다는 것은 진심을 마주하기 부끄럽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직접 말하기 부끄러워서, 혹은 조심스러워서 '내가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까 그때 봐.'

이런 의미로 가방에 넣어두고 갔는데 그가 올 때쯤 편지를 읽고 있는 게 과연 정당한 행동일까.


그의 부끄러움을 덤덤하고, 소중하게 대하기 위해선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편지를 다시 화장실에 가지고 가서 읽거나 카페 밖에서 읽거나 혹은 집에서 읽는 방법.


하지만 편지를 집까지 가져갈 자신은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내용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하루 종일 그를 대하기엔 내용이 너무 궁금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가 오기 전에 편지를 챙겨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끄럽지 않았지만, 그의 의도를 소중하게 다루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핑계다.


편지를 챙겨 화장실에 가는 길에 맞은편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나를 보며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지금 다시 들어가는 거야?"

그가 물었다.

그의 당황스러움이 표정에 그대로 묻어났다.

"손에 음료가 묻어서 씻고 오려고."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급하게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둔 그의 편지를 펼쳤다.

또박또박한 글씨로 그는 2장을 썼다.


'네가 생각나서 이 편지지를 샀어'로 시작하는 편지는

'너를 많이 좋아해.'로 끝났다.

고백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되나, 뭔가 애매했다.

요즘엔 썸만 유지하는 관계도 많다고 하는데, 혹은 확실하게 사귀자거나 다음 관계의 진전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 역시 많았다.


그는 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계기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요즘 기분이 어떤지에 대해 귀엽게도 적어놨다.


화장실 문을 열고 다시 그에게 가야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그는 이미 내가 편지를 읽었다는 것을 눈치챘겠지?

그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불쑥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혼자 나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가 좋았으니 이렇게 카페도 왔겠지.

무엇보다 그가 내게 표현한 방식이 좋았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눈치를 챘는지 안 챘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손 씻었어?"

"좋아해. 나도."


그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더니 아메리카노를 컵 채로 벌컥 마셨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좋아한다는 얘기였다.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싶고,

좋은 노래를 같이 들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고 싶다는 말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와 많은 것들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너를 아주 좋아한다는 말.

또박또박한 그의 글씨체 위로 그의 손과 나의 손이 포개졌다.


따뜻했다.

손의 온기에 수줍어진 우리는 복사꽃처럼 수줍은 웃음을 나눴다.



그 카페에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더 이상의 말이 없어도

나의 감정이 이렇다는 설명이 없어도

웃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좋아함을,

내가 그를 많이 많이 좋아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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