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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유인 Oct 11. 2020

문학사가 될(?) 대중문화 한 문장

2호 '마지막처럼'

멜로 드라마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장르이다. 낭만적인 사랑과 로맨틱한 분위기, 기승전결이 아주 깔끔한 해피엔딩은 인류가 오랫동안 소비해 온 문학이자 서사 창작물이다. 멜로 드라나, 애정소설 등등 다양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그 내용에는 아주 공통된 특징들이 있다.


행복한 미래를 약속했던 주인공들은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만나게 되고 이내 둘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서 결국에는 평생의 사랑을 맹약하면서 결실을 이루게 된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주로 행복한 결혼을 맞이하게 되거나, 행복한 두 사람이 대대손손 오래 잘 살았다라고 끝나곤 한다. 


멜로 드라마를 비들어 놓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두 사람을 결국에는 헤어지게 한다든가(라라랜드),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사랑이 배신과 불륜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여준다든가(부부의 세계), 멜로 드라마 속 남녀간의 사랑만이 위대하고 거룩한 사랑인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든가(겨울왕국, 강철의 연금술사),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주역이거나(호텔 델루나)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의 특성은 멜로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함으로써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고 시청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익숙하게 목격하였던 이야기에 변주를 줌으로서 색다른 즐거움을 주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작품 중에서 가장 멜로 드라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사랑의 불시착'을 거론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작품은 멜로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이 가진 다양한 클리셰들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과 곤경을 만들어 냄으로서 시청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이 우리나라서 종영한 이래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가 있다. 이는 멜로드라마가 가진 보편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사랑의 불시착'은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 -> 두 남녀가 서로를 인식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 -> 두 남녀를 갈라놓는 해결할 수 없는 역경의 출현 -> 갈등의 일시적인 해결 -> 더 커다란 갈등의 출현 -> 의지와 사랑으로 극복하는 두 사람 -> 행복한 결말이라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색다른 것은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역경의 차원이 개인이나 가문을 넘어선 국가라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보통의 역경이 개인에게 생긴 사고나 가족 단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서 사랑이 좌절한다면, 이 작품은 '국적'과 '국경'이라는 한층 더 거대한 장벽 앞에서 갈등한다. 이 갈등은 두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서 결국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권력(?)과 재력(?), 그리고 중립국인 제3국가를 활용함으로써 해결한다. 이 작품은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파괴하지 않고도 어떻게 스토리의 진부함과 따분함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특성이 이 작품이 분단국가라는 지극힌 한국적인 갈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타국에서도 인기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당황스럽겠지만, 오늘 말해 보고 싶은 것은 이러한 멜로 드라마의 '안티테제'로서 남기고픈 것이 주인공이다.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또 다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주인공은 멜로 드라마를 변주하거나 그것을 여러가지 층위에서 비트는 것이 아니라, 아예 멜로 드라마로서 설정된 체계를 부순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의 한 대목으로 골라보았다. 


마지막처럼 마-마-마지막처럼

내일 따윈 없는 것처럼


어떤 방법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있고, 여기서 이 화자는 뜨거운 사랑을 갈구한다. 그 사랑에는 영원을 맹세하거나 다음을 기약하려는 노력은 필요가 없다. 가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직 이 밤을 뜨거운 사랑으로 채우기만을 원한다. 내일 따위는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영원한 사랑이나 미래를 기약할 필요도 없다. 이 장면의 화자가 멜로 드라마와 유사한 부분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 밖엔 없다. 모든 멜로 드라마적인 요소들은 이 앞에서 잘게 잘게 찢어진다. 


Baby 날 터질 것처럼 안아줘

그만 생각해 뭐가 그리 어려워


사랑을 갈구하는 화자 앞에서 상대방은 망설이고 있다. 이렇게 강렬한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엿보이지만, 화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생각도 그만하고 고민도 그만하고, 그냥 나를 터질 것처럼 안아달라고 애원한다. 상대방이 고민하는 것은 그 뒤의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화자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앞으로의 걱정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그저 마음에 들고 사랑한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이토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One two three

새로운 시작이야

절대 뒤돌아보진 않을 거니까


화자에게는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도 중요치 않다. 나의 과거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당신 과거 모든 것은 그저 이 사랑 앞에서 쓸모없는 고민일 뿐이다. 그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다른 모든 요소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수많은 맬로 드라마의 서사들에서 주인공은 다양한 이야기에 묶여있다. 자신의 가족이나 사회적 지위, 혹은 자신의 지위나 신분, 국적과 인종 등 다양한 이야기에 구속되어있기 때문에 사랑은 어렵고 언제나 좌절에 빠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화자는 그러한 사정들은 저 멀리 치워버림으로서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이야기들로부터 결별한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당시의 이야기이지, 그것과 아무런 상관 없는 서사들은 중요하지 않다. 


I be the Bonnie and

you be my Clyde

We ride or die

Xs and Os


화자는 상대방에게 달콤한(?) 협박을 가한다. 우리 두 사람은 '보니 앤 클라우드'이고 이렇게 살거나 죽거나, 결말은 둘 중에 하나이다. 어떻게 할지 당신이 정하라며 채근한다.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선택의 결정은 정해져있다. 나와 보니 앤 클라우드가 되어 부도덕하고 나쁜 짓인 사랑을 할지 아니면 죽을지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면 당연히 전자를 고를 것이라는 확신 하에서 화자는 따져 묻고 있다. 결국 이 질문의 대답은 'Yes Or Yes'와 같다. 진지한 사랑에 대한 고민이란 고결고 거룩한 사랑의 위대함 따위는 벗어던지고 사랑은 이처럼 때로는 현실적으로 강렬한 사태라고 고백한다. 


거짓말처럼 키스해줘 내가 너에게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이 사랑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중요치 않다. 설사 당신의 마음이 거짓이거나 이 사랑이 뻔한 결말이더라고 화자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이 키스 한 번이면 족하다. 하지만 이 사랑이 마지막이라는 거짓말 정도는 해달라며 부탁한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지금의 당신과 나는 어제랑 내일이랑 상관없는 오직 이 순간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고 싶다. 설사 내일에는 이 사랑이 없다고 하더라도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고 키스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넌 쉽지 않은 걸 그래서 더 끌려

내 맘이 맘대로 안 돼 어이없어

...

마지막처럼 마-마-마지막처럼

마지막 밤인 것처럼 love


멜로 드라마에는 은연 중에 두 남녀의 사랑으로서 사랑의 순수함과 신성함을 강조하게 된다. 그것은 이 장르가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터득한 일종의 시간에 대한 방어법이다. 가변적이거나 누군가는 동의할 수 없는 사랑을 선정하여 서사를 짜기보다는 누가 보아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소비하기도 했지만, 멜로 드라마라는 이야기 그 스스로가 구축해 놓은 견고한 자재들이다. 그래서 멜로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러한 멜로 드라마의 오랜 체게와 구조를 비웃으면서 무시한다.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거룩하거나 성스러운 두 남녀 간의 무궁한 결합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사랑과 강렬함, 사랑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만한 현장임을 강조한다. 사랑의 모습은 아름답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된 모습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때로는 제3자들이 보기에 부도덕하거나 너무 갑작스럽거나 다소 경악스러울지라도 그저 두 사람에게는 사랑이기에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음악은 소중하다. 수많은 양산형 멜로 드라마의 홍수 속에 있는 우리 대중문하에서 그러한 문법을 반대하고, 이러한 사랑도 멜로임을, 그런 사랑만이 멜로 드라마임을 부정하기 때문에 가치있다. 이 음악은 어떻게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충실히 따라야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의 반대편에서, 어떻게 멜로 드라마의 상징을 부정하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사랑을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교본으로서 정전으로 남겨야 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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