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성
▲ 성에서 내려다본 조드뿌르시 조드뿌르의 특징인 푸른색 집들이 보인다.
▲ 메헤랑가르성벽 말와르 왕조 시절 권력의 상징이자 도시의 가장 강력한 랜드마크. 구릉위에 우뚝 세워져 존재 자체로도 전설이 되어버린 성
여행을 시작한 지 20일 일정 중에 2주일 지났다. 앞으로 딱 1주일 남았다. 인도에 왔을 때보다 낮 기온이 많이 올라갔는데도 밤에는 여전히 추웠다. 추워서 누워 있어봐야 잠은 더 잘 수 없었다. 딸은 아직 안 깼다. 일찍 일어나서 기차표를 예매하러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일찍 깬 김에 가이드북을 보며 기차표를 알아보고 있는데 딸이 핀잔한다. 좀 있다가 자기가 일어나면 알아볼 거라고. 딸이 자는 사이에 시간을 절약하려고 알아보고 있었던 건데 퉁명스런 소리를 들으니 속에서 '욱' 하고 올라온다.
그동안 딸이 뭐라고 해도 감정대립 안 하고 잘 참아왔는데 오늘은 왠지 서운했다. '추워서 잠도 잘 못 자고 아마도 내 체력이 바닥난 탓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딸이 일어난 후 기차표를 예매하러 갔다. 다음 행선지 외에도 델리-아그라 왕복 티켓을 예매하려 하는데 표가 없단다. 외국인 전용창구임에도 창구의 여자 직원은 친절하지도 않고 말도 잘 안 통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우리가 타고자 했던 시간 근처의 열차까지 샅샅이 알아보았다.
다행히 27일 날 델리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표는 끊었다. 사답띠라는 열차라서 좀 비싸지만, 식사도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채식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묻는다. 인도는 채식주의자가 많아서인지 이런 부분에 철저한 듯하다. 아그라에서 델리로 돌아오는 표를 끊으려 하는 데 없다고 한다. '타지마할을 보고 나면 어떻게든 델리로 올 방법이 있겠지'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돌아섰다.
메헤랑가르성, 입장료 비싸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대여
메헤랑가르성으로 릭샤를 타고 갔다. 입장료가 다른 곳에 비해 제법 비쌌다. 입장료 550루피에 사진촬영권 100루피를 따로 냈더니 카메라에 택을 걸어주었다. 입장권을 보여주니 오디오 가이드도 무료로 대여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였다. 직원도 한국어로 사용법을 설명해준다.
"Where are you from?(어디서 오셨어요?)"
"Korea? 강남스타일?
"오디오 표시- 서요, 1번-재생, 2번-잠깐 멈춰요, 3번-멈춰요."
감동이다. 한국이 이 정도인가? 그 어느 곳에서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경험하지 못했었다. 오디오 표시가 있는 곳에 서서 해당번호를 누르면 설명이 나오고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에선 부연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다.
▲ 메헤랑가르성 담벽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보는 마을은 도다른 풍경.
사진 찍으랴, 관람하랴, 오디오 가이드 들으랴 정신이 없었다. 순서에 따라 성벽에 올랐다. 사진으로만 보던 푸른 집들이 보인다. 과거엔 일반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브라만 계급만이 푸른색을 칠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제한이 풀어졌다고 한다. 파란 하늘 밑에 모여 있는 푸른 집들은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조드푸르는 '블루시티'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여행오기 전에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영화 <김종욱 찾기>를 보았다. <김종욱 찾기>는 인도의 '블루시티'에서 만난 첫사랑을 찾는 이야기다. 영화 같은 인연을 찾고자 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발 빠른 인도인들의 상술 때문인지 한국 여자들만 보면 '임수정'이라고 불러댔다. 그 와중에도 딸은 자신을 임수정이라고 부르는 인도인이 하나도 없었다고 섭섭해한다. "공유 같은 김종욱도 없더라"며 딸을 위로해줬다.
인도인들, 한국 여자들만 보면 '임수정'이라고 불러
▲ 메헤랑가르성 궁전 내부 궁궐 속의 '진주의 궁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방이다.
성문을 들어서서 조금만 올라가면 왼쪽 벽에 붉은색 손도장 31개가 보인다. 이 손도장은 '사띠'를 하기 전 왕가 여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표시라 한다. '사띠'란 힌두교식 장례로 인도판 순장인 셈인데, 남편이 죽고 나서 화장을 거행할 때 살아있는 부인이 장작더미에 들어가는 의식을 말한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사띠 인도판 열녀문이라 할 수 있는 사띠. 남편이 죽으면 화장을 거행할 때 부인이 불타는 장작더미 속으로 들어가 같이 불타죽는 것을 말한다. 지금도 일부지역에서는 거행되는 곳이 있다 하여 가슴이 먹먹하다.
물론 지금은 법으로 금지됐다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아직도 '사띠'가 치러지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인도 여성의 권위가 남성과 동등해지는 날은 언제일지. 여행하는 동안에도 서민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과 같이 움직였다. 여성들끼리만 다니거나 여성 혼자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 궁궐 메헤랑가르성 안에 있는 궁전의 일부
메헤랑가르성은 보존이 잘 돼 있었고 설명도 한국어로 해 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세밀화 전시실도 볼 만했다. 무굴 제국 시대의 세밀화. 마치 한국의 고려 불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섬세했다. 그림 외에 공예품도 그 장식이 섬세했다. 인도인의 손재주나 예술적인 감각이 탁월함에 감탄했다. 인도문화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타지마할과 인더스문명정도로만 기억하던 인도가 아니었다.
한참 구경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나가서 먹기엔 허기가 져서 어려울 것 같았다.
"엄마 성 안에도 레스토랑이 있는데 좀 비싸대요."
"얼만데? 그동안 저렴하게 먹고 자고 했으니까 한 번쯤은 비싼 데서도 먹어보자. 왕비나 공주처럼."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파게티와 토스트를 시켰다. 역시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인내를 요구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얘기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익숙한 사람이 지나간다. 어제 아침 우다이푸르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학생이다.
▲ 공예품 궁궐에서 썼던 물건들인데 공예솜씨가 뛰어나다. 금속세공 솜씨도 탁월했던듯. 인도인들의 손재주를 짐작할 만 하다.
그는 제대하고 복학하기까지 남은 시간에 인도여행을 왔다고 했다. 조금 있으니까 어제 만났던 여행의 고수도 지나간다. 그들을 불러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나머지 두 사람 것도 차례로 나왔는데 다 맛있었다.
오늘은 메헤랑가르성 둘러보고 사람들과 얘기 나눈 것으로도 만족
▲ 창문 메헤랑가르성 안의 궁궐 건물들은 어느 한 곳도 허술히 볼 수가 없다. 궁궐 내의 창문들 문양도 각각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학생과 여행의 고수 두 사람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식사하며 대화하다 보니까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났다. 다른 곳을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오늘은 메헤랑가르성 하나 둘러보고 사람들과 얘기 나눈 것으로도 만족하다고 생각했다. 남은 자투리 시간에는 바자르에 가서 구경을 좀 더하고 타지마할에서 설정샷 찍을 펀자비나 숄을 사기로 했다.
▲ 메헤랑가르성의 궁궐 내부 궁궐내의 '꽃의 궁전'이라는 방이다.
마음에 드는 화려한 숄은 사리에 딸린 것이고, 그 외엔 사고 싶은 게 눈에 안 띈다. 다른 한 가게에서 면으로 된 화려한 색의 직물이 눈에 들어왔다. 머플러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하나는 주황색, 하나는 노란색인데 색감이 예쁘다. 타지마할이 흰색이기에 원색이 잘 어울릴것 같아 2개에 130루피 주고 샀다. 매우 만족한다.
내일 아침 일찍 푸시카르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일찍 떠날 것을 대비해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빵을 오믈렛숍에서 포장해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 8시 반쯤 나갔는데도 손님이 많다. 우리의 얼굴을 익혀서인지 친절하게 대해주면서도 주문한 오믈렛은 안 나온다. 급한 일도 없어서 두고 보았다.
마침 한국인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었더니, 줄 생각을 안 한다. 너무 오래 걸리는 듯하여 한 마디 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으니, 덤을 달라고 했더니 케첩 소스를 주길래 필요 없다고 했다. 삶은 달걀로 달라고 했다. 달걀 2개를 잘라서 다진 파와 고춧가루와 마샬라를 뿌려 준다.
▲ 천진함 메헤랑가르성 구경을 끝내고 사다르바자르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하교하는 초딩 꼬마들이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래서 한컷을 찍어주다.
삶은 달걀과 함께 이 가게의 명물인 'fruit beer'를 마셨다. 무알콜성 음료인데 맛있다. 가격도 10루피다. 포장된 오믈렛과 fruit beer를 한 병 더 사서 숙소로 돌아와 한켠에 두었더니 마음이 든든하다.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위해 짐도 정리했다. 배낭을 싸는 것도 10분이면 충분했다. 이제는 우리가 여행의 고수가 돼 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