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뿌르 사다르바자르와 오믈렛숍
▲ 컬러 조드뿌르로 가는 버스에서 바깥풍경을 찍었는데 색감이 화려하다.
가이드북 맹신은 금물
가이드북을 너무 신봉해선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다이뿌르에서 우리가 이틀 머무렀던 레이크 코너 게스트하우스만 해도 그렇다. 가정집같고 깨끗하고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평이 좋았다. 그래서 잠겨 있는 집을 두드려 적극적으로(?) 들어간 집이었다.
방에 창문도 없고 세면장도 공동인데다 뜨거운 물도 돈내고 2층에서 받은 다음 가파른 계단을 거쳐 1층으로 가져와야 했다. 벽에는 수성페인트를 바른 것 같은 데 배낭을 기대면 배낭에 허옇게 가루가 묻어나서 잘 털리지도 않았다. 대문도 밤 10시 반부터 아침 7시 반까지 커다란 자물쇠로 잠가놓아 일찍 일어났어도 산책을 할 수 없었다.
방도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자다가 깨서 남방, 스웨터, 파카까지 꺼내서 껴입었는데도 춥다. 잠이 일찍 깨서 밖에 나가봤더니 사위인 듯한 사내가 콘센트에 꽂혀 있는 충전기들을 죄다 빼놓고선 충전하지 말란다. 헐!
▲ 조드뿌르 가는 길 터번도 화려하고 과자봉지가 줄줄이사탕처럼 죽 붙어 있다. 팔때 하나씩 뜯어서 판다. 왼쪽 아래 사진은 말린 나뭇잎을 끈으로 엮어 처마밑에 금줄 걸어놓듯 걸어 놓았다.
조드뿌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버스스탠드로 7시 반까지 가야 했기에 전날 밤 주인할머니께 한 시간 일찍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6시 50분쯤 길을 나섰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릭샤가 별로 없었고 흥정도 어려웠다. 다행히 나홀로 여행자를 만나 셋이서 50루피를 주고 버스스탠드로 왔다. 이젠 여행에 좀 익숙해졌는지 짜이를 마시고 싶어진다. 현지인처럼 짜이를 한 잔 마시고 버스를 탔다.
▲ 호기심 버스가 스쳐갈때 맞은편 버스에 탄 어린이 .누가 더 신기한걸까?
배낭은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랐다. 좌석은 넓어서 편했으나 버스는 말처럼 뛰었다. 머리위로 10센티미터씩은 뛰는 것 같았다. 노면상태가 안 좋은 듯했다. 다른 자동차를 추월해서 갈 때는 견딜만한데 느닷없이 도로에 동물이 나타나면 급정거를 해서 앞으로 확 쏠린다. 지옥가는 느낌이 이런 기분일까? 중간에 한 번쯤 쉬었다. 그리곤 내쳐 달린다. 인도에서는 기사하기도 어렵겠다. 노면도 안 좋은데 장기간 운전하는 것도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7시간을 달린 끝에 오후 3시쯤 도착했다.
버스 짐칸에 실었던 배낭을 꺼내는 순간. 오마이갓! 먼지로 하얗게 뒤덮였다. 딸 배낭은 빌려 온거라 커버를 씌워서 좀 나은 편이었다. 커버가 안 씌운 내 배낭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침낭 주머니에 기름 때가 묻어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배낭 커버를 씌우는구나!
▲ 조드뿌르 가는 길 한국에선 식물원에서만 보던 거대한 선인장이 길가에 늘어서 있고 대리석의 생산지답게 곳곳에 대리석공장이 있고 들판에 유채꽃이 한창이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내가 탄 차와 한뼘 차이도 안나게 비켜가는 버스
같은 차에 타고 온 젊은 처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툭툭 털고는 메고 간다. 여행의 달인같다. 우린 초보티 줄줄 내면서 놀라고 있는데…. 그녀는 한마디 더해준다.
"예전 여행 땐 캐리어가 깨진 적도 있어요. 이 정도면 양호해요."
역시 여행의 고수구나! 릭샤를 타고 사다르 바자르 근처의 고팔 하우스로 갔다. 450루피를 부르는 데 안깎아줄 기세다. 그러면서 주인 아저씨가 오히려 애교를 떤다. 더 깎으면 남는 게 없다는 표정이다. 애교엔 애교로 맞섰다. 우리도 이틀 묵을테니까 10루피만 깎아달래서 440루피에 계약을 했다. 10루피 깎아서 어쩌자고?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10루피면 한화 200원 정도다.
▲ 사다르 바자르 바자르의 풍경과 사다르바자르에서 본 메헤랑가르성
영화 <김종욱 찾기>로 유명한 조드뿌르는 인구 100만이나 되는 대도시다. 그래선지 공기는 그닥 좋은 것 같지 않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오느라 피곤해서 오늘은 오후를 여유있게 보내기로 했다. 유적지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바자르 구경을 했다.
▲ 염색 사다르바자르 안에 있는 염색가게. 염색한 천을 정리하고 있다.
사다르 바자르는 규모가 꽤 큰 시장이었다. 특히 향신료가 유명하다고 했지만, 딸은 향신료에 질려있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청포도와 석류와 토마토를 샀다. 시장에는 직물을 염색하고 옷를 만드는 집도 많았다. 현지인들 외에도 외국인들이 사리나 펀자비를 사거나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도 타지마할에서 인도전통 옷을 입고 설정샷을 찍어볼까 하는 마음에 살만한 게 있나 살펴봤는데 크게 당기는 옷이 없었다.
▲ 사다르바자르 사다르바자르의 낮풍경과 밤풍경
옷사는 건 접고 푸쉬카르로 갈 버스표를 예매했다. 400루피였다. 다음 목적지 가는 표가 구해지면 일단은 안심이다. 그 다음 것은 그 도시에 가서 결정하면 되니까 앞질러 걱정할 필요가 없다. 표도 구했고 거리 구경을 다시 하는데 땅콩 장사가 눈에 띈다. 한국 땅콩의 반도 안될 것 같은 아주 작은 땅콩이다. 우리 어렸을 적 번데기를 사면 신문지에 돌돌 말아주듯이 땅콩도 그렇게 주는데 25루피란다. 의외로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고소하고 맛있다.
프라이팬 하나로 국제적 명성을 쌓은 아저씨
시계탑 옆에는 유명한 오믈렛숍이 있었다. 가스불 2구짜리 레인지 프라이팬 하나로 장사를 하는 아저씨였다. 가스불 하나에는 끊임없이 토스트를 만들고 하나는 계란을 삶았다. 두 남자가 하는 데 프라이팬을 잡은 아저씨가 나이는 들어 보였지만, 잘 생기고 인상이 좋았다. 옆에서 계란을 삶거나 나머지 일을 하는 남자는 키가 좀 작았다.
▲ 오믈렛숍 사다르바자르 남문 옆 오믈렛가게. 게란판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장사가 잘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삶은 계란 1접시에 20루피로 한화 400원이다.
내가 형제냐고 물었더니 멋적게 웃으며 부자지간이란다. 그러면서 자기 아버지가 잘 생겨서 나이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60이 넘었는데도. 오믈렛 만드는 아저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을 달라고 하더니 페이지를 넘겨서 자신의 얼굴과 가게가 나온 사진을 가리킨다.
'아저씨 국제적이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방명록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배우 공유씨의 사인과 메모가 있었다. 딸은 얼른 폰을 꺼내서 찍는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린다. 일찍 자리에 앉았던 딸과 나는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긋하다.
어쨌든 우리는 마샬라 스페니시 오믈렛을 주문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 요리를 지켜보았다. 가스레인지 앞에는 쇼트닝같은 고체기름병이 있고 향신료병 4개와 등산컵보다 조금 더 큰 스테인리스컵이 있다. 이 컵에 계란과 잘게 썬 야채를 섞어 잘 저은 다음 프라이팬에 펴서 익힌다. 식빵도 프라이팬에 같이 구운 다음 식빵 사이에 오믈렛을 끼워준다. 이것이 20루피에서 40루피 사이다. 가격도 착하다.
오믈렛을 만드는 손이 굉장히 빠르다. 프라이팬은 얼마나 오래 썼는지 계란물을 풀고 조금 있으면 탄다. 오믈렛이 나오면 옆에 있는 아들은 1회용 접시에 담아서 손님한테 준다. 한국같으면 탔다고 다시 해달래거나 한마디 하겠지만, 주는대로 받는다. 짜지도 않고 맛있었다. 향신료도 여행 초기처럼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서 치즈와 버터가 함께 들어간 오믈렛을 주문한 사람들은 짜다고 한마디씩 한다. 우린 탁월한 선택을 한 것에 뿌듯해했다.
또 다른 가스불에는 항아리처럼 생긴 그릇에 계란을 삶는다. 삶은 계란은 반씩 갈라서 위에다 소금과 양념을 뿌려주는데 인도인들은 많이 먹는 듯했다.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 계란판이 사람키만큼 쌓여 있다. 프라이팬 하나로 대박난 아저씨. 다음에 인도에 올 기회가 생기면 프라이팬 하나 선물해 주고 타지 않은 오믈렛을 먹고 싶다고 해야겠다.
▲ 메헤랑가르성 사다르바자르에서 본 메헤랑가르성과 숙소에서 본 메헤랑가르성의 야경
오믈렛을 잘 먹고 바로 옆에 라시파는 집으로 갔다. 조드뿌르의 명물 마카니아 라시라 해서 주문했다. 너무 달다. 속이 달달해서 끝까지 먹을 수가 없었다. 달달한 라시에 속이 진정이 안 된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김치는 안 보인다. 양배추로 담은 김치가 가물에 콩나듯 조금씩 있는데 볶음밥인지라 역시 느끼하다. 밥을 남기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앞에 메헤랑가르성의 야경이 보인다. 성벽에 불을 밝혀 놓아 그런대로 구경할 만한 야경이었다.
식당에서 'free Wifi'란 문구를 확인하고 비밀번호를 가르쳐달랬더니 핸드폰을 달래서 직접 입력해 준다. 이런 깨알같은 아저씨! 우린 방으로 들어와 시장에서 사 온 포도와 토마토를 먹으며 그동안 못했던 인터넷 검색, 카톡, 카카오스토리 등을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1시. 그동안은 마치 중세시대의 사람처럼 문명과 관계없이 살다가 스마트폰을 통해 바깥세계와 이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