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카테리나 Nov 16. 2022

7화 내렸는데 목적지는 아니고 기차는 출발, 이럴 땐.

우다이뿌르

▲ 작디쉬 만디르 자간나뜨신을 섬기는 힌두사원으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 종을 울려 뿌자의 시작을 알린다.


우다이뿌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침 9시 15분에 출발하는 열차다. 밤기차만 타다가 낮기차를 타니 새로운 느낌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들판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마치 제주도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포근한 봄날 같다. 출구로 나가서 문을 열고 바람도 쐬고 주변 풍경도 찍었다. 저녁 22시 10분이 도착시간인 줄 알았기에 크게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좌석마다 콘센트도 있다. 충전기를 꽂고 3G로 카톡도 했다(인도 유심을 넣은 덕분에). 나름 지루하지 않게 잘 보냈는데 그것도 몇 시간 지나니 기차가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했다. 중간중간 기차역 이름을 보았다. 지도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도대체 우다이뿌르는 언제 나오는 거지? 연착없이 제대로 가고는 있는 건가? 여러가지가 궁금했다. 알고보니 아그라를 거쳐서 가는 기차였다. 아그라까지 8시간 반이 걸렸다. 가이드북을 봤더니 아그라에서 우다이뿌르까지가 12시간 반이 걸린다.


22시 10분 도착이 아니라 22시간 10분 걸린다는 거였다. 그럼 다음날 아침 6시에나 도착한단 얘기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나의 착각이긴 하지만 기운이 쭉 빠졌다. 갑자기 어깨가 짓눌리는 듯이 아팠다. 으슬으슬 춥고 몸살 기가 오는 것 같다.

▲ 기찻길 풍경 카주라호에서 우다이뿌르로 가는 21시간 가는 동안 보여진 풍경이다.


저녁이 되었다. 석양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데 몸이 일어나지질 않는다. 딸이 걱정을 많이 한다. 딸은 엄마 아프면 큰일이라며 누워서 쉬란다. 딸 말대로 컨디션부터 조절하자 싶어 스웨터와 파카까지 꺼내 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핫팩도 꺼내서 따뜻하게 했다. 걱정하는 딸을 안심시켰다.


"엄마 조금만 쉬면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마."

▲ 인도 꼬마들 인도사람들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카메라만 보이면 찍어달라고 한다. 역에 잠깐 서는 동안 아이들이 생강이나 과일들을 몇봉지씩 들고 다니며 사라고 한다. 카메라를 꺼냈더니 포즈를 취하며 찍어달랜다.


여러가지가 겹친 상태에서 오는 피로감인듯 했다. 딸이 아픈 동안 긴장을 많이 했나보다. 짐도 더 메고 다니고 아픈 거 보살피기도 하면서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부담이 되었나보다. 여행을 끝까지 잘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감때문에 아플 틈이 없었는데, 딸이 다 나은 듯하자 긴장이 풀어진 것 같다. 결정적으로 기차 타는 시간도 12시간으로 생각했던 것이 21시간으로 늘어나자 기운이 빠졌던 것이다. 오로지 회복에만 신경을 쓰며 몸의 신호를 읽고 가능한한 땀을 내려 애썼다. 다행히 새벽녘에는 몸이 좀 가벼워져 있었다.

새벽 5시쯤 되었을까 다 왔다고 깨운다. 자다 깨서 부랴부랴 짐을 챙겨 허겁지겁 내렸다. 내리긴 했는데 뭔가 아니다. 역이 너무 작다. 내린 사람도 적은데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주변 사람을 붙잡고 우다이뿌르 시티가 맞냐고 물었다. 좀 더 가야 한단다. 헐!


그런데 기차가 움직인다. 큰일이다. 일단 타야 했다. 무거운 배낭, 카메라가 든 작은 배낭, 소소한 짐들까지 메고, 떠나는 기차에 오르려니 안 된다. 기차 계단이 너무 높다.


"엄마 못 올라가겠어. 일단 네가 먼저 올라가."

"엄마는?"

"따라서 올라갈게."

내가 물러나고 딸더러 먼저 오르라 했더니 가볍게 오른다. 속도는 좀 더 빨라진다. 일단 배낭을 벗어 기차 안으로 던졌다. 그리고 출구 옆 손잡이를 잡고 한 발을 계단에 올렸다. 죽기 살기로 올랐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친다. 나만 못 타고 떨어지게 되면? 오르다 계단에 정강이를 부딪쳤다. 탔다. 성공이다.


30분 더 가서 내렸다. 우다이뿌르 시티가 종점이었다. 아까 겪은 트라우마때문에 내려서도 자리를 못떴다. 다시 기차에 올라가서 현지인한테, 외국인한테, 한국인 여행객에게 물었다. 여러 번의 확인 끝에 자리를 떴다. 역을 나와서 한국인 젊은이 둘을 만나 릭샤를 같이 탔다.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한군데 들어갔는데 정말 호텔이라 부를 만큼 깨끗했지만 좀 비싸기도 했고 주변 소음이 많았다. 550루피 이하로는 절대 안 깎아준다. 다른 곳을 더 알아보기로 했다. 가이드북에 평이 제일 좋은 곳으로 갔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가정집처럼 깨끗하고 관리를 잘하고 분위기가 좋단다.


문이 잠겨 있다. 이상한데. 게스트하우스는 24시간 문이 열려 있는데. 두드렸다. 아무 기척도 없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기다려 보는데 옆 집에서 남자가 나온다. 상황을 얘기했더니 문을 두드려보란다. 괜찮다고. 그의 말대로 열심히 두드렸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정신으로. 한참 있더니 누군가 나와서 열어준다.


딸인 듯 했다. 방이 하나밖에 없다며 150루피(한화 약 3000원)란다. 그 자리에서 승낙을 했다. 체크인은 아버지가 일어나면 하라고 했다. 8시 반쯤이면 될 거라고. 방에 들어간 순간! 마당과 방이 문 하나 차이다. 방이 아니다. 외양간 같은데다 싱글침대 2개만 들여놓는 꼴이다. 문 아래로 바람이 술술 들어오게 생겼다. 창문도 없다. 세면장도 공동이다. 뜨거운 물도 2층에서 받아서 1층으로 들고 내려와야 했다. 흠! 허긴 150루피에 뭘 더 바라랴!

▲ 숙소 방의 잠금장치 열쇠도 아니고 노끈으로 묶는게 잠금장치다. 이정도로 안전하단 얘긴지. 다행히 조용하고 별 일은 없었지만..


이틀 밤인데 참아보자.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토스트와 커피로 했다. 옥상에서 아침해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숙소에서 몇 발짝 나가면 호수다. 우다이뿌르는 인도인들의 신혼여행지라고 하더니 예쁘고 개끗하다.


체크인 후 거리로 나갔다. 작디쉬 만디르. 규모는 작았으나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종을 쳐서 뿌자의 시작을 알렸다. 토속신이었던 자간나뜨신을 흡수하여 힌두화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뿌자를 드리는 사람도 많았고 우리처럼 관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도시가 작아서 작디쉬 만디르 근처에 모든 것이 몰려 있었다. 식당도 숙소도 환전소도 쇼핑가게도.

▲ 브라마사원 브라마사원과 조각상 세부 오른쪽 아래는 뿌자를 드리는 사람들이다.


여권과 비자를 복사해뒀다. 기차표 살 때, 숙소에 체크인할 때 등 필요해서 10장씩을 복사했다(그런데 이 이후론 사실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애석하게도). 쇼핑도 했다. 다음 목적지는 조드뿌르였다. 기차편은 없고 버스편만 있다고 했다. 여행사에 가서 조드뿌르행 버스표를 2인에 390루피(한화 7800여원) 주고 구입했다.


다음날 계획은 라낙뿌르와 쿰발가르를 묶어놓은 1일투어였다. 차 1대에 1500-1600루피라는데 하고 싶었다. 산악지역이라 색다른 풍경일 것도 같고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인교 사원이 있다기에 구미가 당겼다. 딸과 둘이서라도 하려는데 아침에 같이 릭샤타고 온 한국인 젊은이 둘이 보였다. 그들에게도 제안을 해보았다. 어떠냐고. 둘이 잠시 얘기해보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100루피 깎아서 4명이 차 1대로 1500루피에 계약을 했다.


오늘 오후 일정은 점심먹으며 생각하기로 했다. 점심은 호수 근처에 있는 에델바이스카페에 가서 먹었다. 사과쥬스와 아라빅 커피, 곡물빵 참치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맛있다. 감동! 이 감동의 기분으로 오후 투어를 짰다. 시티팰리스는 잠시 미뤄두고 쉴피그람&몬순팰리스 투어에 나섰다. 릭샤투어를 340루피에 계약했다.

▲ 쉴피그람 우다이뿌르 첫째날 투어이다. 쉴피그람은 우리 민속촌 같으 곳으로 전통문화를 재연하는 곳이다. 가는 길과 전통공연 모습이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시내를 벗어나니 이제야 인도에 온 느낌이 난다. 관광객들이 적어 한가롭고 잠시나마 배낭여행의 긴장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쉴피그람은 우리의 민속촌같은 곳인데 인도의 풍습이나 전통놀이 문화를, 밀랍인형이 아닌 실제 사람이 재연한다는 것이 놀라왔다. 인건비가 싸서일까? 사람이 재연을 하니 훨씬 현실감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 쉴피그람 사진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여자아이가 좋아하며 허락을 해준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


딸은 팔찌를 샀다. 비즈처럼 초록색 돌을 깎아서 낚싯줄에 끼운 것이다. 50루피에 샀다. 손목에 차고는 만족해했다. 쉴피그람 관광을 마치고 몬순팰리스로 향했다. 여름별장이라기에 기대를 했다. 카주라호에서 본 인도인들의 예술적 솜씨로 미루어봤을 때 볼 만할 것이라 생각했다.

▲ 몬순팰리스 풍경 한얀색의 몬순팰리스와 내려다본 전망


릭샤는 몬순팰리스 입구에 서서 기다리게 했다. 매표소에서 몬순팰리스까지는 지프차를 타고 산길을 오른다. 한국의 인제 용대리에서 백담사 가는 정도의 산길이었다. 올라갔더니 원숭이가 많다. 카메라에 달려들어 기겁을 했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 몬순팰리스 하얀 건물이 석양을 받아 물게 물든 몬순 팰리스와 석양


기대와는 달랐다. 말이 궁전이지 관리도 허술했고, 건축물도 건물 하나 달랑이었다. 그냥 빈집이었다. 이게 무슨 별장? 그러나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담에 기대서 바라보는 전망은 볼 만했다. 모두들 안내려가고 석양을 기다렸다. 어차피 릭샤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딸하고 나도 기다려 석양을 보기로 했다.


같은 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도 갈 생각을 안 하고 느긋하게 앉아 있다. 석양 무렵의 하얀 몬순팰리스는 붉은 빛으로 물이 들었다. 색다른 느낌이었다. 해가 넘어가자 추워졌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 가서 올라왔던 지프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이다.


몬순팰리스까지 걸어왔다는 두 처자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걷는 걸 좋아해서 우다이뿌르에서 다른 곳도 많이 걸어다녔다고 했다. 몬순팰리스 매표소에서 숙소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어서 밤에 걷기는 무리일 것 같다며 릭샤를 같이 타고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허락을 했다. 


매표소까지 내려오니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다. 릭샤꾼에게 친구라며 태워달랬더니 안 된다고 자른다. 화가 난 듯 했다. 한국인들 만나 노느라고 늦게 내려온 거 아니냐며 많이 기다렸다고 화를 냈다. 우리도 되받아쳤다. 올라갈 때 우리도 매표소에서 30여분 기다려서 늦게 올라갔다고. 우리 잘못 아니라며 항변을 했다. 결국 처자 둘은 100루피 내는 조건으로 같이 타고 와서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갑자기 두두둑 소리가 들린다. 낮에 쉴피그람에서 산 딸의 팔찌가 끊어진 것이다. 돌구슬들이 굴러서 식탁밑으로 흩어졌다. 폰에 달린 불빛을 비쳤다. 4명이 식탁밑으로 고래를 숙이고 각자 찾았다. 여기저기서 주워준다. 많이 모으긴 했지만 몇 개가 모자랐다. 하루도 못가 망가진 것이다. 참! 허망하다. 인도물건이 다 그렇지! 저렴하니까! 쿨하게 접었다.


숙소 들어오는 길에 맥주 1병을 샀다. 여행 후 처음으로 오붓하게 딸하고 축배를 들었다. 딸의 회복을 축하하고, 오늘의 아름다운 여행을 축하했다. 이제서야 여행다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둘 다 건강한 모습으로!



이전 06화 5화 나를 쫓아오던 인도소년, 속셈이 이거였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