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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카테리나 Nov 16. 2022

8화 인도에서 차 천천히 몰면? "그건 민폐"

우다이뿌르 쿰발가르 라낙뿌르 자인교 사원

▲ 쿰발가르 성안 궁에서 내려다본 모습 산악지대에다 반건조지역이라 그런지 농작물이 많이 보이진 않는다.


아침, 추위에 떠느라 잠을 설쳤다. 바깥벽에 달린 콘센트에 충전을 시키고 있던 휴대전화의 충전 상태를 확인하러 나갔다. 휴대전화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무슨 일일까. 휴대전화를 들어봤다. 표면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기가 막혔다. 유릿가루와 파편 때문에 손을 다칠 것 같아 비닐을 씌웠다. 전원을 켜 확인해봤더니 화면이 뜨고 작동도 됐다.


산산조각이 난 휴대전화 액정, 액땜이려나      

▲ 쿰발가르성 쿰발가르성의 전체적인 모습


기분이 묘했다. 오늘 별일 없을까. 마음을 가다듬고 딸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 콘센트에 꽂아 둔 휴대전화가 박살 났어…. 어떻게 해야 하니?"

"엄마! 당연히 물어달라고 해야지."

"그래야겠지."

마침 당사자가 마당에 있었다.

"저, 휴대전화가 이렇게 됐는데요."

"어머, 어떡해요? 제 휴대전화 빼다가 떨어지길래 그냥 주워서 올려놨어요. 깨진 줄 몰랐어요. 수리해야겠네요."

"인도에서는 수리 맡기기는 어려울 것 같고, 한국에 가서 맡겨야 할 텐데 수리비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얼마 안 되면 제가 하고 많이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그녀는 아들을 시켜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가르쳐줬다. 하지만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 쿰발르성 왼쪽위부터 쿰발가르성안의 마을과 요새처럼 지어진 성, 성안의 사원 입구, 성의 꼭대기에 있는 궁전


'설마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액땜일까? 그나마 유리만 깨지고 액정 안 나간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여행 일정은 반밖에 안 지났는데….'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 일정을 추진해야 하니까. 에델바이스 카페에 가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사려고 오전 7시 40분쯤 숙소에서 나갔다. 가트 구경하다가 오전 8시에 가게를 살펴봤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오전 8시 10분쯤 돼 종업원인 듯한 사람이 손에 짐을 들고 나타났다. 가게를 8시에 연다고 써놓고선 왜 늦었냐고 했더니 미안한 기색도 없이 추워서 늦잠을 잤다고. 샌드위치 만드는데 얼마쯤 걸리냐 물었더니 10분이면 되니까 기다리란다.


한쪽 사이드 미러도 없는데... 택시기사는 광속 질주           

▲ 쿰발가르성 안에서 만난 여인 오른쪽 사진처럼 쉬바신의 링감(성기)을 모시고 있는 사원은 쉬바신을 섬기는 사원이라고 한다. 이 사원엔 독특하게도 시바신의 링감에 장식이 예쁘게 꾸며져 있다.


같이 투어하기로 한 L과 J도 왔다.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전세 택시가 오기로 한 장소로 갔다. 오전 8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약속장소에 가니 8시 40분쯤 됐다. 늦었다고 허겁지겁 갔는데 택시는 그제서야 온다. 약속한 차가 맞는지 확인을 하고 차에 올랐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낮 12시 전에 라낙뿌르에 도착하면 공짜 탈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 마치 일요일 등산하다가 낮 12시~1시 사이에 절에 가면 절밥을 먹는 것처럼.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더니 한참을 달려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든다. 말 많은 인도인들과 달리 기사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가끔 우리가 말을 시켜야 대답을 하곤 이내 과묵해진다. 우리끼리 말을 나누다 그마저도 뜸해졌다. 기사 아저씨 운전이 장난 아니다. 앞에 릭샤든 관광버스든 심지어 덤프트럭까지도 경적을 누르며 추월한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차 한대 지나가기도 좁아 보이는 길에서까지 추월을 하자 불안해졌다. 문에 달린 손잡이를 꼭 잡았다. 문뜩 창밖을 보니 왼쪽 사이드미러가 없다. 기사가 운전하는 오른쪽에만 사이드미러가 달려있다.           

▲ 쿰발가르성안의 사원 쿰발가르성안의 사원과 사원의 지붕

          

▲ 쿰발가르성안의 사원 쿰발가르성안의 사원인데 마치 그리스의 신전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앞에 앉은 J가 물었다.

"왜 차에 왼쪽 사이드미러가 없어요?"

"차내의 룸미러와 오른쪽 사이드 미러로 운전할 수 있어요. 아무 문제 없어요. 오래전에 나온 차에는 왼쪽 사이드미러가 없어요. 최신형에만 양쪽이 다 있어요."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이건 문화적인 차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 물레방아와 원숭이 쿰발가르성에서 라낙뿌르로 가는 중간 마을에 만난 물레방아와 산악도로 갓길에 나와 해바라기하고 있는 원숭이들


쿰발가르는 산악지대에 있는 성채다. 일명 인도판 만리장성. 실제 만리장성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성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성 안에는 사원도 있었다. 기사는 오전 10시 40분쯤 내려주면서 낮 12시까지 주차장으로 오란다. 그런데 주차 관리인이 우리보고 주차비를 내란다. 우린 못 낸다고 했다. 주차비를 왜 우리가 내느냐, 투어비 속에 주차비까지 포함된 거 아니냐고 따졌다. 결국 주차비는 기사가 내기로 했다.          

▲ 자인교 사원 전경 라낙뿌르의 자인교 사원의 전경.계단 오르기 전에 신발을 벗고 ㅂ계단을 올라서 사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계단위 사원 내부에선 몸검사를 한 다음 사원에 들여보낸다.


경치도 좋고 둘러보기 좋을 것 같았다. 낮 12시는 짧으니 더 있으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라낙뿌르까지 30분은 걸리고 낮 1시 이전에 가야 사원 앞에서 제공하는 탈리를 먹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성채를 올라가는데 너무 높아서 숨이 찼다. 주변 경관도 전망도 정말 좋았다. 온종일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빨리 가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늘어질 수만도 없었다. 궁 안 구석구석과 궁 앞에 있는 사원도 살펴봐야 하는데… 우선 배가 고프다. 카페에서 포장해 온 샌드위치와 내가 가져간 석류주스로 넷이서 점심을 해결. 화사한 햇살 아래 고풍스러운 성 안에서 먹는 점심은 환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조각에 감탄... "딸, DSLR 가져와"          

▲ 라낙뿌르 자인교 사원 왼쪽 위부터 자인교 사원지붕의 세부, 사원내부의 기둥조각이 투각으로 조각되어 있음을 확인해봄, 사원내의 코끼리상, 오른쪽 아래사진은 투어때 탔던 택시인데 왼쪽 사이드미러가 없다. 기사 말로는 오래전에 나온 택시라 외쪽사이드미러없이 출시되었다고 한다.


성채와 사원까지 구경하고 라낙뿌르로 달렸다. 30분으로 부족했다. 기사는 어찌나 세게 달리고 추월을 하는지 우린 입을 다물었다. S자 길로 구불구불한 산길인데도 거침없이 내달린다. 뒷좌석에 앉은 나는 길이 꺾어질 때마다 이리저리 쏠렸다. 거의 1시간을 달려 라낙뿌르 사원에 도착했다. 1시 반쯤 됐다. 기사가 물었다. 점심 먹을 거냐고. 우린 먹지 않는다고 했다. 점심으로 나오는 탈리는 사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게 아니고 사원 앞 레스토랑에서 제한된 시간에만 파는 것이었다.           

▲ 라낙뿌르 사원내의 기둥 사원 내부는 모두 하얀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있고 기둥마다 왼쪽 사진처럼 조각이 되어 있다. 숨막히게 아름답다.


라낙뿌르는 자인교 사원으로 입장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가죽제품은 반입이 안 되기 때문에 시계를 풀고 들어갔다. 생리하는 여성도 입장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식별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궁금증을 풀진 못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 촬영권을 사고 모든 짐은 맡기고 들어가야 했다. 우리는 머리를 썼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두 명이 관람하는 동안 남은 두 명은 짐을 맡기로 한 것. L과 J에게 먼저 보고 오라고 했다. 그동안 딸과 나는 L과 J의 짐을 지키면서 사원의 풍경과 여행객들을 구경했다.          

▲ 라낙뿌르 사원의 천정 저 높은 천정에 어떻게 조각을 했을까? 마치 레이어스뜨기처럼 섬세하고 정교하다. 돌을 저렇게 다듬을 수 있는 석공은 누구였을까?


L과 J, 두 사람은 빨리 보고 나왔다. 사원 입구에서 검사를 했는데 형식적인지 휴대전화는 걸리지 않아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나도 휴대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는데 무사히 통과됐다. 하얀색 대리석 건물이었다. 여행객들이 관람을 하는 동안에도 사원 안에는 뿌자를 드리는 사람이 많았다.           

▲ 자인교 사원 내부의 모습 라낙뿌르 자인교 사원의 내부로 현재도 뿌자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고 아름답다.


하얀색 대리석 조각은 처음 보았다. 숨이 막혔다. 어찌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숨이 막혔다.

"딸, 카메라 촬영권 끊고 DSLR 카메라도 가져와."

카메라로 곳곳을 다니며 찍고 구경했다. 일행이 없었다면 더 구경하고 싶었다. 기사와 약속한 1시간 반은 금방 흘러갔다. 도대체 인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리도 아름다운 조각들을 남겼을까? 카주라호에도 라낙뿌르 사원에도.


딸과 나 둘뿐이었다면 앉아서 해 넘어갈 때까지 더 보고 싶었지만 일행이 있어 더 있고 싶은 욕심을 접고 숙소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오는 중간에 기사는 휴게소에 들러 짜이 한잔하겠냐고 묻는다. 차 타는 내내 마음졸이며 졸지도 못하고 긴장한 탓에 쉬는 것도 좋을 듯했다. 감사의 표시로 기사의 짜이값까지 냈더니 다시 돌려준다. 짜이를 마시는 동안 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은 최고의 기사예요"

"정말요?"

"하지만 무서웠어요"

"내게도 가족이 있어요. 아내와 아들·딸이 있어요. 안전을 생각해야죠. 인도에서는 천천히 가면 다른 차들에게 폐를 끼치는 거예요."


열심히 속도를 내서 달렸는데도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동행했던 L과 J와 함께 넷이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으로 갔다. 눈앞에 호숫가 마을이 펼쳐졌다. 마을이 석양 아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카레와 난·볶음밥·탄두리 치킨·맥주를 시켰고 맥주는 내가 산다고 했다. 타국의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젊은이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여행 와서 느끼는 또 하나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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