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주라호
▲ 압살라요정 가운데 보이는 부푼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조각상이 춤추는 요정 압살라.
카주라호행 기차를 탔다. 제 시간에. 가혹했던 바라나시를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인도에 와서 우린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거야. 앞으로는 즐거운 여행이 될 거고 좋은 일들만 생길 거야. 나쁜 일은 바라나시로 끝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기 암시를 주었다. 이번 기차는 3A급이었다. 깨끗했다. SL급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3A실은 무임승차객들이 들락거리지 않도록 승무원이 관리를 했고 시트와 베개도 지급했다. 화장실도 깨끗했다. 와 감동! 이럴 수도 있구나. 쾌재를 부르고 싶었다. 앞에는 스페인에서 온 젊은 남녀가, 오른쪽 옆에는 일본인 청년과 프랑스 청년이 앉아 대화를 하는데 젊음으로 통하는지 웃음소리와 얘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인 청년은 영어를 그리 잘하는 것 같진 않은데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우린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쉬고 싶었다.
▲ 자바리사원 조각들이 섬세하다. 한적한 사원에서 처음보는 힌두신들 조각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압살라조각상이 유명한 사원이다.
딸이 두꺼운 옷에다 목도리 칭칭 감고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스페인 처자는 두통약이라며 알약을 두 알 준다. 효과가 강하다며 한 알 먹고 호전되지 않으면 한 알 더 먹어보라고 한다. 친절하기도 하지. 빈 속에 약을 먹으랄 수는 없으니까 바나나 한 입을 먹으라 하고 방금 받은 약 한 알을 먹였다. 인도약에 한국약에 인도병원에 스페인약까지. 글로벌하다. 딸은 금방 잠이 들었다.
스페인 남녀가 카드놀이를 하는데 승무원이 왔다. 다른 사람에게 수면방해가 된다고 불을 끄고 나갔다. 스페인 처자의 눈이 나랑 마주치자 미안한 듯 미소를 짓더니 랜턴을 키고 조심스럽게 계속 카드놀이를 한다.
어느결엔지 나도 잠이 들었다. 승무원이 깨운다. 카주라호라고. 새벽 6시. 정시에 도착했다. 또 감동!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 때 찾아온 멘붕과 고통을 받아본 사람은 무슨 일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여행이다.
역에서 만난 한국인 대학생과 조인해서 릭샤를 타고 셋이서 80루피에 서부사원군 주변 숙소가 모여있는 곳으로 왔다. 2층에 올라가서 봤는데 깨끗하고 베란다도 있고 전망이 좋아 450루피를 350루피에 깎아서 체크인을 했다. 바라나시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같이 릭샤를 타고 온 대학생은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다른 숙소로 갔다. 아하! 우린 전에 묵은 숙소보다 좋아서 다른 곳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했는데, 젊은 사람은 다르구나! 하지만 만족했다. 공기도 맑고 호수도 있고 좋았다.
이틀을 묵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를 했다. 햇볕이 좋아 빨래도 해널었다. 딸이 쉬고 있는 동안 밖에 나가서 마실 물 한 병, 딸이 부탁한 스프라이트 한 병,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 숙소주변풍경 우리가 묵었던 방에는 베란다가 딸려 있고 베란다에서 내다본 풍경이 예뻐서 한 컷
"딸 날씨도 좋고 한적해. 공기도 맑아. 기운 좀 차렸으면 우리 한 번 나가보자. 그리고 다음 도시로 갈 기차표 예매도 버스스탠드에서 한대. 산책할 겸 나가 보자."
딸과 둘이 나갔다. 버스스탠드는 숙소에서 5분도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컴퓨터 고장으로 3시 이후에나 오란다. 인도에서는 무엇을 계획하고 예측한다는 게 무리인 듯싶다. 3시 이후에 오라는 말도 믿을 수가 없었다.
▲ 하누만 사원 길가에 있는 하누만사원 동네 수호신쯤 되는듯
조그만 사내아이가 따라오며 계속 말을 붙인다. 영어로. 나이가 열너댓살 되었을까? 처음엔 상대를 안 했는데도 계속 말을 건다. 이름이 뭐냐는 둥, 어디에서 왔냐는 둥,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둥. 자기 이름도 가르쳐준다. 속으로 '네 이름 내 알 바 아니고, 네가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할 건데?'라고 생각하며 대꾸를 안 하는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귀찮게 자꾸 물어오자 대충 다른 이름을 둘러댔다. 그리고 가라고 했다. 우린 지금 피곤하고 너랑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이 녀석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피곤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시끄럽기도 하고 성가시다. 너 필요없는데 왜 계속 따라오냐고 물었더니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공부를 많이 했다며 설명해 주겠다고 졸졸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보기엔 학교 다닌 거 같지도 않고 네가 왜 쫓다니는지 속이 보이는 걸!'
딸이 힘들어 쉬고 싶다고 했다. 녀석을 따돌리기도 할겸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 나 점심 못 먹겠어요. 엄마라도 드세요."
난 바나나와 망고(바라나시에서 샀는데 덜 익었는지 신맛이 강해 안 먹고 들고 다니던)로 해결을 했다. 서부사원군은 볼 게 많아서 다음날 오전에 딸하고 같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혼자서 무료인 동부사원군과 남부사원군을 돌아볼 요량으로 숙소를 나왔다.
조금 걸으니까 기차표 예매 대행하는 곳이 있었다. 우다이뿌르까지 2인에 수수료까지 해서 2300루피란다. 깎아달라고 하니까 안 된단다. 표를 산 후 기차표 설명을 해주는데 19일 아침 9:10분에 출발하여 22시간 10분 걸린다는 것을 나는 22시 10분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다. 어쩄든 비싸긴 하지만 3A이고 일단 다음 목적지 표가 있으면 안심이었다.
▲ 바마나사원 바마나신
표를 끊고 동부사원군으로 가는데 아까 그 사내아이가 또 따라붙으며 얘기를 한다. 가라고 해도 상관하지 말란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시끄러운 소음같았지만 가는 길도 가르쳐 주고 사원 이름도 알려주기에 더이상 쫓진 않았다. 자세히는 못 알아듣고 사원의 이름과 몇 마디 단어로 짐작할 뿐이었다. 대꾸해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지껄인다. 지치지도 않는다. 난 적당히 무시하다가 한두 마디 대꾸를 해주곤 사진을 찍고 조각 감상을 했다. 가이드북의 설명을 읽고 사원을 돌아보기도 하며 일정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가는 길에 길거리 과일상에서 만다린 한 봉지를 사서 배낭에 넣지 않고 들고 가는데 여자아이가 쫓아오며 하나만 달라고 한다. 뿌리쳤다. 여행오기 전 딸의 단호한 충고때문이었다.
"엄마 인도에 가면 조심하세요. 아이들 사진 1장 찍어주면 줄줄이 달려들 것이고, 먹을 거나 돈 구걸할 때 한 사람 주면 줄줄이 따라온다니까 절대로 하지 마세요."
▲ 바마나사원 동부사원군 중에 가장 크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사원. 바마나신을 모신 사원
동부사원군은 입장료도 없고 서부사원군에서 좀 떨어져 있어 한적하고 발길도 뜸하다. 가이드북에 인적드문 곳은 가지 말라고 씌어있기에 조심스러웠지만 아직은 해가 많이 남아 있어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길가에 허접한 하얀색 구조물 속에 붉은색 조형물이 서 있다. 하누만 사원이라나? '애걔 무슨 사원이 이래?' 우리네 동네의 수호신 정도인 듯했다. 좀더 걸어가다보니 호수가 보인다. 나로라 사가르(narora sagar) 호수란다.
호수 옆에는 몇 집 안 되는 마을이 있고 노파가 소똥을 담은 함지박같은 걸 이고 간다. 길가의 돌무더기 위에는 소똥과 풀을 섞어 납작하게 만들어 말리고 있고 말린 소똥으로 기와처럼 이은 집도 눈에 띄었다.
▲ 자바리사원 가는 길 소똥과 흙을 이용해 만든 테라코타로 지붕을 얹은 집, 소똥을 나무아래 돌무더기 위에 말리고 있는 풍경, 소똥을 이고 가는 노파
호수옆 작은 브라마사원을 보고, 조금 더 걸어가니 자바리 사원이 나왔다. 이 사원은 외벽에 새겨진 압살라요정 조각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압살라는 춤추는 요정인데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이 특징이다.
정말 손이 닿는 높이면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육감적이고 섬세하다. 힌두교 사원은 처음보는 것이어서 신기하고 황홀했다. 사원을 돌아가며 사방에 새겨진 조각상은 인도를 느끼게 해주는 또하나의 코드였다. 사진을 찍으며 느긋하게 바라봤다.
▲ 자바리사원 자발리 사원의 조각상들 -윗줄 가운데는 힌두교사원들의 많는 신상들이 파괴되어 있었다. 이슬람의 침입때 파괴된 것이라고 한다. 에로틱한 모습들이 많다.
▲ 바마나사원 바마나사원입구의 아치형문과 천정 조각
여행일정 짤 때 카주라호를 넣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가이드북에는 남자들이 껄떡대는 유명한 지역이라는 경고성 문구도 있었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오후의 해가 기울어갈 때 붉은빛 사원의 조각상을 바라보는 일은 경이로움이었다.
바라나시에서의 고생스러움은 저멀리 가버렸다. 너무 아름다웠다. 에로틱한 미투나상들이 많았지만 야하다기 보다는 예뻤다. 조각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했을까? 섬세한 조각들을 큰사원에 빽빽하게 해넣을 수 있는 이들은 정말 누구였을까?
딸이 아프다는 것도 잊고 조각감상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3시 반쯤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 카주라호의 석양 서부사원군 옆 호수에서 바라본 석양이다. 혼자서 동부사원군을 둘러보고 딸과 저녁먹으러 나와서 바라본 석양. 몸도 회복되고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녀석은 속셈을 보였다. 손을 내밀며 가이드비를 달라는 것이다. 못 준다고 했더니 주변의 성가신 사람들이나 치근덕대는 남자들 쫓아주고 설명해줬으니 달라는 것이다. 난 되지도 않는 영어로 단어만 나열하며 내 생각을 전했다. 녀석은 물러서지 않는다. 힌디어로 '잘로'를 외쳤다. 그런데 내가 말랑해보였는지 말을 잘못한 것인지 물러서지 않는다.
급기야 한국 아줌마 폭발하셨다. '굳이 내가 영어로 할 거 없잖아? 말하는 건 내 몫이고 알아듣는 건 쟤 몫인 거지.' 한국말로 쏘아붙였다.
"나는 원하지 않았고 네가 좋아서 한 거잖아. 내가 필요없다고 집으로 가라고 했잖아. 네가 안 가고 따라온 거지. 난 돈 못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