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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카테리나 Nov 16. 2022

6화 노골적인 성애상 부숴버리고 싶다고?

카주라호 서부사원군

▲ 두란데오 사원 일하던 인부인 듯한 두사람이 큰 나무밑에 누워 있다. 평화로워 보인다. 보는 사람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다.


카주라호에서 둘째날. 딸의 몸 상태는 많이 회복되었다. 씻을 기운도 없던 딸은 샤워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숙소를 나섰다. 서부사원군과 남부사원군을 두루 돌아보려면 자전거가 편할 것 같았다. 자전거 두 대를 100루피에 빌렸다. 청년이 어디선가 자전거 2대를 가지고 왔다. 낡았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자전거를 보는 것 같다. 짐받이도 없이 안장만 있다. 안장 높이를 다 낮췄는데도 높았다. 소지품용 가방과 카메라 가방을 멨더니 중심이 안 잡힌다. 괜히 빌렸나? 후회가 잠시 있었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탈 수 있었다.


서부사원군에 가서 표를 끊고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제지한다. 자전거는 들어갈 수 없단다. 입구에 세워 두란다. 이런! 도둑이라도 맞을까 봐 불안했다. 자물쇠도 허술해 보였다. 숙소 앞에 세워두기로 했다. 숙소 들어가는 길은 계단을 넘어가야만 했다. 무거운 자전거를 들어서 세 개 정도의 계단(참고로 인도의 계단은 높이가 상당히 높다)을 오르려니 기운이 쭉 빠졌다. 딸은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숙소 앞에 갔더니 자전거를 빌려주었던 청년이 서 있었다. 여기에 세워놓고 잠그면 별문제 없고, 저녁 때 6시 반 정도까지만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

▲ 락쉬마나 사원 락쉬마나 사원의 내부와 외벽에 새겨진 조각상들


자전거를 잠궈 놓고 서부사원군으로 다시 갔다. 어제 봤던 동부사원군 보다 수도 많고 규모도 크고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그중에서도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이 크기, 보존상태, 조각 면에서 대표적이란다. 보는 동안 입이 안 다물어진다.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조각을 했을까? 이 많은 돌은 어디서 가져왔을까?

▲ 서부사원군 신상 마치 한국의 미륵보살을 보는듯하다. 교태스러운 자세가 우리불상과는 다르지만 옷디자인이라든지 몸매 등은 비슷하다.

▲ 칸드리야마하데브사원 서부 사원군에서 규모가 제일 큰 칸다리야 마하데브사원과 같은 기단을 사용하는 데비 자가담바 사원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은 천천히 둘러봤다. 미투나 (남녀 한 쌍의 조각) 상이 제일 많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일명 야한 사원이라고도 하고, 간디는 이곳 카주라호에 와서 노골적인 남녀의 성애상을 보고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단다.

▲ 칸다리야 마하데브사원 사원 외벽의 조각들. 한낮인데도 붉은 사암의 조각들은 화려했다. 규모가 엄청나고 정교한 조각들 새긴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런데 정말 성(聖)스럽고 경건해야 할 사원의 외벽에 성(性)스러운 남녀의 노골적인 성 행위를 수도 없이 새겨놓은 인도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보는 동안 음란해 보이기는커녕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손재주에 감탄했다.

▲ 파괴된 조각상 이슬람의 침입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사원 내부의 주신들 얼굴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외벽의 조각상들도 훼손된 것이 많았다. 그나마 완파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그동안 딸은 두꺼운 옷에 목도리를 감고 천천히 사원을 걸었다. 딸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딸 역시 자신으로 때문에 내가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했기에, 우리는 각자 둘러보기로 했다. 이래서 좋았다. 만약 다른 사람과 왔다면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각자 보기로 했으니, 마음놓고 사진을 찍었다. 같은 장소에서 여러 종류의 샷을 찍었다. 감상 못지 않게 사진찍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겠노라고.

딸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다 둘러보고 일어날 때까지, 재촉하지 않았다. 앉아서 쉬거나 책을 읽으면서 기다려주었다. 서부사원군은 볼 게 너무 많았고, 햇볕은 뜨거웠다. 딸은 힘들다며 벤치에 가서 쉰다.


사원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숙소 앞에 있는 자전거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누가 끌고 가진 않았을까? 잠궈 놓았다고 못 가져가나? 빌려줬던 청년이 못 봤다고 하지는 않을까? 아까 사진이라도 찍어놓았어야 하는 건데. 온갖 걱정이 되어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보고 나왔다. 우선 자전거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 자전거는 제자리에 있었다. 걱정하지 말란다. 그들을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 락쉬마나 사원 내부의 조각상들. 왼쪽의 압살라요정은 어느사우너에서도 풍만한 가슴이 특징이다. 오른쪽은 동물과의 관계 모습도 보인다.

▲ 칫트라굽타사원 서부사원군에서 제일 작은 사원이다.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남부사원군을 둘러보기로 했다. 자전거 안장은 딱딱하고, 페달도 부드럽지 않았다. 안장이 높아서 중심 잡기가 어려웠다. 넘어지면 무슨 망신이람?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중심부만 포장이 되어 있었다. 포장된 곳과 비포장 갓길의 높이 차이가 커서 도로 가운데로 갔다. 자동차나 릭샤를 만나 갓길로 비켜야 할 때는 위험했다. 먼지는 엄청 많지만, 걷는것과는 다른 상쾌한 느낌이었다. 페달 밟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나름 재미있었다. 등에서는 땀이 났다.

▲ 두란데오 사원 서부사원군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사원군의 두란데오 사원-자인교 사원으로 조각이 단순하고 남녀의 성애상도 거의 없다.


남부사원군은 숙소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서 인적이 더 드물었다. 자인교 사원이라는 두란데오 사원에 들어갔다. 옆에 개울이 흐르고 현지인들이 빨래하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외국인들이 별로 없어 오래 있기에는 위험할 것 같았다. 얼른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세워놓고 사원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카주라호로 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 옆에 자리했던 일본인이었다. 그는 웃으며 물었다.


"몸은 괜찮아졌어요? 같은 기차 탔는데 기억나요? 아파서 자느라고 기억이 안 날 거예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괜찮아졌어요."

딸에게 말했다.

"네가 회복됐다고 타임지에 실어야 하는 것 아니니?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도 걱정돼서 약을 주고, 옆에 앉은 일본인도 걱정해주고, K도 Y도(둘 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사람) 카카오톡(이하 카톡)으로 너 걱정해 주잖아." 


우린 웃었다. 여행은 이런 거구나! 같이 고생하고, 같은 추억을 갖고, 잠깐 본 사이인데도 걱정해 주는 마음. 객지에서 이런 마음을 본다는 게 참 고마웠다.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서울에서 같이 떠난 친군데 코스가 달라서 만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우연히 카주라호에 있다는 카톡을 봤다. 길거리에서 만났다. 반가워 저녁을 같이 하고 맥주도 한 잔했다. 여행이란 이런 우연도 있구나!


카주라호에 오길 잘했다. 누구는 엽기적인 사원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사람들이 껄떡대는 곳이라고도 했지만 난 좋았다. 친구를 만났고, 딸의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고, 섬세한 조각과 인도인의 신앙심에 '힐링'이 되었다. 남들은 바라나시를 '힐링'의 도시라고 하지만, 내게는 카주라호가 '힐링'의 도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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