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맛집들
▲ 삶 바라나시뿐만 아니라 인도 어디에나 구걸하는 사람은 많다. 아이를 안고 서있는 여인.
피곤한 탓에 잠에 빠져 들었다. 중간에 딸의 움직임으로 잠이 깨기도 하고 아이의 불편함을 알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불 덮어주고 춥지 않도록 내것까지 더 덮어주고 여며주는 방법 밖에. 아이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엄마 손좀 따주세요. 속이 메스꺼워요."
바늘은 찾았는데 라이터가 없어서 소독도 못하고 따주었다.
"엄마, 이러다 파상풍 걸리는 거 아니겠지?"
"우린 강해서 그럴 일 없어. 오던 파상풍도 비켜 갈거야."
핏빛이 좀 검은 걸로 보아 좀 얹힌 듯했다. 얹힌 거 내려가면 좀 낫겠지 싶었다.
▲ 꽃 인도에선 꽃을 참 많이 봤다. 신에게 드리는 예물로 많이 쓰인는 듯하다. 골목길 신상앞에도 사원의 신상 앞에도 늘 꽃이 있다.
옆방에선 Y와 P가 잤는데 그 중 Y가 아프다고 했다. 딸은 좀 나았다며 언니도 따보라고 Y에게 권했다. Y의 손도 따주었다. Y 와 P는 내일 아그라로 떠날 기차표를 구매해놓은 상태이고 우린 카주라호로 떠날 생각인데 아직 기차표가 없다.
표를 구매하려면 둘이 가야 마음이 놓이는데 딸은 아프고…. 혼자 가려니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론 걱정이 되었다. 마침 P가 같이 가준다고 했다. 반갑고 고마웠다. 센스쟁이같으니라구! Y와 P 두 사람은 붙임성이 좋았다. 처음 본 내게 언니라 부르며 살갑게 대해준다. 딸도 두 사람에게 언니라며 잘 따랐다. 뉴델리역에서 추위에 떨다가 우여곡절(25시간 걸려) 끝에 바라나시에 도착한 탓인지 서로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 고돌리아 풍경 영화포스터가 걸려 있다. 바라나시에서 인도영화도 한편쯤 감상하면 좋다고 했는데 일행이 아파서 결국 못보고 바라나시를 떠났다.
P와 나는 고돌리아에 나가서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정션 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여기도 외국인 전용창구가 있었고, 아침 일찍이라 붐비진 않았지만 한국인 젊은이들이 많았다. 우리가 오는 과정의 고생스러움을 얘기했더니, 젊은이들은 연착없이 정시에 출발해서 정해진 시간에 도착했다고 한다. 헐! 허지만 이제부턴 잘 풀릴 거야. 인도니까!
▲ 빨래 가트에는 빨래들이 가지런하게 널려 있다.
▲ 가트 풍경 가트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조그만 좌판들이 있다.
이때까진 왜 기차가 연착이 되고 시간을 못 맞추지는지 몰랐다. 표를 끊으려고 제출 서류(인도에서는 기차표 예매시 기차번호, 시간, 목적지 구매자의 신원, 여권번호 등을 쓰는 종이가 있다)에 기록을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내 것을 보고 쓰더니 맨 위에 'TTAKALL'이라고 써야 한단다. 그러라니까 일단 그렇게 썼다. 알고 봤더니 그 표는 급하게 구할 때 쓰는 용어로, 예매자가 취소한 표였던 것이다. 제값보다 좀 더 비싸단다. 2인표가 1516루피(한화 약 3만3000여원) 한국 물가로 하면 싼 편이다. 12시간을 가야 하는데.
▲ 도사 만드는 집 배고프니까 먹는 것이 눈에 잘 띈다. 숙소로 돌아가다가 본 집인데 먹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1개만 주문을 해서 먹었다.
▲ 바나나도사 쌀가루를 얇게 펴바르고 위에 여러가지를 토핑하고 여러번 겹쳐 접어서 준다.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일단 떠날 기차표를 무사히 끊은 것이 흡족했다. '딸 없이도 해냈구나'란 생각에 뿌듯했다. 숙소로 돌아오다가 고돌리아(바라나시 가트 주변의 번화가. 둥글게 돌아가는 교차로 정도)에서 쇼핑을 했다. 알라딘 바지도 깎아서 사고 머플러도 하나씩 사고 아픈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바나나와 청포도를 사가지고 돌아오는데 철판 팬에 빈대떡 반죽 같은 것을 얇게 펴서 익히고 그 위에 바나나를 얇게 저며서 싸주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전병같은 음식이랄까? 물어봤더니 '도사'란다. 한국인들이 써준 음식평 소감 등이 줄줄이 있다. 평이 좋은 바나나 도사를 사서 먹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딸애는 더 심하다고 했다.
어제 K에게 딸의 감기약 사는데 도움도 받았고, 여행정보도 여러가지 듣고 맛집 안내까지 받은 것이 고마워서 어제 저녁 K의 밥값을 낸다고 했더니, 라씨 맛있는 집 소개해 줄테니까 라씨 사면 된다고 했다. 다음날(15일) 2시에 레바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아픈 두 사람은 어차피 못 먹으니까 우리라도 나가서 먹으라고 했다.
▲ 플레인 라씨 고돌리아 골목에서 만난 라씨 K가 알려준 '라씨파는집'의 플레인 라씨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맛있고 가격도 착하다. 주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집이란다.
'그래 한 사람이라도 멀쩡해야지'라며 P와 나는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K가 지나간다. 불렀다. 걱정말고 점심먹고 나오랜다. 가트에서 기다린다고. 음식은 오늘도 일찍 나오지 않는다. 나오자 마자 후딱 먹고 가트로 내려갔다. 라씨 집은 고돌리아에 있는 골목집이다. 힌디어로 돼 있어서 K에게 집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라씨파는집'이란다. 현지인에게 물으면 유명한 집이란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시원 라씨보다 맛있고 가격이 착했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기본 라씨였다.
▲ 파시미나 산양의 목털로 짠 파시미나. 순도높은 것은 사기가 힘들고 속기 쉽다고 한다. 염색이 잘 안되기 때문에 단색이 많고 문양 넣기도 어렵다고 한다.
K는 여러 곳을 소개해주었다. '파시미나'(울하고 다르다고 한다. 양의 목털로만 짜서 가볍고 부피가 작다고 한다) 파는 집도 소개해주었다. 파시미나 중 상당수는 가짜가 많단다. 파는 사람은 알 수 있다고. 100% 파시미나는 염색이 안 되어 아이보리색만 있고 85% 이상은 염색은 되지만 나염 처리는 안돼서 단색으로만 있었다. 가격은 1700루피(한화 3만4000원 정도)라고 한다. 부피가 작다는 것을, 가게 주인이 반지를 가지고 실험을 해주었다. 숄을 한줌으로 꽉 쥐어서 반지를 통과시켰다. 다른 것들은 부피가 커서 반지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생강차 인도에 와서 생강차를 마실 줄이야. 뜨겁고 좋았다. 몸 회복에 좋을 것 같아 사가려 했는데 시간을 못맞춰 못샀다. 위에 고수 잎까지 띄워 나름 우아하게 내온다. 인도에서는 우리가 흔히 보는 하얀 도자기컵은 보기 힘들고 인도에서는 유리컵이나 1회용 플라스틱컵을 많이 쓴다. 뜨거워서 컵홀더에 담아서 내온 모습.
K는 한국에 돌아갈 때마다 사갔는데 어머님이 좋아하시고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고 한다. 특히 낙타 사파리할 때 최고라고 했다. 인도 물건 중 유일하게 잘 쓰는 품목이라고 했다. 구미가 당기긴 했으나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고 P는 예쁜 핑크색으로 샀다.
숙소 주변에 생강차 집이 있다기에 갔더니 뜨겁고 맛있다. 의외였다. 인도에 생강찻집이 있다니. 아픈 사람들한테 갖다 주고 싶은데 여긴 테이크 아웃이란 게 없다. 보온병이 숙소에 있는데…. K와는 저녁을 먹을겸 7시에 K의 숙소옆 로빈(옷도 팔고 환전도 해주는)네 가게에서 7시에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헤어졌다. 숙소에 돌아왔는데 두 사람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딸애는 더 나빠졌다. 옆에 있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P와 나보고만 나가서 저녁을 먹으란다.
난감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안 아파야 상황에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러마 했다. 생강차도 사온다고 물병을 가지고 나갔다. 저녁은 덴스카페라는 곳인데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김치볶음밥을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70루피였다. 한국인이 하는 식당은 대부분 140루피 이상인데 이럴 수가! 이 집의 단점은 오후가 돼야 영업을 하고 재료 떨어지면 시간에 상관없이 문닫아버린다고했다. 우리끼리만 구경하고 맛집 가고 하는 것이 아픈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부담이 된다고 했더니 K는 아니라고 했다.
"자기 관리 잘해서 건강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에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억울하면 아프지 말던가."
정답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K의 맛집 얘기, 여행정보,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얘기 등에 빠져 있다가 생강찻집을 봤더니 이미 문을 닫았다. 9시면 닫는다고 한다. 이런 낭패가! K는 철수씨 집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계단은 높았고 깜깜했다. 전기가 나간 모양이라고 했다. 인도는 전기 사정과 물 사정이 안 좋다고 한다. 정전되는 일은 흔한 모양이다. K는 철수씨한테 레몬짜이를 끓여달라고 했다.
깜깜해서 누가 누군지 분간도 안되고 촛불밝혔는데도 어둡다. 철수씨 부인은 파파야를 깎아서 대접해준다. 아이들한테 주는데도 안 먹는다. K의 말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가부장제가 강하고 아이들의 예의도 깎듯하다고 했다. 손님이 왔는데 치대지도 않고 음식 먹을 때 달려들지도 않고. 식사하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단 것도 안 먹인다고 했다.
K와 P 나 셋이서 파파야 먹고 얘기하는 동안 레몬짜이가 다 돼서 보온병에 담아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내내 기운 못 차리고 있었다. 레몬짜이 1컵씩을 주었다. 따뜻하니까 마시면 속이 나아질 거라고. 보온병이 워낙 작아서 작은 컵으로 한컵씩 주고 나니까 남는 게 별반 없었다. 다시 반 컵씩을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침에는 말짱하게 나아져 있기를 기도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