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도시 인도 바라나시 가는길
▲ 뉴델리역에서 출발시각이 8시간이나 늦춰진 기차를 기다리며 역 풍경을 찍었다. 일교차가 심한 탓에 남자나 여자나 모두 숄을 두르고 다닌다.
▲ 인도여인. 가부장제가 강하게 남아 있는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사리를 입고 신체 중 노출된 얼굴과 손목 발목에는 장식이 화려하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양손에 팔지를 하고 발목에 발찌와 발가락 반지도 여러개 낀 모습을 많이 봤다. 치장할 수 있는 곳은 다 치장을 한 느낌?
무작정 떠났다 인도로. 달랑 항공권 한 장 들고서. 친구랑 인도여행갈까 한다고 했더니 듣고 있던 딸이 비싸다면서 검색노동품을 팔아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한 것이 지난해 11월 말이었다. 친구 대신 딸보고 가자 했다.
"딸, 네 항공권은 네가 내고 나머지 경비는 엄마가 댈게. 같이 갈래?"
"그럴까?"
"항공권 구입과 스케줄은 네가 짜."
인도 안내책자를 사놓고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정작 떠나는 날 무겁다고 필요한 곳만 떼어서 가지고 간 게 다였다. 기차표도, 숙소도 예약 안 하고 떠나는 것이 걱정스러운데 딸아이는 태평하다. 아이를 믿고 나를 던져보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았다.
'아이랑 잘 지낼 수 있을까? 가족하고 여행가면 다투고 마음 상하기 십상이라는데, 정말 괜찮을까? 서로 틀어져 각자 여행하다가 들어올 때 공항에서 만나는 거 아냐? 기차표 못 구하고 숙소 못 구해서 노숙하는 거 아냐?' 등등 생각이 복잡했다.
비행기 환승을 위해 태국 방콕공항에서 자정부터 오전 9시까지 기다리는 일도 고역이었다. 델리보다 방콕 공항이 좀 더 안전할 거란 생각에 선택한 거였는데 방콕공항도 추웠다. 철제의자의 찬 기운이 몸으로 파고 들었다. 델리에서 이틀 정도 머무르며 숨고르기를 한 다음에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모두들 좋다는, 영혼이 힐링된다는 바라나시…. 도대체 어떤 도시기에?
역에서 8시간 노숙하고 탄 '바라나시 가는 기차'
▲ 큰 역에서 기차가 쉴 때 과일 사러 나갔다가 창밖에서 찍었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모습은 어디나 같은듯.
▲ 인도 여인들은 별로 말이 없다. 여인 혼자서 다니는 경우도 많이 보지 못했다. 늘 가족과 함께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보고 말수도 많지 않다.
바라나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너무 가혹했다. 기차표 예매할 때부터 시련의 시작이었다. 외국인 전용 사무소로 가면 편하다기에 찾다가 진빠졌다. 뉴델리역이 생각보다 엄청 컸다. 플랫폼이 16개나 되었고 건물구조도 복잡해서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찾았고 가서도 줄을 똬리 틀 듯 서서 2시간여를 기다린 다음에 1차 미션을 마쳤다고 좋아했었다.
1월 12일 오후 8시 40분에 출발한다던 기차는 보이지도 않고 전광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현지인들한테 묻고 또 묻고 분명 타는 곳은 맞다는데, 기다리는 사람들도 맞다고 했다. 딸이 여기저기 알아보고 뛰어왔다.
"엄마 (기차가 연착돼서) 오전 4시 30분 출발이래."
"오마이 갓!"
인도가 처음부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구나! 기다릴 수밖에…. 아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데. 타는 곳에서 꼼짝없이 8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중에 한국인 일행 둘을 만나서 넷이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델리의 밤공기는 차가왔다. 완전 노숙이다. 바닥이 차가워 가져간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한기가 스며들자 두꺼운 옷을 꺼내입고, 그러고도 추워서 낙타사파리에 쓸려고 가져간 소중한 핫팩도 꺼내서 하나씩 손에 들고 견뎠다. 오전 2시쯤 기차를 탔다. 출발은 아마도 4시 반에 한 듯하다.
우리 좌석은 SL(sleeper)칸으로 침대칸인데 침대가 3층으로 되어 있다. 도둑맞을 우려때문에 2층과 3층 좌석을 샀더니 떨어질까 불안하기도 하고 오르내리기도 불편했다.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는 게 두려웠다.
새벽은 밝아오는데 불안한 마음에 침대칸이지만 잠을 제대로 이루기 힘들었다. 화장실은 지저분한 데다 바닥에 물이 고여있고 변기는 고장나 앉을 수도 없고 공포스러워 무엇을 먹을 수도 물을 마음놓고 마실 수도 없었다.
그래도 낮이 되니 밝고 좋았다. 짧은 영어나마 말을 할 수도 있고 쉴 때는 밖에 나가 과일도 사고 과자도 사서 나눠 먹었다. 현지인들은 친절해보였지만 안심을 할 순 없었다. 인도인에게 기차가 이렇게 연착을 하고 운행시간 지연이 자주 되냐고 물었다.
"indian rail is always late this is real india."(인도 기차는 늘 늦는다, 이게 진짜 인도다)
화도 안낸다. "no problem(문제없다)"이란다. 종교의 힘일까? 환경의 힘일까?
빵 나오는 데만 1시간 걸리는 인도식당
▲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이때까지는 따스한 햇볕만큼이나 평화롭고 좋았다.
▲ 갠지스강가에는 사원들이 즐비하고 사원에서 강까지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계단을 가트라고 한다. 가트의 각 계단 높이는 엄청 높다. 오르기 힘들다. 위엄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라나시를 진짜 갈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도착했다. 거의 25시간만의 도착이었다. 우린 얼싸안고 서로 기뻐했다. 숙소를 잡고 하루를 거의 굶은 탓에 저녁먹을 곳을 찾았다. 너무 늦은 탓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게스트하우스에 옥상 식당이 아직 문을 안 닫았다고 했다. 오후 10시 반이 넘어 저녁을 먹겠다고 갔더니 몇사람이 있었다. 치킨 커리와 버터치킨 난을 시켰다. 빵 몇 쪽 나오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린다. 축하주라도 들려고 했더니 맥주도 떨어졌단다. 할 수 없이 잠들 수밖에….
하룻밤 자고 다음날 숙소를 가트(강·호수로 이어지는 계단) 주변으로 바꾸려 짐을 싸들고 나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로 갔는데, 방이 없다며 다른 곳을 소개해주었다. 소개해준 숙소로 가기로 예약을 했다.
어제 하루 온종일 기차에서 고생하고 먹지도 못한 탓에 한국음식을 먹고 기분을 업시키기로 했다. 난 몸상태를 고려해 야채죽을 시켰고 딸은 말을 듣지 않고 라볶이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빛을 이용해 뽀샤시한 설정샷도 찍고 다른 한국 여행자들한테 인도여행 정보도 듣고 앞으로의 여행 일정도 점검했다. 햇빛이 참 고왔다. 남향집 툇마루에 앉아 해바라기하는 기분이었다.
1시간 가까이 걸려 나온 음식은 죽은 간이 안 맞았지만 속을 달래는 데는 괜찮았다. 그런데 라볶이는 많이 매웠고 덜 끊인 라면같았는데도 나를 제외하고선 맛있다고 잘 먹었다. 어제 못먹은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정신없이 먹었다. 갠지스강의 석양을 보기 위해 보트 예약을 하고 남은 시간 동안 라씨를 먹으러 갔다.
라씨는 발효시킨 우유에 과일을 썰어넣고 갈아서 만든 음식이다. 우리의 떠먹는 요구르트 같은 음식이다. 거기에 얼음조각을 넣었는데 좀 꺼림칙했다. 딸은 맛있다고 내 것까지 긁어 먹었다. 그리고 배를 타러 갔다. 보트를 타고 갠지스강 너머로 지는 해를 보았다.
▲ 갠지스강가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시체를 태워서 강에 띄우고 그 물에 목욕을 하고 사람만이 아니고 다양한 동물들이 모여 있다. 소도 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