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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카테리나 Nov 16. 2022

14화 "뽀뽀해주면 깎아줄게"... 미친 거 아냐!

아그라포트

▲ 아마르 싱 게이트 아그라성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


타지마할을 넋 놓고 구경하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위대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배고픈 건 어쩔수 없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H는 반갑기도 하고 고맙다며 점심을 내겠다고 했다. H에게는 델리와 아그라가 소개돼 있는 가이드북 외에도 신발을 넣을 지퍼백을 주었다. 타지마할에서는 신발 위에 덧신을 신어야 하는데 가이드북을 보지 않았던 그는 덧신을 버렸다는 것이다. 지퍼백 안에 넣은 신발을 내 배낭 안에 넣어주며 신경 써준 것이 고마웠나보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조니스플레이스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바깥 풍경도 안 보이고 너무 좁았다. 차라리 가이드북에 없는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타지마할 남문 앞에 있는 2층 식당으로 갔다. 전망 좋은 테라스로 올라갔는데 난간이 없이 바로 식탁과 의자가 있어서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딸이 가방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놀라서 쫓아내려갔는데 가방 속에 있던 1L짜리 물병은 터져버렸고, 포도와 석류도 다 으깨졌다. 다행히 카메라는 가방 속에 없었다. 딸이 가방을 정리하는 동안 식당을 둘러보다가 한쪽 벽 구석에 놓인 일본어 메뉴판을 보았다. 지금의 메뉴판은 한국어로 씌어 있다. 일본손님이 한물갔다는 얘기인 것 같다. 몇 년 지나면 한국어 메뉴판도 구석으로 물러나고 중국어 메뉴판이 전면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 아그라성벽 아그라성은 견고한 요새로 성벽의 높이가 25m에 달하고 성벽의 길이는 2.5km나 된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기념품 얘기를 하다가 타지마할 워터볼을 사기로 하고 남문 앞으로 갔다. 한 개에 100루피를 부른다. 아까 남문으로 나왔을 때 흥정을 건 가격은 10루피였는데. 우리는 가격을 알고 있다고 하며 흥정을 했다. 하나에 20루피로 흥정을 하는데 잘 안 된다. 몇 집을 더 다닌 끝에 H의 흥정으로 3개에 70루피를 주고 샀다. 그는 흥정의 달인이었다.

사가지고 나오는데 여기저기서 호객을 한다. 워터볼을 사라고. 어떤 사람은 우리가 손에 들고 다니는 워터볼을 보며 약을 올렸다. 얼마에 샀냐고 물어보더니, 자기 물건은 1개에 10루피씩에 팔겠다고 한다. 우리도 질세라 진짜냐고 물으며 정말 살 기색을 보였더니 한 발 물러서며 아니라고 한다.


아그라성까지는 30분 정도 걸으면 되기에 릭샤를 안 타고 걸었다. 걷는데 끊임없이 장사꾼과 릭샤꾼이 달려든다. 워터볼을 사라는 장사꾼에게는 한마디로 해결했다.


"우리 워터볼을 너한테 팔게."

달려들 때마다 이 한마디를 했더니 더 이상 조르지 않는다.           

▲ 아그라성 레드포트라고도 불리는 아그라성

            

▲ 악바르문 악바르 문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일부만 남아 있는데도 매우 화려하다. 다 남아있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비정함

아그라성의 별명은 '붉은 성'인데 오후가 되자 붉은 기운이 더 진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타지마할보다는 사람이 적었다. 아그라성은 무굴제국의 악바르대제가 방어 목적으로 쌓은 요새로 그 안에는 어렵게 얻은 아들 제항기르를 위한 궁전이 있다. 건축에 무한 애정을 갖고 있는 샤 자한 시기에 증축 및 개축을 해서 더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샤 자한은 타지마할 건축 때 국고를 탕진한 대가로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성에 갇혀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더욱이 한여름에도 야무나 강물을 막아서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짠 소금물을 마시게 했다니 권력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인지.            

▲ 디와니암 왕의 공식 접견실


아그라성에서는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마할이 바라다보인다. 샤 자한은 막내 아들에 의해 성에 유폐되어 전심전력을 다해 지은 왕비의 무덤을 아침저녁으로 건너다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갇혀서 삶을 마감할 것이라는 생각을 꿈엔들 했을까? 죽은 왕비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강 건너 타지마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샤자한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해가 기울었다. 델리로 가는 6시 25분 기차를 타야 한다. 하루종일 카메라 가방을 대신 메주고 말동무 해준 H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레스토랑을 찾았다. 비싸더라도 맛있고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을 가기로 결정했다.           

▲ 타지마할 아그라성의 무삼만버즈에서 야무나강 건너에 아련히 보이는 타지마할


릭샤를 타고 레스토랑을 찾아 가는데 릭샤꾼은 또 흥정이다. 저녁 먹고 몇 시에 나올 거냐며 싸게 아그라역까지 태워다줄 테니까 기다린다고 한다. 우린 몇 시에 나올지 모르니 기다릴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레스토랑은 우리가 다녔던 곳보다는 격이 있어 보였다. 버터난과 탄두리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맥주가 한잔씩 들어가자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각자의 얘기들을 털어놨다. H는 대학도 졸업하고 취직도 했고 군대도 갔다 왔다고 했다. 불과 스물다섯 살인데. 완전 '엄친아'다. 성격도 유쾌했다. 사위 삼고 싶은 건 나의 지나친 사심이려나? 딸의 생각은 어떨지 알 수 없는데.


하루종일 버는 돈이 350루피인데 750루피를 달라고?           

▲ 제항기르 궁전 아그라성안에 악바르황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 제항기를 위해 지은 궁전의 내부 모습들


얘기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H와는 작별을 하고 아그라역으로 갔다. 역에 도착한 후 5분여쯤 후에 기차가 왔다. 기차는 아그라로 올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제너럴 급이었나보다. 3인석인 딸의 자리에는 이미 세 사람이 앉아 있었고 좌석표를 보여주자 일어날 생각은 않고 좁히기만 했다.


자리 잡고 앉았는데 싸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체구도 작고 순하고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현지인한테 당하고 있었다. 일본 청년 같았다. 현지인은 언성을 높이며 따지고 들었다. 일본 청년도 간간이 대꾸를 했지만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현지인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점점 더 기세등등했다.


들어보니 릭샤를 탄 일본 청년한테 릭샤꾼이 흥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릭샤꾼은 일본 청년한테 기다리겠다고 했고 청년은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릭샤꾼이 못 알아들은 건지, 청년이 단호하게 거절을 못해서 그런 건지 하여튼 이 청년을 기다리느라 자기는 하루종일 돈을 못 벌고 손해를 봤으니까 750루피를 내라는 거였다. 하루종일 릭샤투어를 해도 350루피면 되는데 릭샤꾼은 일본 청년을 봉으로 본 모양이었다.


결국 청년은 타협을 해서 450루피를 주었고 그제서야 릭샤꾼은 고맙다고 말하며 내려갔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서 말리진 않았다. 우리도 그 싸움이 어이가 없고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영어가 안 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딸과 나는 둘이서 얘기했다.


"만약에 우리한테 그랬다면 가만 안 뒀을 거야. 어떤 돈인데 생돈 450루피를 빼앗겨? 영어가 안 돼도 악착같이 싸워서 절대로 안 주지. 어림도 없는 얘기야."


시간이 지날수록 기차 안엔 점점 사람이 많아졌다. 짜이장수와 먹거리장수들도 발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딸은 좌석이 있음에도 점점 밀려나 엉덩이 한쪽도 걸치기 어려웠다. 난 딸자리에 앉은 사람한테 자리를 넓혀달라고 말하려 하는데 딸이 막는다. 그때 쥐를 보았다. 그런데 딸은 쥐를 보고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인도여행에 익숙해졌는지, 이게 진정한 인도라며!


악수를 해주면 50루피 깎아준다면서...            

▲ 무삼만버즈 일명 포로의 탑이라고도 하는 인 건물에 샤자한이 유폐되어 8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곳


니자무딘역까지는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델리에서 아그라로 갈 때보다 1시간이 더 걸렸다. 델리역으로 오려고 했으나 표가 없어서 니자무딘역으로 끊은 것이다. 내렸는데 릭샤꾼이 보이질 않는다. 다른 지역에선 여행자보다 릭샤꾼이 더 많았는데 여긴 상황이 반대였다. 릭샤가 보이자마자 현지인들이 재빨리 잡아타서 우리 차례는 오지도 않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잡을 수가 없었다. 나중엔 아예 릭샤가 보이지도 않았다.


시간은 흘러 11시가 넘었다. 경찰한테 도움을 요청했더니 택시를 잡아주었다. 택시는 위험하단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동안은 전혀 이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뭐든지 타야만 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가 적힌 명함을 기사에게 건넸다. 기사는 알았다며 출발을 했다. 딸과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만 바라봤다. 길거리엔 차도 릭샤도 인적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불안했다. 기사가 말을 시키는데 영어도 잘 안 되거니와 대답해줄 기분이 아니어서 적당히 대꾸하고 넘겼다.


다 왔다고 내리라고 했다. 처음엔 숙소가 있는 빠하르간즈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었다. 두리번거려 주변의 건물을 확인하고서야 내리려는데 맙소사, 잔돈이 없다! 150루피라는데 100루피짜리밖에 없다. 200루피를 내밀었다. 기사도 거스름돈이 없다고 한다. 마트에 가서 물건 사고 거슬러서 주려고 했더니 악수를 해주면 50루피를 깎아서 100루피만 받겠단다. 기분은 안 좋지만 '나야 뭐 아줌마니까'라는 생각으로 악수를 했더니, 이 인간 딸보고도 악수를 하잔다.


딸은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노골적으로 하면서 마지못해 악수를 하는데 기사는 한술 더 뜬다. 뽀뽀를 해달라고!

"미친 거 아냐?"

우린 내리며 문을 쾅 닫고는 숙소로 냅다 달렸다. 기사의 기분 나쁜 미소가 상상이 되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50루피 때문에 일 당할 뻔했다. 무사귀환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 아그라역 아그라역과 기차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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