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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May 24. 2018

댓글부터 읽는 습관

본문도 읽어 주세요.




휴대폰으로 포털 사이트를 열다 보면 뉴스 기사 한 두 개쯤은 반드시 누르게 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워낙에 그럴듯하게 달린 제목이다 보니, 이를 읽고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치기란 좀처럼 힘든 것이다. 


"김사랑, 상반신 노출..."


몇 년 전의 일이다. 대략 위와 같은 제목의 연예 기사가 포털 상단에 버젓이 떠 있었다. 내용이 제목과 같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지만 도저히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어느 친구의 이야기다. 그 친구가 결국 확인한 기사에는 과거에 잠시 반짝했던(?) 남자 가수 김사랑 씨가 어깨를 드러낸 사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낚인 나는- 아니 그는 몹시 분개했다. 아니 분개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보통 친구 이야기라는 건 불변의 진리 


아차, 요는 이게 아니다. 그렇게 제목에 이끌려 본 기사에서 정작 본문은 쓱 넘기고 댓글부터 확인하는 습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각종 인터넷 기사를 클릭하여 우선 댓글부터 확인하는 건 비단 나만의 사례가 아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그러하다고 공감한 바이기에 나름대로는 확신하는 추세이자 경향이다. 





긴 글은 잘 읽히지 않는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사실 웬만한 기사들은 제목과 서두에 이미 핵심 내용과 결론을 드러낸다. 보다 상세한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개는 그래서 기사의 본문은 건너뛰고 아래의 댓글부터 확인한다고들 한다.


댓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공감수를 자랑하며 상단에 위치한 소위 '베댓'이야말로 여론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다. 최근 정치적으로 많은 논란이었던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한 댓글 조작의 예를 꼭 상기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공감 수 높은 댓글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만 보니 내가 딱 그랬다. 그래도 제법 글 좀 읽는다고 자부했던 건 까마득한 옛날이요, 어느새 나 역시 본문은 뒷전이고 댓글로 기사 내용을 파악하곤 했던 것이다. 마침 베댓에 나와 같은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한 글이라도 있으면 그것만큼 속 시원한 일이 없어서 공감 버튼을 눌렀음은 물론이다.




출처 : freepik.com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사의 제목과 끝만 확인하고 전체를 판단하는 요즘이다. 


그렇게 생성된 여론은 베댓의 형태로 이미 대세가 된 여론을 더욱 강화시켜 본문의 내용마저 왜곡시키기도 한다. '기사 내용은 읽어나 보고 하는 말인가...'로 시작하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유다.


내가 읽는 기사의 의도라든지 내용에 앞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더 궁금해하는 사람들. 


어떤 사안을 자세히 살펴보고 스스로 판단 내리기보다는 대충 미루어 짐작하다가 타인의 한 마디에 전체를 평가하는 그런 일들. 이야말로 연예 기사 같은 가십뿐만 아니라 사회/정치/경제 할 것 없는 전 영역을 포털 여론이 두루 장악한 온라인 시대의 단상이 아닐는지.



요새의 포털 기사들을 보면 분노로 가득한 댓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이슈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과 없는 의견을 익명으로 올리기 너무나 간단한 모바일의 편의성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나부터가 상시 로그인 상태의 휴대폰 브라우저를 통해 공론의 장에 처음으로 댓글이라는 걸 달아보기도 했다.(나쁜 말 같은 건 절대 안 쓰고 몇 글자 보태어 봤습니다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혹시 내 불안한 심리 상태 때문에 그런가 싶어 부러 긍정적이고 희망차 보이는 기사들만 골라서 클릭해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밑도 끝도 없는 악플은 논외로 하더라도 기사에 나온 내용의 끄트머리에서라도 어떻게든 욕할 거리를 찾아낸 댓글들로 넘쳐난다. 확실히 병들어 있는 사회의 단면이랄까.


그래서 최근에는 포털의 댓글을 아예 안 보려고 노력한다. 


나도 모르게 기사 화면이 뜨면 바로 화면을 내리려는 유혹을 참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의식적으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최근에는 댓글을 읽느라 괜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일이 줄어들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 글 또한 서두의 얘기만 놓고 보면 본문의 내용과는 다른 글로 예상될 테다. 수백수천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영향력 있는 글이라면 모를까, 그저 나 좋자고 이러쿵저러쿵 써내려 가는 졸고이다 보니 더더욱 글 전체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드물지 않겠는가. 할 말만 딱 하고 끝내는 게 여러 이야기로 욕심내는 것보다 낫겠다 싶은 생각이 종종 들지만 그게 또 쉽지만은 않다. 그렇게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제목은 저 위에 가 있으니 이를 어쩌랴. 


그나마 브런치는 작가든 독자든 긴 호흡의 글에 익숙한 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라서 안심이라면 안심이다. 


내가 타인의 글을 제목이나 댓글로 평가하지 않으려 하듯, 타인 또한 내 글을 그리 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결국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걸 읽고 공유하는 공간이 어떠하냐에 따라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에도 큰 차이가 있나 보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습관처럼 휴대폰 화면으로 뉴스 기사를 찾아보겠지만, 적어도 댓글부터 살피는 일은 없을 거다. 그게 내 속이 편해지는 길인 걸 수차례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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