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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Nov 09. 2023

<오랜 날 오랜 밤>

악뮤



  히트곡이 많은 악뮤의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이찬혁의 재능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다. 남매 보컬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극대화하는 멜로디는 물론이요, 재치있고 독특한 가사는 대중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들의 노래를 듣던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오랜 날 오랜 밤>이 좋아서 여러 번 듣다가 마침내 가사에 주목한 어느 날이었다. 당시의 난 여러 이별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던 중이었는데, 이 곡에 이르러서야 '아, 이제 당분간 이별 노래 같은 건 안 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들은 슬픈 영화나 노래를 통해 아픈 마음을 달래곤 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소모 또한 감내해야 하지만, 눈물을 터트려서라도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그만한 게 없다. 사랑의 설렘만큼이나 이별을 다룬 예술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슬픈 가사로 눈물을 쏙 빼는 이별 노래는 흔하다. 반대로 담백한 가사와 절제된 표현으로 아픔을 담담하게 노래한 뮤지션도 흔하다. 그러나 이 둘이 양립하는 상황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하나의 음악에 감정의 자극과 절제를 같이 담아내라는 건 마치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란 말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오랜 날 오랜 밤>에서 이별 감정의 자극과 절제 모두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악뮤의 두 청춘 남녀가 부르는 노래에 연륜이나 노련미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경험담이나 깨달음을 노래에 투영하여 섣부른 위로를 건넨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노래가 슬픔과 기쁨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하나의 곡에 절묘하게 담아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오랜 날 오랜 밤>의 선율은 순수하고, 노랫말은 착하다. 이를 낭랑한 목소리로 부르는데 짙은 호소력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남매의 하모니로 울려 퍼지는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라는 과거형 소회에서 청자는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착한 이별 노래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 줄래요' 는 이별을 받아들인 이의 마지막 바람이다. 당신에게 나는 비록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지라도, 게다가 앞으로 좋은 사람으로 함께할 수 없게 되었을 지라도- 부디 미운 사람으로는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루었을 때 화자가 그리 못된 사람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진심이었소'는 과거로 현재를 딛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다. 이별은 슬픈 현재의 확인인 동시에 행복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과거의 발견이기에- 떠나는 상대에게 뒤늦게나마 전하는 '그저 곁에서만 있어도 보고 싶고 또 행복했어'란 고백. 이는 결코 돌아서는 이를 붙잡기 위한 플러팅(?)이 아니라 진실로 돌아서는 화자의 진심임을 느낄 수 있다.


  <오랜 날 오랜 밤>은 지난날의 이별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과 밤의 사랑이 많을 청춘을 위한 노래다. 톡 건드리면 터질 듯한 꽃망울에서 눈물 대신 미소가 피어나 아름다운, 이별 아닌 사랑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DxJRz9NYKxY


별 하나 있고 너 하나 있는 그곳이 내 오랜 밤이었어

사랑해란 말이 머뭇거리어도 거짓은 없었어


넌 화나 있고 참 조용했던 그곳이 내 오랜 밤이었어

어둠 속에서도 잠 이루지 못해 흐느껴오는 너의 목소리


그대 곁이면 그저 곁에서만 있어도 행복했단 걸

그 사실까지 나쁘게 추억 말아요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말도 안 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 줄래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소중해


잘 자요 안녕 그 말 끝으로 흐른 시간은 오랜 날 같았어

우린 서로에게 깊어져 있었고 난 그게 두려워


넌 가만있고 나도 그러했던 순간은 우리 오랜 날  

함께한 시간을 아무런 의미도 없듯이 추억만 하게 하겠죠


그대 곁이면 그저 곁에서만 있어도 보고 싶고 또 행복했어

그건 진심이었소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말도 안 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 줄래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소중해


하늘이 참 뿌옇고 맘을 다잡아야 하죠

이젠 마지막 목소리 마지막 안녕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 줄래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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