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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17. 2024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느냐>

- 세월호 10주기 정호승 시인의 추모시



  나 사는 게 바쁘단 핑계로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존경스러운 건 주변 이들을 위하여, 세상 따스해지라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어제가 벌써 세월호 10주기였다. 아무 일도 한 적 없는 나로서는 올해도 그저 먹먹함만 가슴에 묻을 뿐이었다. 그런데 10년이란 세월의 무게는 역시 작년과 달랐다. 슬며시 용기를 내어 추도식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정치인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눈물짓는 사진이 보였다. 그들 하나하나의 진정성을 판단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자리에 참석하고 공감하고 연대한 모든 이들의 마음만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보았다. 정호승 시인이 낭독했다는 추모시를. 좋아하는 시인의 시라서, 세월호의 아픔을 읊은 시라서, 어제 처음 울려 퍼진 시라서, 모든 이유로 가슴이 먹먹하고 아렸다.


  웬만해선 끄적이는 에세이조차 감정에 찬 상태로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만큼은 바로 올려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뿌예진 눈으로 다시 옮겨 적는 말들이 절절하고 아프다. 다시는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만 하겠다.


  다음은 추도시 전문이다.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느냐>


아들아,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느냐

사랑하는 내 딸아, 왜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느냐

행여 이 엄마를 잊고 있느냐

엄마는 10년이 되도록 간절히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젊던 아빠는 기다림에 지치고 그리움에 목말라 점점 병들고 늙어가는데


아들아, 내 딸아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

엄마는 반갑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10년 동안 잠 한 번 편히 자본 적 없고

밥 한 끼 제대로 맛있게 먹어본 적 없는데

정녕 이 엄마의 심정을 모른단 말이냐


세상은 변하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도 변했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이야 변할 리 있겠느냐 

어이구 내 새끼

돌아와 준 것만 해도 고맙다

얼씨구나 

기어이 살아 돌아왔구나

너를 껴안고 신나게 춤출 날을 꿈꾸는데 

편지도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한통 없이

왜 이렇게 엄마 아빠를 봄 눈처럼 녹이느냐 


올해도 먼 산에 진달래는 피었다 지고

아파트 앞마당에 백 목련도 피었다 지는데

도대체 너는 어디에 있느냐

아무리 지는 꽃이 아름답다지만 

너는 피어나기도 전에 저버린 꽃이 아니더냐

니가 집을 떠난 뒤로 아직까지 엄마 아빠의 계절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함께 떠난 친구들은 잘 있느냐

친구들과 싸우지는 않고 잘 지내느냐

목마르고 배고파서 울지는 않았느냐

오늘은 짜장면과 피자를 배달할 테니 친구들이랑 맛있게 나눠먹어라

오직 너를 배불리 먹이는 거 외에 엄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가슴에 널 묻으라고 한다

세상에...

언제나 너는 내  가슴에 살아있는데 어떻게 가슴에 묻을 수 있겠느냐

엄마는 너를 가슴에  묻지 못한다

아빠도 너를 황량한 가슴에 들판에 묻지 못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지금이라도 꼭 돌아오너라

부디 돌아와 10년이나 너를 기다린 엄마 아빠를 꼭 한 번 껴안아 다오

아무리 기다려도 봄이 오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다오 

      

- 2024. 4.16. 세월호 10주기 추도식에서 정호승 시인이 낭독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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