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의 여유 Jul 17. 2023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십오 년 전, 아꼈던 동생이 호주로 이민을 갔다. 우리의 인연도 예사롭지는 않았지만 꽤 오랫동안 잘 지내오던 동생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간다니 부러움 반, 아쉬움 반쯤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신혼여행을 호주로 갔었고 그곳에서 정착을 권유하는 분이 계셔서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이민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와 다르게 남편은 20대 중반 미국생활에서 본 이민자의 모습이 힘겨워보였다며 이민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이민을 갈 수는 없었기에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내게, 친하게 지내던 동생의 이민은 한동안 다시 마음에 불을 지폈다.   

   

"언니, 호주 생활은 너무 좋아, 하지만 건강이 전제되어야 해, 병원 갈 일만 없다면 호주는 살기 좋아."  

   

그 동생이 늘 하던 말이었다. 막연하게 '그렇겠지.'라고 생각만 했지 나는 어렸을 때였기에 그다지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계획대로 이른 은퇴를 했고, 해외에서 장기체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어디 아픈 곳은 없지만 적당히 건강했던 나는, 건강검진으로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는 곳들을 치료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면서 한국을 떠나 생활한다는 것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결국 건강이었다.     


낙천적이고 미리 고민하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지만 막상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건강염려증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한국과 다르게 타슈켄트는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 거리 두기도 없고 마스크고 쓰지 않고 지낸다는 말도 너무나 걱정되었다.(이 당시 한국은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되어 마스크를 벗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때였다.) 해외에서 제발 병원 갈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나름 조심조심 생활했다.  

    



TIC 병원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왼쪽 귀에 물이 찬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귀가 멍해지는 듯하더니 점점 소리가 멀어지고 안 들리기 시작했다. 굉장한 기압차로 느껴지는 통증이 밀려왔고 나의 말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내 귓속에서 맴도는 듯했고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경우는 없었기에 일시적인 일일 거라며 애써 마음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먹먹해지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여보, 나 한쪽 귀가 갑자기 안 들려......"


놀랄 남편이 걱정되어 너무나 덤덤하게 말했다.     


덤덤하게 말한 나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너무나 침착한 남편은 택시를 잡고 타슈켄트 국립대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마치 형무소 같이 높은 담벼락 같은 철문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서 접수를 하고 이것저것 적어내고 기초체온을 재는 등 초진이기에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타슈켄트에서 꽤 좋은 TIC 병원


대기실에서 의사를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남편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다독여주는 덕분에 농담 따먹기나 하며 진료실에 불려 들어가길 기다렸다. 소통의 문제로 나의 증상이 잘 전달될까 우려됐지만 다행히 영어를 하시는 나이가 지긋하며 체격이 꽤 크신 인상 좋은 러시아 의사 선생님이셨다.


나의 하루 상황은 어떠했는지 지금과 같은 증상은 몇 시간 전부터 지속되었는지 등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하고 여러 가지 의료기구들을 이용해 본격적인 검사를 했다. 다행히 고막에는 이상이 없고 유스타기오관이 부풀어 올라 공기흐름이 막혔고 그래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친절한 선생님은 걱정 한가득인 내 눈빛을 보더니 그림으로 설명된 책을 펼쳐서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며 한참을 설명해 주셨다.


러시아 의사 선생님이 이 책자를 펼쳐 보여주시며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3일 치의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병원을 나서면서 고막에 이상이 없으면 된 거라며 우리는 다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하루

이틀

독한 약에 취해 잠만 잤다.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틀째 거짓말처럼 갑자기 귀가 뻥~ 뚫렸고 그제야 남편은 살 것 같다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구나. 걱정했구나.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보였지 뭐야. 그래서 섭섭했던 건 아냐. 그냥 나로 인해 힘들지 않길 바랐을 뿐이야.'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이전 04화 역시 모든 일은 예상과 다를 수 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