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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여유 Aug 10. 2023

미니멀하게 살게 되는 타슈켄트의 생활

우리는 두 식구이다. 둘이 살고 맞벌이였기에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시간이 없을 듯하지만 우리 둘 다 음식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메인메뉴 하나를 만들어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요리연구가 빅마마처럼 한 상 가득 차린 밥상을 좋아했다.     


내가 잠시 일을 쉴 때가 있었는데 나는 날마다 마트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다 먹지도 못할 음식 재료들을 사기에 바빴다. 남편은 혼자 점심을 먹는 나에게 늘 대충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사실 나는 한상 가득 차린 밥상을 혼자 즐기곤 했다. 아마도 그때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요리를 하고 먹고 즐기면서 나름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핑계도 생각해 본다.     

 

< 남편이 선호하는 한 그릇 음식>




주로 대형마트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니다가 창고형 마트인 코스트코를 드나들게 되면서 신세계가 펼쳐졌다. 각종 수입 식자재와 먹거리들에 홀린 듯이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둘이 살기 때문에 코스트코에서 장을 본다는 것은 결국 냉장고든 냉동고든 남은 것들을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었기에 합리적인 장보기는 아니었다. 코스트코를 다니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에 빠진 듯 집 가까운 양재점을 일주일에 두 번을 가면서도 그것으로 부족해 길 건너편 이마트까지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 나름의 코스였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대형 냉장고는 세 대가 되었고 냉장고 안에는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꽉 찬 상태였다. 그럼에도 보관할 곳이 모자라 실온 생태에 두어도 되는 식자재는 일명 알파룸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치 곧 세상에 좀비가 들끓어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사들이고 뿌듯해했던 때가 있었다. 앞서 말했던 호주로 이민 간 동생은 무척 미니멀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이 동생이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잔소리하며 냉장고의 음식들을 털어가곤 했다. 지인들이 놀러 오면 양손 가득 이것저것 들려 보내고 나는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시 마트로 향했다.      




우리 집은 아버지 사업 실패로 어려움에 처했었고 주변에 잘 사는 친인척들 사이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맘껏 먹지 못한 내적 욕구가 뒤늦게 분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한편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엄격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기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부모님께 요구하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에 독립하고 마음껏 쇼핑하고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것이 하나의 억눌린 감정의 표출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쨌든 대형 냉장고는 세 대가 되었고 이마저도 부족해 음료만 넣을 수 있는 냉장고를 하나 더 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냉장고 속에서 썩은 음식들을 내다 버리면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들을 발견하고는 너무 민망스러웠다. 냉장고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이젠 그만 정리하고 싶었고 그동안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사들인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나의 집착으로 시작된 쇼핑 품목들을 한 번에 내다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트로의 발길을 끊고 일명 냉파를 해보기로 했으나 몇 년은 먹어도 될 만큼 쟁인 덕분에 좀처럼 냉장고에 그득한 음식들은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친한 동생이 독립을 한다기에 냉큼 냉장고를 한 대 주겠다고 선언하고는 본격적인 비우기에 돌입했다. 물론 말이 비우기지 대부분 내다 버리기였다. 어쨌든 그렇게 냉장고가 한 대가 정리되자 나머지 냉장도고 빨리 정리하고 한 대만 남기고 싶어졌다.     


결국 나머지는 정리하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정리를 못했는데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음료를 넣어두는 냉장고 한 대만 빼고 나머지는 중고로 모두 팔아버리게 되었다. 냉장고 안에 물건들을 꺼내면서 내가 그 많은 것들을 내 삶의 무게만큼 지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 다시 무언가를 쟁이고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필요한 것만 사게 되는 장보기


지금 살고 있는 우즈베크 집은 일반형 냉장고이다. 냉장고가 그간 쓰던 것에 비하면 무척 작아서 무언가를 넣어두고 쟁여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에 가서 과일을 이것저것 실컷 사고 싶지만 넣어둘 공간이 없기에 하루 이틀 먹을 양만 사게 된다. 


냉장고가 작다는 것은 날마다 시장을 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6개월 정도하고 보니 불편하다기보다 무척 만족스럽다. 


남은 식재료는 당연하다는 듯 냉장고로 직행하던 일이 이제는 식재료가 남아 냉장고를 채우게 되면 심란하고 불안할 지경이니 나는 이제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자연스럽게 미니멀하게 살게 되는 습관을 들이게 되는 타슈켄트의 생활을 한국에서도 지속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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