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질서 의식은 놀랍다. 어디를 가든 번호표를 뽑거나 예약을 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적당하게 줄 간격을 유지하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당연한 이런 질서나 시스템이 외국에 나오게 되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오사카 유니버셜에 새로운 해리포터 놀이기구가 생겼을 때 일본인에게 새치기를 당하고 깜짝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 일본의 질서의식이 높다고 들었던 터라 더 당황스럽지 않았나 싶다. 뭐 어디든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은 아닐 테지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무단횡단을 하는 파리지앵들을 따라 하며 묘한 흥분을 느낀 적도 있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무분별한 새치기와 무례함에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무질서함을 겪게 되면 짜증과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그 나라까지 싫어질 때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줄 서기 문화는 과연 있는 걸까?
분명 줄은 서지만 아직 질서는 없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표를 구입할 때나 시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계산을 하기 위해 줄 섰을 때가 가장 흔한 예가 될듯하다. 매표소에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뒤를 이어 줄에 합류했다. 하지만 줄이 줄어들기는커녕 어느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새로 오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가서 창구로 쓰윽~ 아주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누구도 이에 대해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들의 이런 무질서함에 짜증과 화가 났으나 내가 어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포기했다.
줄인듯 아닌듯 서있는 탑승대기하는 사람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주어진 환경에 유독 더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다. 타슈켄트 생활을 한 지 6개월 남짓이 되었고 이제는 내 앞으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어느 정도 양 옆으로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방어하는 기술도 터득했다. 누군가의 앞으로 쓰윽~ 자연스럽게 새치기하는 공격력은 없지만 방어력이 탑재된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적을 물리친 승리의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를 현실에 빠르게 적응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끼어들기의 신공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체득된 행동을 바꾸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구나 새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도 부끄러움 없이 눈치껏 끼어들기를 했던 적이 있었고 국가의 품격이 높아지면서 국민성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의 80~90년대 수준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말을 이곳에 오래 거주하신 분들에게 들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듯 느껴진다. 작년(2022년) 국가 성장률이 17%라는 것과 앞으로 빠르게 성장할 국가 순위에도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우즈베키스탄은 놀라운 속도로 경제성장할 나라임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빠른 경제성장의 속도에 국민성이 따라가지 못해 진통을 겪을 수도 있지만 급변의 과도기 속에 있는 이들의 문화의식도 함께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오늘 우리는 부하라의 인기 있는 식당에 플로브(Plov)를 먹기 위해 갔다. 굉장히 넓은 식당은 수많은 현지인과 외국인이 뒤섞여 식사를 하기 위해 통로에 서서 자리를 찾고 있었다.
플로브 맛집, 사진은 전체 매장의 10분의 1도 안된다
식당에 들어서자 안내해 주는 듯 보이는 직원분에게 다가가
"저희 두 명인 데요..."
"자리 없어요."
어떠한 안내도 없이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온다. 식당 곳곳은 빈자리가 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차지하기 위해 식사를 마쳐가는 듯 보이는 사람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나는 전투력을 상실했다.
"우리 그냥 다른 데 가자."
"잠시 기다려봐."
빠르게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결혼식장 피로연 장소 같은 넓은 식당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지 두 눈을 빠르게 굴리며 자리 탐색에 들어갔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움직이더니 어느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