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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여유 Oct 18. 2023

고구려 사신은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

고대부터 동서양을 연결한 실크로드의 중심지이며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는 아프로시압(Afrasiab)이라는 고속열차를 타면 2시간 10분 만에 도착하기 때문에 타슈켄트에서 가장 쉽고 편하게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관광지이다. 


스페인 렌페인 아프로시압은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구간을 가는 동안 몇 가지의 빵과 마실거리의 간식을 준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낯선 여행지의 설렘 때문인지 왠지 삶은 계란과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를  한 모금 마셔야만 할 것 같다.


"커피 드릴까요? 라떼와 카푸치노가 있어요."


"라떼 주세요!"


우리는 간식과 함께 주는 무료 음료일 거라 마음대로 생각하고 당당하게 두 잔을 시켰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주변의 다른 승객들은 모두 손사래 치며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아프로시압(Afrasiyab) 고속 열차


'우즈베크은 티 문화이고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역시 이들은 커피를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승무원이 쟁반 위 곱게 종이컵에 라떼를 두 잔 따라주며 한국 돈으로 6천 원 정도를 요구하였다. 이미 커피 한 잔을 받았는데 라떼 두 잔을 더 가져다 주는 것었다. 아메리카노는 무료 서비스지만 라떼와 카푸치노는 유료 서비스였던 것이다. 우리는 맛없는 라떼를 꾸역꾸역 마시며(우즈베크은 커피가 맛 없기로 유명하다) 사마르칸트에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택시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바가지요금을 불렀지만 우리는 우즈베크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에 쉽사리 당할 리는 없다. 노란색 노면 전차가 눈에 띄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근처까지 가는 전차임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올라탔다.


사마르칸트 트램


"아시아 호텔은 저기로 가야 해요!"


묻지도 않았는데 호텔로 향하는 우리를 발견한 어르신이 손녀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즈베크 사람들은 한국인에게 친절한 편인데 사마르칸트는 타슈켄트 사람들보다 더욱 친절하고 한국인이라는 것만 들어도 무척 반가워한다. 이들의 친절함에 우리의 여행은 이미 들떠있었다.




사마르칸트에는 아프로시압이라는 박물관(Afrasiyab Museum)이 있다. 아프로시압 유적지에서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궁전 벽화가 발굴되면서 한 차례 뉴스에 났었던 기억이 난다. 선선한 날씨가 좋아 우리는 꽤 먼 거리였지만 울그르벡 천문대에서 아프로시압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프로시압이라는 박물관(Afrasiyab Museum)으로 향하는 길


아스팔트는 깔끔하게 잘 깔려있었지만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았고 도로 위를 다니는 것은 소와 양 떼였다. 도로 위는 소몰이꾼과 양치기 목동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이 신기한 장면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아프로시압 박물관과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가 나타났다. 


강력한 왕권과 문명을 자랑했던 사마르칸트 7세기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 하니, 그 당시 고구려 사신도 내가 걸어온 아프로시압 길을 걸었을 것만 같아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묘한 기분이었다.




7세기 궁중벽화에 조우관을 쓴 사신


고구려 사신의 벽화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7세기 소그디아 왕국의 바르 후만 왕의 즉위식에 각국의 사신들이 왕을 접견하는 장면 속에 조우관을 쓴 사신 두 명은 선명하게(아마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알아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왕의 행렬, 당나라 고종이 사냥하는 모습, 당나라 사람들의 축제를 즐기는 모습 등 당나라와의 교류도 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벽화 우측 밑 부분에 'Korean guards'라고 적혀 있는데 이들이 드넓은 몽골초원과 타림분지를 지나 톈샨산맥까지 넘어 중아아시아 서역까지 왔을 것이리라. 



머리에는 절풍건(折風巾)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고 두건의 모서리에 새의 깃털을 는다.

-위서 고구려 전-




고구려에서 사마르칸트까지 거친 산을 넘고 죽음의 사막을 지나 6,000km 이상의 이곳까지 왜 왔을까?


문물 교류를 통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했던 것일까? 


바후르만 즉위식을 축하하러 온 자리라면 화친을 위한 것일까?


동맹 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함이었을까?


당시는 당나라의 고구려 압박이 심해지던 때였으므로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밀사였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중앙아시아가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벽화의 발굴로 밝혀졌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우리 선조가 사마르칸트에 다녀간 기록은 더 있다. 서역에서 중국의 국경 확장과 안정적 지역을 만드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755년)도 당나라 장수로 이 도시를 거쳐 갔다고 한다. 1400년 전 중앙아시아와 교류한 선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마르칸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높이 2.6m, 가로 11m 4개의 벽면에 나눠 그린 총 44m길이의 초대형 궁중벽화


고대도시의 주거유적지라는 아프로시압은 상당히 넓고 더디지만 지속적인 발굴 작업 중에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출토물의 발굴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고대성터와 유물이 모두 발굴되고 고대도시의 모습을 알게 된다면 '폼페이에 맞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비치는 학자도 있다. 


당나라 시대에 이곳을 다녀간 고구려 사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사마르칸트 여행은 의미 있었다. 앞으로 발굴될 유물에서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더 발견되길 바라며 부디 유물과 유적의 복원 작업이 제대로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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