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조 울르그벡(Mirzo Ulugbek)은 막심고리끼(Maxim Gorky)라고도 하며, 러시아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저택이 많은 부촌 중 하나이다. 타슈켄트의 1호선(Chilanzar Line)의 지하철역 이름도 미르조 울르그벡(Mirzo Ulugbek)이 있다. 우리 집 대리인 아저씨의 이름도 울르그벡이다.
울르그벡에 대한 호기심은 사마르칸트에서 해소되었다. 사마르칸트 추천 여행 코스에 울르그벡 천문대가 있다. 울르그벡 천문대는 사마르칸트의 주요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외곽에 위치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것을 좋아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이동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울르그벡 천문대(UlughBeg Observatory)'라는 명칭에서 천문학자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좀 더 알아보면 흥미로운 인물이다.
울르그벡 기념관과 마주 보는 곳에 고도에 따라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 관측기가 남아있는데 많은 부분은 훼손되어 있다. 하지만 천문대의 내부 구조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박물관에 있는 천문대의 모형과 그림 등을 참고한다면 각도에 따라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1420년대에 만들어진 천문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충분하다.
"Siz qayerdansiz?"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koreysman." (한국 사람이에요.)
천문대 앞을 지키며 낡고 작은 의자에 지루한 듯 몸을 기대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일어나셨다. 지루하던 차에 대화 상태가 나타난 듯 반기며 어눌한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세종이라는 왕이 있지요? 세종대왕 시대에 해시계를 만들었죠? 그 해시계는 울르그벡이 알려준 거예요. 우즈베크에 울르그벡이라는 분이 만든 천문대를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자 이쪽으로 어서 와서 보세요..."
할아버지의 총기 어린 눈빛은 자랑스러운 당시 최첨단 천문대를 보여주는 일에 신이 난 듯 보였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억측이라며 궁시렁거리며 천문대와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자, 거대한 울르그벡 동상은 '인증샷 한 장 정도는 남기고 가야지'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 둘러보아야 할 곳으로 울르그벡 무덤, 울르그벡 마드라사, 울르그벡이 만든 코란 경대 등이 남아 있어 도대체 울르그벡이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울르그벡(UlughBeg)은 사마르칸트를 재건하고 엄청난 영토를 확장해 대제국을 건설한 티무르(Temur)의 손자로 1934년에 출생하여 약 40년간 군주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학자이기도 했던 울르그벡은 자신의 수학적,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티무르 제국을 학문적 번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울르그벡은 정치나 종교보다 수학과 천문학 등 여러 학문에 더 큰 관심이 있었고 과학 학교(한국의 과고, 과기대가 생각난다)를 만들고 뛰어난 천문학자와 수학자를 양성해 중세시대 과학의 중심지로 큰 발전을 이룬 인물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이슬람 지도자들의 눈 밖에 나게 되고 이슬람 지도자들의 사주에 넘어간 울르그벡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참수하기에 이른다.
왕의 자리를 두고 혈육일지라도 죽고 죽이는 일이 빈번했던 때였으니 지금의 관점으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지만 울르그벡이 더 오래 살았다면 과학적으로 더 발전한 문명국가로 이름을 남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1428~1429년에 건축된 울르그벡 천문대는 당시 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 높이 40m의 돔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돔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천문대의 위용은 굉장했으리라. 당시의 관측기로 계산한 1년은 365일 6시간 10분 8초, 오늘날 태양, 달, 행성의 고도를 정밀하게 측정한 1년은 365일 6시간 9분 9.6초라 하니 오차가 1분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당시 관측기를 만든 기술력과 천문학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마르칸트 왕조의 황금기를 지배했던 울르그벡(1394~1449년)
조선의 제4대 왕으로 가장 융성한 발전을 이룬 통치자 세종대왕(1397년~1450년)
두 왕의 생애시기가 거의 똑같다고 할 만큼 동시대를 살며 과학적 번성을 이뤘던 왕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로 교류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어쩌면 천문대 앞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
'아냐. 우리 세종대왕이 울르그벡에게 천문학적 지식을 전수해 준 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