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타슈켄트에서 사는 동안 경량 패딩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우즈베크 겨울은 눈도 오지 않고 영하로 잘 내려가지도 않으니까요."
우리는 잠시 1~2년 정도 거주할 목적이었기에 짐들을 보관이사에 맡겼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왔다. 타슈켄트에서의 생활이 끝나면 원래 생각했던 목적지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해외살이를 해볼 심산이었기에 타슈켄트에서 보낼 2년 정도에 필요한 것들과 쓰다 버려도 될 것들 위주로 짐을 꾸렸다. 사실 나는 많은 짐을 가지고 살았다.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했지만 그간 산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버릴 수 없어!'
'이건 내가 얼마나 잘 사용하는 건데 버릴 수 없어!'
'이건 지금 쓰진 않지만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거야.'
등등 하나같이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짐을 보관이사에 맡기고 정리하게 되면서 새삼 굉장히 많은 짐들을 이고 지고 살았음을 후회했고 짐을 꾸리면서 생각보다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짐의 무게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기분이 들어서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최대한 짐을 줄여 나오고 싶었기에 최소한의 물건들을 챙겼다. 고로 방한 용품을 충분히 챙기지 않았다. 버릴까 하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낡은 패딩과 아주 얇은 경량 패딩 하나가 챙겨 온 겨울 외투의 전부였다. 여기에 구입하고 사용하지 않아 집안에 굴러다니는 수면양말과 낡은 장갑, 캐리어에 넣었다 뺐다를 여러 차례 반복했던 여행용 전기장판이 전부였다. 우즈베키스탄의 겨울은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타슈켄트행 비행기를 탔다.
7시간 남짓의 비행 끝에 저녁이 되어 착륙했고 활주로는 꽁꽁 얼어 있었다. 너무 추워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 났고 짐을 찾는 데만 한 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공항 안에서도 한기가 느껴졌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주섬주섬 로밍한 폰을 꺼내 날씨를 확인했다.
타슈켄트 도착 한 이틀 째, 어느 식당 지붕의 고드름
이게 웬일인가.
영하 23도...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몸은 얼음이 될 것만 같았고 입을 열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차가운 공기가 매섭게 온몸을 파고들었다.
전 세계가 이상기후로 난리이듯 이곳 우즈베키스탄도 40년 만에 강추위라고 한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추위로 이곳 사람들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추위와 한파로 곳곳의 파이프가 얼어붙어 단수되고 가스와 전기가 끊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고 타슈켄트 시장이 경질되는 일도 일어났다. 우즈베키스탄 겨울은 눈도 잘 오지 않는 온화한 겨울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꺼운 겨울옷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가스와 전기가 끊기면서 난방도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동사자도 꽤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한 달여 임시거주했던 곳은 난방은 잘되었지만 외풍이 너무 심해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영하 23도에 이어 25도까지 내려가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강추위는 한 달여간 지속되었다. 도무지 따뜻한 날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눈이 잘 오지 않는다는 타슈켄트의 겨울
역시 모든 일은 예상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난방이 된다 해도 외풍이 심했기 때문에 전기장판 온도를 최대치로 높이고 이불을 덮고 누워도 손가락 하나 이불 밖으로 내놓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패딩 점퍼를 입고 전기장판에 누워 겨우 잠이 들어도 새벽에 시린 코끝을 느끼며 눈을 번쩍 뜨게 됐다.
그나마 이곳은 건조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버틸 수 있었다. 영하 25도에 바람까지 불어닥쳤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습도가 낮아 밖에 나가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라고 느껴지진 않지만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수면양말 두 켤레를 껴 신어도 10분을 채 버티기 어려웠다. 눈이 너무나 많이 왔고 제설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눈이 쌓이고 햇살에 눈이 녹으면서 곳곳이 빙판길이었기에 걷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 빠르게 제설 작업을 했던 것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 느껴지는 추위였다.
사방이 빙판길 타슈켄트
내가 미련했음을 깨달았다. 생존에 관련된 것은 넘치게 준비했어야 함을 말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온갖 예방주사를 다 맞고 나름 철저히 대비했다 생각했으나 어리석게도 방한용품 챙기기에 무심했던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되 자책은 않기로 했다. 적당히 부족해도 살아갈 수는 있다는 걸 이제는 알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