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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여유 Jul 10. 2023

어서 와, 단전은 오랜만이지?

우리가 도착했을 즈음의 타슈켄트는 집을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난 온 사람들로 임대료가 폭등했고, 올 1월 말에는 벨라루스가 러시아에 군대를 보낸다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징집령이 곧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러시아에서 우즈베크로 대거 넘어왔고 여기에 더해 벨라루스 사람들까지 올 거라는 소문이 돌자 임대료는 치솟았고 임대인은 배짱이였다. 징집령을 피해 타국으로 올 경우 러시아의 아날로그 시스템에 의해 불러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타국으로 피신을 간다는 이야기도 러시아 유학생에게 전해 들었다. 임대를 하게 되면 임차인에게 한 달 월세 정도의 필요한 가구나 가전을 사주거나 이불이나 커튼, 카펫 등을 교체해 준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즈음엔 임대인의 배짱이 두둑해졌을 때였고 좀 저렴하게 나온 집은 줄을 서서 집을 보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집을 보러 도착하면 방금 계약했다는 말을 들은 것도 부지기수였다. 보러 간 집이 마음에 들고 이 집을 놓치기 싫다면 집을 본 후 100달러 정도를 가계약금처럼 걸면 계약은 그 자리에서 성사되었다.     


내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정도의 컨디션을 가진 집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을 것인지 좀처럼 집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집을 구하기 위해 중개사이트를 뒤졌고 여기저기 건너 건너 부탁도 하고 시간에 관계없이 강추위를 뚫고 집을 보러 다녔다.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다니며 추려진 집


드디어 좋은 위치에 적당히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 착하지 않은 임대료지만 위치가 오이벡 미라바드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주인은 한국으로 일하러 가신 분이고 대리인과 집을 계약했다. 조건은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마라! 아무것도 바꿔 줄 수 없다!'였다.


대충 둘러보고 계약한 집이기에 일단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빨래건조대가 망가져 있어서 빨래건조대 정도는 해줬으면 한다고 청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비싼 임대료를 주고 들어가는 마당에 그까짓 빨래 건조대도 안 바꿔준다는 것이 나름 짜증 나서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파란 테이프로 필요한 부분을 칭칭 감아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빨래건조대 모서리 부분을 파란 테이프로 감고 보니 꽤 컬러감이 살아있는 건조대로 변모했고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위치였다. 서울 중심부에 살면서 주거만족도가 높았기에 타슈켄트의 중심지에 살고 싶었다. 특히 이곳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인프라가 중심지와 아닌 경우의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진다고 들었다. 또 단전, 단수 등이 자주 일어나는 데 오이벡 미라바드는 단전, 단수 등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타슈켄트의 영하 25도의 추위를 경험했던 터라 전기나 가스 공급이 끊기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비싼 임대료를 주더라도 고집한 곳은 한국 대사관이 있는 오이벡역 미라바드였다.     


우즈베크는 전기, 가스, 수도가 예고 없이 끊기는 일이 자주 있다고 들었으나 5개월 거주하면서 예고 없는 단전, 단수는 없었기에 오이벡 미라바드에 사는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다.    

 

집 맞은편 아파트도 정전되었다.


그런데 예외는 없는 법!

6개월 차 접어들면서 39도까지 치솟는 더위에 20시간이 갑작스레 단전이 되었다.          


아침에는 '아싸! 브런치나 먹으러 가자! 서너 시간이면 들어오겠지.' 했다가

점심을 먹었고,

저녁도 먹었고,

하루종일 나갔다 왔는데 세상에나 여전히 전기 공급은 중단되어 있었다. 9층에 거주하는 우리는 무거운 노트북과 짐들을 가지고 낑낑거리 계단으로 올라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샤워해도 뒤돌아서면 다시 땀이 줄줄 흐르는 것보다 괴로운 건 전기가 왜 나갔고 언제쯤 다시 공급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작은 손전등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핸드폰 불빛에 의지에 서랍에서 세상 쓸모없을 것 같았던 손전등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보낸 시간도 지나면 추억이더라


사위가 고요하고 아무 불빛도 없는 밤, 작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 어둠이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마냥 다시 전기가 공급되길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한편으로 의외로 덤덤하기도 했고,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임을 다시 느낀 밤이였다.        


문득

그동안 당연하다 여기고 살았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했다. 당연하다 누려왔던 것들에 감사해야 함을... 놓치고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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